'그린 뉴딜' 한다며 전자칠판·빔프로젝터… 기존 펀드 5조원 남았는데 또 뉴딜 펀드뉴딜 640개 중 신규 사업은 189개뿐… "재보궐·대선 앞두고 선심성 돈 풀기" 지적
  •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문재인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한 21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사업 대부분이 준비 미흡이나 효과의 불확실성 등 문제가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방만하게 책정한 선심성 예산은 정부·여당이 다가오는 재·보궐선거와 대선을 겨냥한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총 21조3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한국판 뉴딜 예산은 디지털 뉴딜에 7조9000억원, 그린 뉴딜에 8조원, 안전망 강화에 5조4000억원 등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36만여 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본지가 18일 예산안 세부 내역을 분석한 결과, 한국판 뉴딜 사업의 70%는 기존 예산을 부풀린 '재탕'으로 확인됐다. 또 과거 집행 실적이 부진한데도 내년 예산 규모를 늘린 사업(6조원 규모)도 상당수였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절반 이상 삭감을 예고했다.

    10개 중 7개가 '재탕'… 신규 사업 29.5%

    예산안에 포함된 뉴딜 사업 640개 중 신규 사업은 189개(29.5%)에 불과하다. 금액 기준으로 신규 사업 규모는 3조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14.1%에 그쳤다. 

    정부는 예산안 홍보자료에서 "공공시설 제로에너지화, 녹색생태계 복원, 스마트 물 관리체계 구축 등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에 2조4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중 4264억원을 환경부에 배정해 지방 상수도를 '스마트화' 한다.

    그러나 스마트 지방 상수도는 환경부가 지난 4월부터 추진한 사업이다. 이를 '그린뉴딜'로 간판만 바꿔 단 셈이다. 지난 9월까지 지자체의 실집행률은 29.8%에 불과하다. 

    스마트 상수도란 정수장에서 수도꼭지까지 수질·유량을 실시간으로 측정·관리하고 관련 정보를 즉시 제공해 수돗물의 신뢰를 높이는 시스템이다. 

    그린뉴딜 사업에는 대규모 공공시설을 환경친화적이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다는 목적의 사업들이 있다. 노후시설물을 친환경 시설로 교체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조성(8680억원)' '스마트그린 산단'(8억원), '명품 그린 청사 사업(18억원)' '스마트그린 도시(526억원)' 사업 등이다.
  • ▲ 한국판 뉴딜 예산안. ⓒ기재부
    ▲ 한국판 뉴딜 예산안. ⓒ기재부
    탄소 배출 효과 미비한 SOC사업

    하지만 이들 사업은 '변형된 토건 예산'으로 보인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는 큰 효과가 없는 반면, 지방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가깝다.

    그린스마트스쿨은 전국 519개 초·중·고교의 노후건물을 에너지 절감 및 온·오프 융합형 교육환경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태양광과 친환경 단열재를 설치하면서 기후위기와 관련 없는 와이파이와 전자칠판·빔프로젝터를 보급한다. 

    특히 이들 사업은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탈원전정책 기조 속에서 추진할 경우 에너지 수급이 불확실해 에너지 비용을 상승시킬 우려까지 나온다.

    기존 펀드 실적 저조한데 또 '뉴딜펀드'

    정부 예산안에는 뉴딜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하는 '뉴딜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6000억원도 반영됐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재정에서 3조원 규모의 모(母)펀드를 조성해 산업은행에 출자하고, 산업은행과 성장사다리펀드 등의 공공부문에서 4조원, 민간에서 13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총 20조원 규모의 자(子)펀드인 뉴딜펀드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만든 기존 펀드의 투자실적은 이미 저조하다. 금융위가 최근 3년간 조성한 혁신모험펀드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지원 펀드의 투자실적은 결성액의 33%에 불과하고, 아직도 5조원 이상의 투자여력이 남아 있다. 한국판 뉴딜을 추진한다고 별도 펀드를 또 만드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1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정무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이 투입되는 뉴딜펀드와 기존에 시행된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의 투자 대상이 창업·벤처기업(스타트업)으로 겹친다.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는 중소기업벤처부가, 뉴딜펀드는 금융위원회가 소관 부처다. 
  • ▲ 2021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정무위원회) ⓒ국회예산정책처
    ▲ 2021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정무위원회) ⓒ국회예산정책처
    예정처 "신규 예타 면제 사업, 성과 부족"

    예정처는 또 예산안 종합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판 뉴딜 사업에 "신규 편성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중에는 시범사업 성과가 부족했거나 예산 집행 가능성이 부족한 사업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비대면 서비스 플랫폼 구축사업'(2880억원 규모), 산업통상자원부의 '가정용 스마트 전력 플랫폼 사업'(1586억원) 등을 예로 들었다.

    일부 사업은 한국판 뉴딜에 부합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호흡기 전담 클리닉 설치운영 지원(500억원)'은 공공장소 또는 보건소에 호흡기 치료장비를 설치(1개소당 1억원)하는 것으로 전액 디지털뉴딜로 지정되어 있으나, 웹캠 구입 등 일부 비용 외에는 디지털과 관련이 없는 음압장비 구입비와 시설 개보수비 등의 예산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국가표준기술력향상사업(374억원)'은 사업비 전액이 디지털뉴딜에 포함되었으나, 2020년 신규 과제 중 약 40%는 디지털뉴딜과 무관한 분야의 연구과제다. 이는 대부분 계속될 과제로 2021년에도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사업비 중 상당부분은 디지털뉴딜과 관련 없는 과제에 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온라인 교과서 사업을 위해 EBS 교육콘텐츠 편집 사용료로 359억원을 쓴다는 계획이다. 이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EBS 교육콘텐츠에 309억원을 지원함에도 신규 반영한 '중복' 예산으로 꼽힌다.

    올해 예산의 실집행률이 현재까지 0%인데도 '뉴딜'이라는 명목으로 증액된 사업도 있었다.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원(393억원) △가정용 스마트 전력 플랫폼(1586억원) 등이다.

    野 "국민 상대로 돈 풀어 지지 얻으려는 것"

    국민의힘 추경호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한국판 뉴딜 선심성 예산은 정부·여당이 재·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을 상대로 돈을 풀어 지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며 "현재 예산소위에서 민주당이 삭감에 반대하면서 맞서는데, 강하게 주장하는 사업은 삭감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지난 6일 예정처 기관지 <예산춘추>에 올린 글에서 "내년 예산은 문재인정부가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마지막 연차의 예산사업인 만큼 기존 예산사업들을 잘 마무리 짓는 데 주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반대로 올해부터 새로 시작되어 장기간 지속될 신규 사업들을 대거 편성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이번 예산은 대통령선거용 예산사업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며 "지금 같은 경제위기 시 민생은 외면한 채 이같이 표를 노린 포퓰리즘 예산사업들을 크게 늘린 것은 국민 배신 행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