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국정농단 공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번주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향년 78세로 타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상속세 납부, 지배구조 개편 등 삼성 그룹의 향후 행보에 각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이날 오후 2시5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5명의 파기환송심 5차 공판을 진행했다. 지난 1월 17일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정식 공판으로, 이 부회장은 10개월 만에 다시 법정에 출석했다. 이 재판은 지난 2월 특검의 기피 신청으로 약 9개월 간 멈췄었다.

재판이 중단된 사이 배석 판사 1명이 법원 정기인사로 변경된 데 따라 재판부는 이날 재판부 변경에 따른 공판 절차 갱신, 쌍방의 항소 이유 정리 등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재판일정이 재개되면서 재계의 관심은 삼성전자가 당면한 경영 비상사태에 모인다. 삼성전자는 앞서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 2017년 3월 구속된 후 2018년 2월 석방될 때까지 경영 공백을 겪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 더해 지난 9월 1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되며 향후 몇 년간 재판정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이 부회장이 상주로서 고 이건희 회장 장례절차에 참석하고 있던 지난달 26일 오후에도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열린 바 있다. 당초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재판부가 소환을 통보한 만큼 이날 재판에 출석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회장의 타계에 따라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공판에 앞서 향후 심리 계획 등을 정리하는 절차로, 피고인들의 법정 출석 의무는 없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2018년 2심에서 뇌물 공여 혐의액이 36억원으로 감액되면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재판부가 86억 중 약 50억원에 대해 '수동적 뇌물'로 간주해 무죄를 선고한 덕이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해당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후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의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미국의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하며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도입하면 이를 양형에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특검팀은 지난 2월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4월 이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6일 파기환송심이 재개됐다.

파기환송심에 앞서 지난 22일에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되기도 했다. 현재 검찰은 앞서 이 부회장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상태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통해 불법 승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돕기 위해 '프로젝트 G'라는 승계계획을 마련하고,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도록 했다는게 검찰 판단이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지난 1일 오후 2시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당시 기소이유에 대해서는 합병 거래 과정에서 ▲거짓 정보 유포 ▲중요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불법로비 ▲시세 조종 등 각종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특히 삼성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에 부정을 저질렀다고 보고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사법리스크 반복과 경영 공백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향후 3년에서 5년 정도는 법정싸움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불구속 기소인 만큼 당장 최악은 면했지만 향후 그룹의 경쟁력 약화와 국내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삼성그룹의 위기에 따른 여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여당 발의 ‘보험업법 개정안’, 지배구조에 영향 끼칠까

10조원대 상속세도 문제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과 관련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상속세 납부에도 시선이 모이고 있다. 현재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체제에서는 당장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지만 법 개정 이후 총수일가 우호지분의 비율이 급격히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상속세의 경우 현재 이 부회장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7%지만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크게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형성돼있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8.51%고, 삼성생명 주식은 이건희 회장이 20.8%, 삼성물산 19.3%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 물산 주식의 17.5%는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그 자회사인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에 손자회사인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1.49%를 합치면 총 15.01%에 달한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이 별세 전 보유한 4.18%와 어머니인 홍라희 씨가 보유한 0.91%를 합치면 삼성전자 전체 지분 중 총수 일가의 우호지분은 20.8%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면 총수일가 우호지분은 20.8%에서 14%로 급감하게 된다. 현행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로 규제하지만 주식 보유액 평가 기준을 정하지는 않는데, 개정안은 보유 주식도 시가를 반영할 것을 명시하고 있어서다. 현재 '보험업감독규정'은 총자산에 대해 '시가'를, 주식에 대해서는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5천4백억원 가량으로. 삼성생명 총자산 시가 291조 원에 비교하면 총자산의 0.2% 수준이다.

그러나 개정안 내용대로 보유주식에 시가를 반영하게 되면 보유 삼성전자 지분의 가치는 약 30조원대로 뛰어 오른다. 이 경우 삼성생명 총자산의 3%인 8조 7천억 원을 초과하는 21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지분 6.1%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도 5조 3천억원으로 높아져 역시 총자산 86조 원의 3%인 2조 6천억원을 초과하는 2조 7천억 원어치 0.75%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양 사를 합쳐 매각해야 하는 분량은 약 6.85%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주식이 실제로 6~7% 가량 매각될 경우 시장에 충격이 올 수 있다”며 “총수일가의 삼성전자의 지배력이 약화돼 경영권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매입자금에 대해서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매각하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유력 시나리오로 제기되고 있다.

이상한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보험업법 개정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상당부분을 매각하게 된다면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명분은 충분하다”며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크기 때문에 매입자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건희 회장 등 총수일가의 보유 지분과 관련된 삼성그룹의 또다른 문제는 막대한 상속세다. 그룹은 내년 4월 전까지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안을 마련해야 한다.

상속세 법령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원을 넘기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 여기에 대기업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세율에 적용되는 할증률 20%가 붙는다. 즉 20% 이건희 회장 보유 주식 평가액에 20% 할증을 붙이고 그 절반을 세금으로 정한다는 뜻이다.

이건희 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의 60% 수준이 총 상속세로, 금액으로는 10조9천억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자진 신고로 인한 3% 공제를 받아도 10조6천억원이다. 주식 외 나머지 재산에 대한 세금은 별도라 실제 세액이 증가할 수도 있다. 일괄 납부가 불가능한 수준인 만큼 연부연납을 활용해 5년간 분할 납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경우 연 이자 1.8%를 적용해 신고 때 6분의 1을 내고 나머지를 5년간 나눠 내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삼성그룹 차분한 행보

이 부회장, 최태원·정의선·구광모 회장 만나 재계 회동...부친상 위로·재계 현안 논의 오간 듯

삼성그룹, 창립 51주년 조용히 보냈다...참석인원 최소화하고 기념식 가져

한편 삼성전자와 이 부회장은 최근 차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 김현석 대표이사 사장, 고동진 대표이사 사장 등 경영진과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1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별도의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김기남 부회장은 창립기념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님의 타계는 코로나19, 불확실한 경영 환경 등으로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임직원 모두에게 또 하나의 큰 충격과 슬픔이었다”며 “우리에게 내재된 ‘도전과 혁신의 DNA’를 계승 발전시키고 지혜와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회장님이 남기신 도전과 열정을 이어받아 업계의 판도를 바꿔 나가는 창조적인 기업으로 진화하고, 우리의 경쟁력이 최고의 인재에서 시작된 만큼 임직원간 서로 배려하고 상호 신뢰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미래 사회에 공헌하는 '지속가능한 100년 기업'의 기반을 구축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또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지난 3분기 66조9600억원으로 사상 최대의 매출을 달성하는 한편 브랜드가치 623억 달러로 글로벌 5위를 달성하는 등 기업의 성장 모습을 돌아보고 '100년 삼성,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가자'고 다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창립 50주년이었던 지난해 창립기념일에는 영상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다가올 50년을 준비해 미래 세대에 물려줄 100년 기업이 되자”고 당부했지만, 올해 행사에선 별도의 메세지를 내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날 참석인원도 최소화 하는 등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다소 차분한 생일을 보낸 만큼 앞으로는 '이재용 시대'에 당면한 현안 대응에 집중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은 지난 5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타계와 관련해 상주였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위로의 말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장례가 끝나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는 해도 그간 이 부회장이 삼성의 총수로서 활동해왔던 만큼 어수선하지는 않은 분위기"라며 "다만 그렇더라도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경영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그룹과 이 부회장 본인은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100년 기업 삼성'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그룹 안팎을 둘러싼 과제들이 해결되고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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