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1.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생을 마쳤다. 많은 기사와 논평이 쏟아지고 있다. 10조원 규모의 상속세 납부와 후계자 이재용의 삼성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보다 나는 논평에 관심이 있다. 지난 25일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당과 경제·사회단체는 저마다 평가를 내놓았다. 진보와 보수, 자본과 노동 등 처지와 이해에 따라 이건희의 생애에 대한 ‘빛과 그림자’를 제각각 강조해서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족에게 보낸 애도 메시지에서 “이건희 회장은 도전적인 리더십으로 반도체를 한국 대표산업으로 만들고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등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며 “그의 리더십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기업에 큰 귀감이 될 것”이고 밝혔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서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도약을 이끌며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었다”면서도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회장의 타계를 계기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들께 약속했던 ‘새로운 삼성’이 조속히 실현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며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했다. 이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이 이건희 회장의 생애에 대해 빛과 그림자를 언급하며 애도했다. 정의당은 삼성의 역사는 우리 산업의 발전을 선도한 역사이지만 “이 회장은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그 역사를 지우길 바란다”고 그림자를 강조해 논평했다. 국민의힘은 대변인 논평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경제 선각자라고 평가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도전과 혁신정신을 배우자면서 애도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대표적 노동단체들도 이건희 사망 논평을 했다. 먼저 한국노총은 “고인의 생애도 공과 과가 뚜렷하다”며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빛을 내는데 있어서 정경유착과 무노조경영, 노동자 탄압은 짙은 그늘이며, 명백한 과오”라고 논평했다. 민주노총은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과 있고 공과 과(過)가 존재한다”며 “이건희 회장이 만든 삼성의 성장은 정경유착과 특혜로 점철된 역사이기도 하다. 그는 수많은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죽음을 은폐했고 무노조 전략과 노조파괴를 일삼으며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죽음 위에 오늘의 삼성을 세웠다”고 논평했다.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를 키워 내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삼성 자본이 해 온 잘못을 지적할 것인가. 이상과 같이 오늘 이 나라는 이건희 생애를 두고 평가를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논평을 가만히 읽어 보면 일부 보수의 당을 제외하고는 이건희 회장 생애의 빛과 그림자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무엇을 강조해 논평하고 있는 것인지만 차이가 있다. 노동단체도 마찬가지다.

2. 반도체·스마트폰 사업을 통해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를 일궈 낸 데 대해서는, 심지어 이 나라에서는 진보의 당과 노동단체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강조해서 논평하느냐 아니냐만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건희를 애도하는 뉴스 기사 중에는 그의 어록이라며 그가 과거 했던 말들을 보도한 것이 있다. 그중에는 ‘천재 1명이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그가 말했노라는 기사도 있다. 이 기사는 이건희를 높이 평가할 목적으로 쓴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실 이건희 생애가 빛과 그림자, 즉 공과 과가 있다고 볼 때 빛 다시 말해 공은 바로 이걸 두고서 말하는 것이다. 이건희가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내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건희만이 아니라 모든 자본, 사용자가 공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서 사용자는 노동자를 고용해 사용하는 자이고, 그는 노동자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영위한다. 그렇게 이건희뿐만 아니라 사용자 자본은 모두 그렇다. 자신의 사업을 확대·재생산해서 성장해 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사용자인 그가 전부고, 노동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서 사용자는 군주 혹은 주인이고, 노동자는 그에 복종해야 하는 자일 뿐이다. 이건희의 삼성이 10만명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면 거기서는 10만명은 노동자로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그걸 말하지 않는다. 더는 흘러간 옛 노래로 흥얼거리는 걸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천재가, 이건희가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할 뿐이다. 심지어 노동단체조차도 이건희의 빛을 말하는 것을 보면 기업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사용자 자본의 공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을 넘어서도 그러하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천재가 수만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며 높이 평가하는 말이 넘쳐 나고 있다. 오늘도 또 다른 천재가 나타나 혁신을 통해 기업을 키워 내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찬사는 모두 그들의 것이다. 거기서 사용되는 노동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거기서 혁신은 노동자의 것이 결코 아니다. 기업의 성장, 그것은 당연하게 사용자 자본의 것으로 귀속될 뿐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해서 세계적 대기업, 예를 들어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애플·테슬라 등 어디서도 다르지 않다.

3. 이렇게 이건희 생애를 빛으로 평가하는 걸 살펴보자니, 오늘 이 세상에서 혁신의 말은 한없이 협소하다. 대단하게 말하는 혁신이란 기껏해야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서 사용하는 사업장으로의 폭발적 성장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노동의 눈으로 보자면, 그것은 사용자 자본으로서의 혁신인 것이다. 결코 노동과 자본, 그 사업장(기업)에서 인격인 노동자와 사용자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혹 노동 과정에서 혁신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노동자를 특수고용 등 개인사업자화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기술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그야말로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 자본의 눈으로 바라보고서 하는 말인 것이다. 노동자에게 지급할 몫을 삭감해 인건비 지출을 줄여 더 많은 자본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말인 것이다. “그는 수많은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죽음을 은폐했고 무노조 전략과 노조파괴를 일삼으며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죽음 위에 오늘의 삼성을 세웠다”고 민주노총은 논평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희는 삼성 회장으로서의 혁신을 그 나름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으로 더 많은 이윤을 챙겨 삼성전자의 성장에 일조했을 테니 말이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사용자 자본의 빛, 혁신이란 노동(자)에게도 혁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온통 이건희 생애의 빛을 높이 평가해도 노동자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4. 최근 4차 산업혁명이니 뉴딜정책이니 하며 부쩍 혁신을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정부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혁신은 새롭지 않다. 위에서 말한 혁신이 업종과 사업장을 달리해 말해지고 있을 뿐이다. 하다못해 뉴딜이라는 말이 세상에 나왔던 1930년대 미국에서 했던 것과 같은 노동을 바라보는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 없는 산업정책만을 그린뉴딜이니 디지털뉴딜이니 하며 쏟아 내고 있다. 1930대 미국의 뉴딜은 실업급여 같은 사회보장제, 노조활동 보장 등 노동 있는 산업정책으로 추진됐다. 그것은 오늘까지도 미국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남아 있다. 노동 없는 산업정책 추진은 기업을 위한 것이다. 아무리 날마다 각종 사건사고에서 노동존중을 말해도 정작 중요한 국가의 혁신정책 추진에서는 노동존중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는 노동존중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가 없다. 노동 없는 산업정책의 추진은 사용자 자본을 위한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희가 삼성이라는 기업을 위해 혁신한 것이라면, 오늘 문재인 정부의 노동 없는 산업정책 추진은 일개 기업이 아니라 한 산업의 자본을 위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다를 뿐이다. 여기서도 그것으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그것으로 노동자의 고용에 기여하게 될 것이니 결국 노동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은 이건희 사망을 애도하면서 그의 공으로, 그 생애의 빛으로 평가했던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은 혁신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켜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사용한 사용자 자본 ‘삼성’과 그 회장 이건희에 대한 찬사로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5. 이상과 같이 이건희 사망 논평을 읽고 보니 오늘 이 나라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바람은 한없이 가벼워 보잘것없다고 여겨진다. 세상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은 언감생심, 이젠 과거의 구호가 돼 버렸다. 사용자 자본이 법대로 산업재해를 처리하길, 법대로 노조 활동을 보장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니 법대로 노동자를 사용하기만 하면 오늘 그의 생애는 높이 평가받게 되는, 그야말로 당당히 행세할 수 있는 세상인 것을. 사용자 자본은 더 무얼 바라는가 묻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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