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가들 평화 위해 정교 분리했는데
정치 뛰어드는 종교인이 꿈꾸는 세상은?

전광훈의 정치적 욕망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물론 전광훈은 단순 개인이 아니다. 이른바 '하나님 나라'를 명분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극우 개신교 세력이 전광훈을 앞세워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 우려와 반성의 목소리도 제법 있다. 교회의 정치 참여는 정의·인권 등 분야로 제한적이어야 하고, 공동체 안녕을 유지하는 활동에는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목소리지만 전광훈 등의 세력이 귀담아 들을 것 같지는 않다.

먼저 전광훈 편에서 보자면, 종교가 권력을 탐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근대가 열리기 전 세상은 줄곧 종교와 정치가 한 몸이었다. 통치이념이라는 순화된 표현이 교과서에 쓰여 있지만, 종교는 권력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정치 이데올로기였다. 권력이 종교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었고, 종교가 스스로 권력이 된 사례도 있었다. '고등 종교'라는 것도 정치 체제의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불교를 예로 들어보자. 서역, 즉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중국 땅에 뿌리 내렸다. 특히 5호 16국의 후예로 양쯔강 이남 한족 나라 남조와 경쟁 관계에 있던 북방 이민족의 북조 왕실이 불교 수입에 적극적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인 윈강석굴의 부처가 북조 황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권력이 종교를 선택한 이유를 잘 말해준다. 불교가 한반도에 수용된 것도 당시 삼국의 권력이 부족국가 수준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쇠락한 로마제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공인하고 적극적인 진흥책을 펼쳤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직접 니케아공의회를 열고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논란을 삼위일체론으로 매듭짓고 보편교회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세계적인 제국 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도 통일된 교리와 통합된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슬람은 종교가 스스로 권력이 된 사례다. 비잔틴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사이의 300년 전쟁에 지친 아랍 민중은 알라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슬람에 매료됐고, 급기야 제국까지 세웠다.

정치와 종교를 떼어내야 한다는 생각은 계몽사상에서 비롯됐다. 제도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수정헌법에 의회가 국교를 정할 수 없게 한 미국이 처음이다. 하지만 완벽한 분리라고 보긴 어렵다. 영국의 국교회 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주별로 우세 교파가 다른 상황을 반영한 것이지 기독교라는 큰 테두리를 부정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엄격한 분리는 프랑스에서 명시됐다. 교회가 명백한 반공화제 세력이었기에 제3공화정 때 정교분리법이 제정됐다. 이후 근대국가 대부분이 정교분리 대열에 동참했다.

우리 헌법도 20조 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문 다종교 사회이기에 기독교 일변도의 서구사회와는 정교분리의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단순한 분리에 더해 종교 간 평화의 뜻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근대 이후 국가들이 앞다퉈 정교분리에 동참한 것은 종교로 무장한 권력의 폭주를 제어하고 합리성에 기반을 둔 평화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은 정치판에 노골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근대를 거치며 억눌렀던 관성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종교를 앞세운 그들은 어떤 세상을 꿈꾸는 걸까? 21세기 한복판에서 제정일치를 꿈꾸는 이 원시적인 몸부림은 전광훈 사례 한 번으로 과연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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