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는 수행의 결정체, 문자사리…선종 최고 유산”

문광스님
문광스님

깨치면 왜 다들 시(詩)를 짓는가?

스님들의 깨달음을 담은 게송을 오도송(悟道頌)이라고 한다. 깨치면 왜 다들 시(詩)를 짓게 되는 것일까? 언어와 문자로 담을 수 없는 대각(大覺)의 세계는 말이 끊어진 이언(離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의언(依言)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시적(詩的)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가보다. 그래서 선(禪)과 가장 가까운 장르를 굳이 고르라면 부득이하게 시(詩)가 선택되는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산문보다 시를 좋아했다.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다. 백일장에 나가서 운문부분에서 입상을 하던 시절에는 내가 이렇게 긴 글들을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나는 충격적인 선시(禪詩) 한편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그 때 받은 충격 때문에 지금 승려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효봉 선사의 ‘이 집안 소식’

내 의식 속 처음으로 각인된 깨달음의 노래는 17세 때 우연히 접한 역대 종정 스님의 법어집인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에 실려 있었던 효봉 선사(1888~1966)의 오도송이었다. 

海底燕巢鹿抱卵 
火中蛛室魚煎茶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 

바다 밑 제비집엔 사슴이 알을 품고/
불 속 거미집에선 물고기가 차를 달인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 수 있으리?/
흰 구름은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쪽으로 달리네.

첫 두 구절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바다 밑에 있는 제비집에서 사슴이 알을 품는다고? 불 속의 거미집에서 물고기가 차를 달인다고? 무슨 시가 이렇지?”하는 의문 속에서도 뭔가 엄청난 힘과 전율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읊었다는 매력이 더해지며 견성(見性)이란 것에 대해 처음으로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평생 무(無)자 화두를 참구하다가 입적 시에도 “무(無)~”하셨다는 효봉스님. 그는 판사로서 사형선고를 내린 뒤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엿판을 들고 나섰다가 금강산에서 출가했다고 한다.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답게 스님은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法起庵) 토굴에서 깨닫기 전에는 죽어도 밖에 나오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정진했다고 한다. 도를 깨닫고는 토굴벽을 발로 차서 무너뜨리고 밖으로 나와 이 오도송을 지었다고 전한다. 

스님의 용맹가풍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선원에서 방선시간에도 꿈쩍 않고 정진하는 스님을 보고서 한 강사 스님이 말을 걸어 왔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려면 그물 쓰는 법부터 배운 뒤에 고기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효봉스님은 “이 공부는 바다를 통째로 마시는 공부입니다. 그렇게 고기만 골라서 잡는 공부가 아닙니다. 바다를 통째로 마시다 보면 미역도 걸려오고 깡통도 걸려오지만 고래도 잡게 되는 법이지요.”

이 말은 들은 강사 스님은 평생 선승을 존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강사 스님이 바로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대강백이 된 운허스님(1892~1980)이셨다. 당시 두 스님은 한국의 선(禪)과 교(敎)를 대표하게 될 효봉과 운허인지 서로 몰랐던 것이다. 효봉 선사의 저토록 기묘(奇妙)한 선시(禪詩) 뒤에는 바다를 통째로 마셔버리겠다는 대장부의 발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효봉스님과 복원된 금강산 신계사 모습. 신계사 뒤의 뽀족한 문필봉이 이채를 띤다. 효봉스님이 오도한 법기암 터는 신계사에서 1.8km 정도 더 들어가야 나온다.
효봉스님과 복원된 금강산 신계사 모습. 신계사 뒤의 뽀족한 문필봉이 이채를 띤다. 효봉스님이 오도한 법기암 터는 신계사에서 1.8km 정도 더 들어가야 나온다.

만해 선사의 ‘남아의 일성’

만해 선사(1879~1944)의 시 ‘님의 침묵’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시는 떠나버린 님을 절절히 그리워하며 독백체로 하소연하는 여성화자의 간절한 기다림의 미학이다. 동명의 시집의 시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는 전체의 서시에 해당하는 ‘군말’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로 시작하는 이 문장으로 인해 ‘님’은 조국도 되고 민족도 되고 부처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에 이르면 독립투사로서의 한용운은 유심(唯心)을 설하는 만해스님으로 어느덧 변모해 있다. 

게다가 시집 <님의 침묵>은 88편 연작시의 마지막인 ‘사랑의 끝판’의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에 이르러서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용자(勇者)의 끝판을 보여준다. 골기에 찬 만해의 얼굴이 마지막 시에서 그 본지풍광을 드러내 보여주며 비장함을 부가하는 것이다. 

이런 면모가 부각된 만해의 한시(漢詩)에는 숨은 명작이 많다. 그의 한시는 전통적인 선비의 절개에다 결기에 차 있는 선승의 풍모가 더해져서 단단하고 탄탄한 풍골(風骨)을 형성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설악산 오세암에서 좌선하다 화두를 타파하고 지은 그의 오도송은 선게(禪偈)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시를 보자마자 수도 없이 읊조렸고 지금도 최고의 애호시로 손꼽고 있다.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一聲喝破三千界 
雪裏桃花片片紅 

남아가 가는 곳 어디나 고향이건만/
그 몇이나 나그네 시름에 잠겨 있던가./
한 소리 할을 질러 삼천대천세계를 부수니/
눈 속의 복사꽃이 조각조각 붉었어라. 

마지막 구절은 원래 ‘편편비(片片飛)’였는데 한 소식을 하고 도반인 만공 선사(1871~1946)에게 이 오도송을 보여줬더니 그는 절친한 도반의 오도를 기뻐하며 기왕이면 ‘편편홍(片片紅)’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흰 눈과 붉은 복사꽃의 색채대비도 훌륭하고 운자도 맞출 수 있어서 한결 좋아 보인다. 만해스님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앞서 화두를 타파하고 오도송을 쓴 정통의 선사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선사들의 오도송은 수십 년 동안 수행한 정신의 결정체이자, 문자사리이며, 멋들어진 선종(禪宗)의 최고 유산인 것이다. 
 

관음도량인 설악산 오세암의 전경과 올해 오세선원에 새롭게 봉안된 만해 선사의 진영.
관음도량인 설악산 오세암의 전경과 올해 오세선원에 새롭게 봉안된 만해 선사의 진영.

경허 선사의 ‘무사 태평가’

사감(私感)이지만 20세기 한국불교 오도송의 그랑프리는 경허 선사(1849~1912)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님의 오도송 한 수가 꺼져가는 한국불교를 죄다 살렸기 때문이다. 경허 선사의 오도송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한국불교의 중흥이 가능했겠는가?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야인이 무사 태평가를 부른다”는 마지막 표현은 천고의 절창이자, 요사(了事)의 자재곡(自在曲)이며, 한국 선풍의 위대한 컴백송이다. 

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我家 
六月燕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문득 콧구멍 없다는 소리를 듣고/
몰록 삼천대천세계가 나의 집임을 깨달았도다./
유월 연암산 아래 길에서/
야인이 무사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경허 선사를 다시 한번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허는 일반적인 정신세계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저 선승의 격외의 별유천지(別有天地)를 이쪽 차안(此岸)으로 끌어들여 굳이 함께 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 오도송이 어찌 이 사바의 포유류의 것인가?

20세기 과학시대에 저 스님 정도는 아는 것이 끊어진 곳, 시비의 영역 저편에, 먼발치에서 보기만 하는 존재로 남겨두고 방하착하면 안 될까?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죽했으면 만공스님이 스승 경허가 드실 고기가 없다면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라도 공양을 올리겠다고 했겠는가. 

일제강점기의 그 잔혹한 엄동설한에도 운치와 해학을 보여준 전설적인 풍류의 극치점으로 경허 한 사람 정도는 내버려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사의 난의 이태백처럼, 임진왜란의 진묵대사처럼 말이다. 누가 뭐라 해도 굳게 닫혀 있던 이 땅의 선방문은 경허스님이 다 열었으니까. 
 

경허 선사가 깨달은 뒤에 보림했던 천장사의 원성문(圓成門) 골방.
경허 선사가 깨달은 뒤에 보림했던 천장사의 원성문(圓成門) 골방.

[불교신문3611호/2020년9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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