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오늘의 재테크)사상 초유 마이너스 유가, 이게 무슨 일
선물 갈아타느라 생긴 일…저장할 수만 있다면…유조선 몸값 급등
CJ대한통운 등 육상운송·석유화학 끝단 제조업체 저유가 수혜
2020-04-21 12:00:00 2020-04-21 14:57:25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거래일 기준으로 하루 전 18.27달러에서 55.9달러나 급락한 것도 놀랄 일인데, 국제유가가 마이너스 가격으로 떨어진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는 5월물을 매수하는 사람에게 값을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37.63달러를 얹어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원유가 시장에서 현물이 아닌 선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SK이노베이션 같은 정유사가 산유국에서 직접 원유를 사오지 않는 이상 원유는 금융상품인 선물시장에서 주로 거래된다. 4월을 예로 들면 5월 초에 원유를 현물로 인도받을 수 있는 선물상품(5월물)을 거래하는 식이다. 이달에 매일 발표됐던 국제유가도 현물이 아니라 이 5월 선물 시세를 기준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유가가 워낙에 낮다 보니 미래엔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아 5월물 뿐 아니라 6월물, 7월물, 8월물 등 만기가 지금보다 멀수록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되는 현상(콘탱고)이 고착화됐다. 하지만 4월에 거래되는 선물은 20일에 효력을 다하고 21일부터는 6월물 거래로 대체된다. 만약 20일까지 선물을 처분하지 못하고 21일에도 들고 있는 경우엔 5월 초에 원유를 현물로 받아야 한다. 
 
시장 참여자 대부분은 투자자라서 원유 현물을 받아 보관할 데도 없기 때문에 선물 만기가 되기 전에 어떻게든 처분하기 위해 결국 5월물 거래 종료를 앞두고 돈을 보태주면서까지 팔다 보니 마이너스 가격이 나타난 것이다. 초저유가 상황에서 발생한 비정상적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원유 현물 보관할 곳만 있다면…유조선 몸값 치솟아  
 
이 정도면 선물을 사겠다는 마음이 생길 법도 하다. 원유를 현물로 보관해 놓을 데만 있다면 배럴당 37달러를 받을 수 있고, 나중에 유가가 올랐을 때 팔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전 세계 원유 저장시설이 거의 찼다는 게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략 비축유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으나 민간 시설의 저장능력은 거의 한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이미 원유 수입량을 크게 늘려 비축했다.
 
덕분에 요즘 유조선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유조선은 원유를 수송하는 역할을 하지만 유조선 그 자체로 대형 저장시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유가 시기엔 중고 유조선을 사서 탱크를 꽉 채운채로 바다에 띄워놓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해양진흥공사 해운거래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이맘때 척당 6800만달러 미만이었던 5년령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의 시세는 지난 16일 현재 7523달러까지 뛰었다. 10년령도 4447만달러에서 4990만달러로 올랐다. 
 
현재 시세를 토대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VLCC 한 척을 채울 수 있는 원유 200만배럴을 구매하면서 배럴당 37달러까지 받는다면 7400만달러가 생기니까 이론상으론 10년령 VLCC 한 척을 사고도 큰 돈을 남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덕분에 유조선 선단을 보유한 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반가울 뿐이다. 저유가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실적 악화와 주가 하락의 고통을 받고 있으나, 프론트라인(Frontline) 같은 글로벌 해운사의 주가는 모처럼 날아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증시가 추락했을 때만 해도 6달러 초반까지 하락했던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서 지난밤엔 12% 급등하며 10.82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석유화학 밸류체인 끝단 소비재 만드는 업체 수혜
 
개인 투자자들로서는 유조선을 빌릴 능력은 없고, 저유가에 투자한다면 수혜주를 찾는 방법밖에 없다. 
프론트라인 같은 종목을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생산원가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들이 다음 후보군이 될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항공사와 해운사 등이다. 
 
문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모두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여행객이 급감했다는 점이다. 회사 존폐가 달린 문제인지라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렵다. 
 
해운사들도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물동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팬오션, 대한해운 등의 주가는 저점에서 많이 회복한 상태다. 
 
이들보다는 CJ대한통운, 현대글로비스, 한익스프레스 등 육상운송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들의 사정이 나아 보인다. 
 
한국전력도 화력발전을 꾸준히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고 있으나 아직 석유화력 발전소도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의 가동시간이 준데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하로 기업을 지원할 가능성도 있어 투자하기엔 망설여진다.
 
이처럼 기름을 직접 원료로 쓰는 곳보다는 한 단계를 거친 곳, 즉 원유가격 하락→중간 석유제품가격 하락→원재료비 감소를 누릴 기업에 관심을 갖는 편이 좋아 보인다. 예를 들어 나프타 가격 하락의 수혜를 입게 될 석유화학제품 제조기업 등이다.   
 
세제의 원료인 계면활성제를 만드는 미원상사 주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을 넘어서 신고가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손세정제 판매가 급증한데다 원재료 가격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KCI, 동남합성도 같은 이유도 주가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밖에도 신발창, 합성피혁 등의 재료가 되는 폴리우레탄을 만드는 동성화학, 진양산업, 화학비료를 만드는 KG케미칼, 남해화학 등 석유화학제품을 원재료로 소비재 또는 소비재 직전 단계의 재료를 만드는 기업들이 수혜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원재료 스프레드의 영향력이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이는 곧 주가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유가가 오를 것이라 믿고 긴 호흡으로 정유주를 매수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만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머지않아 유가가 반등할 거라 예상한다면 원유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도 투자후보가 되겠지만, 최근월물과 원월물 가격 차이가 커서 발생하는 선물 갈아타기(롤오버) 비용 부담이 만만찮아 2~3개월 내 단기 투자라면 몰라도 중장기 투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