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경제성장을 거쳐 내며 이념·계급·종교 등 숱한 갈등에 노출된 교회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한국교회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대안 모색이 어렵다고 판단한다. 자연스럽게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 오며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세상과 보폭을 맞춰 온 한국교회 건축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목회와 함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종횡무진 활동 중인 주원규 목사(동서말씀교회)가 2018년 '예배당 건축 기행' 연재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주 목사는 2000년 '심판의 기능으로서의 건축'이라는 작품으로 건축 잡지 <포아 poar>가 공모한 '간향건축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로도 건축 평론을 꾸준히 써 왔다. 그는 지난해 6월까지 <뉴스앤조이>에서 연재했던 '예배당 건축 기행'을 묶어 올해 3월 <한국교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곰출판)를 펴냈다.

사랑의교회·소망교회 등 대표적 대형 교회부터, 경동교회·하양무학로교회 등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교회, 한길교회·모새골공동체교회 등 특색 있는 사역을 지향하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책에 담긴 예배당의 면면은 다양하다. 연재하며 쓴 20편의 글에, 종교개혁500주년기념교회와 명성교회 예배당 이야기를 보태 총 22개 예배당을 다뤘다. 주원규 목사는 예배당 건축양식과 그 교회 역사·철학을 함께 논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했다.

"서구의 형태와 모양을 오롯이 구현해 낸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이 이 성당에서 유일하게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물론 아니다. 기와지붕 등 한국 전통 건축양식과의 절묘한 조화가 서울주교좌성당 건축물 전체에 흐르고 있다." ('시대를 넘어 시대의 중심으로 파고들다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53쪽)

"향린 정신은 인간 존엄을 학살하는 독재 정권의 부당함과 맞서는 것을 교회의 본령으로 보았다. (중략) 향린교회는 신군부의 야만 앞에서 신음하는 민중을 해방하는 일이 비종교 단체나 정치인의 몫이 아닌 하나님나라 실현을 위한 교회의 역할임을 분명히 하며, 그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 왔다." ('역사, 저항, 그리고 교회 - 향린교회', 21쪽)

"100평이 넘는 역사관 안에는 주로 명성교회 창립자인 김삼환 목사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들이 가득하다. (중략) 명칭은 명성교회 역사관이라 명명했지만, 그 교회의 성장 역사를 창립자의 개인 카리스마와 기도의 눈물에 의해 일궈 냈다는 스토리로 윤색하고, 그렇게 윤색된 스토리가 종교 건축물을 점유하는 이 시도 자체에서 명성교회는 복음의 순수란 핑계로 무비판적 숭배의 길을 촉진해 왔음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성전聖殿에서 성전聖戰으로 - 명성교회', 86~87쪽)

<뉴스앤조이>는 책 출간을 맞아 주원규 목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재를 마무리하고 이를 책으로 출간한 소회가 어떤지,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건축 에세이를 썼는지 등을 물었다.

주원규 목사가 <뉴스앤조이>에서 연재한 '예배당 건축 기행'을 책으로 출간했다. 사진은 이화여자대학교대학교회 예배당을 둘러보는 주원규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주원규 목사가 <뉴스앤조이>에서 연재한 '예배당 건축 기행'을 책으로 출간했다. 사진은 이화여자대학교대학교회 예배당을 둘러보는 주원규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 '예배당 건축 기행' 연재를 지난해 6월 마무리하고, 이번 달에 책으로 출간했다. 소회가 어떤가.

책을 묶을 때마다 성취감보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큰 것 같다. 자료 조사나 현장 답사에 신경 쓰면서 조금 더 세심하게 접근해서 건축 에세이를 썼으면 좋았겠다 싶다. 게다가 서울이나 경기도 외 다른 지역에 있는 전통적 교회들을 떠올려 보면, 다루지 못한 예배당이 많다. 자료 입수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시간적·지리적 여건 때문에 충분히 시도하지 못해 아쉽다. 기회가 다시 주어지면, 지역의 전통 교회들을 다루고 싶다.

'예배당 건축 기행' 연재에 담긴 비평적 성격 때문에, 섬기는 교회 공간이 비판적으로 다뤄져 상처 입은 독자가 있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그럼에도 한국 개신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건축적 가치로 조명했다는 데서 소소한 기쁨도 느끼고 있다.

- 책 제목이 <한국교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이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이미와 아직'은 관용구로, 하나님나라와 관련한 신학적 레토릭이다. 나는 한 세기를 버텨 온 한국교회가 바깥에서 유입된 기독교를 한국적 토양에 안착하고 확장하는 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복음에 담긴 본질과 실천을 충분히 의미 있게 구현하지는 못했다고 봐서, '아직'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인 한국교회 모습을 예배당 건축을 통해 진단하고 싶었다.

<한국교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 예배당 건축 기행> / 주원규 지음 / 곰출판 펴냄 / 240쪽 / 1만 5000원
<한국교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 예배당 건축 기행> / 주원규 지음 / 곰출판 펴냄 / 240쪽 / 1만 5000원

- 연재 전 인터뷰에서, 예배당에는 교회가 걸어온 길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20편 넘게 건축 기행을 쓰면서 본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은 어떻던가.

한국 개신교회가 자생력을 갖고 그리스도 정신에 담긴 항구적 개혁 의지를 예배당의 다양한 건축양식을 통해 전개해 왔다고 느꼈다. 특히 가톨릭의 성당이나 불교의 사찰, 법회를 위해 마련한 각종 선원禪院 등이 지향하는 일관성·통일성과는 다른 결을 추구해 왔다. 케리그마(복음 선포)를 위해 모던 건축의 세련미를 추구하거나 다양성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점은 한국교회만이 지닌 장점이다.

씁쓸한 지점도 있다.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더 많은 회중이 예배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 흔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도 위주의 확장력을 강조한 나머지, 종교 공간 특유의 신성성이나 그 교회만의 정체성과 철학이 거세된 채로 건조하고 조악한 모습으로 주저앉은 예배당 풍경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철학과 정체성 부재로 진통을 겪는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한국교회가 보여 준 철학 부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 더 씁쓸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신천지와 관련이 깊지만, 공간을 잠식하는 방식의 예배를 놓지 못하는 한국교회 모습도 여지없이 보게 됐다. 한국교회가 사회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골칫덩이가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연재 글을 쓸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예배당 건축 기행'은 예배당 자체의 건축미학적 가치와 그곳에서 예배하는 교회를 둘러싼 여러 정치·사회·문화·역사적 콘텍스트를 고려한 비평 에세이였다. 특정 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폄하하거나, 반대로 두둔하려는 태도는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오늘의 현실과 한국교회 흐름 속에서 각 교회와 예배당에 담긴 객관적 가치를 조망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글을 썼다.

- 연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예배당은 어디였나.

사랑의교회 예배당이다. 대학 시절, 옥한흠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사랑의교회 강남 예배당 지하 본당에서 예배했던 경험이 있다. 오늘날 사랑의교회가 놀라운 발전상과 함께, 한국교회가 거쳐 온 여러 질곡의 역사에 담긴 명과 암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집산체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과 당시 경험이 오버랩된다. 사랑의교회 예배당은 책을 펴낸 지금까지도 여러 소회를 느끼게 해 준다.

왼쪽부터 경동교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충현교회 예배당. 모두 주원규 목사가 책에서 다룬 예배당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왼쪽부터 경동교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충현교회 예배당. 모두 주원규 목사가 책에서 다룬 예배당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 줬으면 좋겠나.

글이 책으로 묶여 출간됐다면, 그 이후로 저자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본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주시면 좋겠다는 것이다. 읽어 보면, 희망·애정과 거리가 먼 내용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전체 주제는 한국교회가 여전히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어야 한다는 당위적 신앙고백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섬기고 아끼는 예배당을,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한 공간으로 보는 시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설 수 있으면 좋겠다. 예배당이 이 사회의 지정학적 흐름 가운데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미학적 텐션(tension)을 느낄 수 있는 유의미한 공간이라는 관점을 잠시나마 가져볼 수 있기 바란다. 교회의 미학적 가치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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