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경험한 1980~1990년대 한국교회 모든 담론의 중심에는 복음 전도가 있었다. 그러나 성장이 멈추고 가나안 성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교회는 방향타를 상실한 듯 이리저리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사회적 영향력도 현저히 줄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문화적·윤리적으로 앞서가는 집단이었으나 이제는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트렌드에서 뒤처지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윤리적으로도 일반 사회에 못 미친다는 인식이 강하다.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가 기독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교회다움을 회복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창립한 도시공동체연구소도 그중 하나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성석환 교수 주도로 창립한 도시공동체연구소는 지금까지 협소한 의미의 복음 전도를 하나님나라 선교로 바꾸는 사역을 이어 오고 있다. 2020년, 사역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도시공동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성석환 교수를 3월 2일 별내 새생명교회에서 인터뷰했다. 그동안 연구소가 해 온 사역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들었다.

도시공동체연구소 소장으로서 사역 10주년을 맞은 성석환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도시공동체연구소 소장으로서 사역 10주년을 맞은 성석환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2010년 도시공동체연구소를 설립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교회 가장 큰 이슈는 예배에 대중문화 양식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였다. 당시 드럼은 고사하고 기타에 대해서조차 거부감을 느끼던 분이 많았다. 2000대 초 들어서야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상식이 되었다. 그만큼 교회는 느리다.

교회에서 드럼을 칠 수 있느냐는 논쟁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거의 모든 면에서 교회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교회의 언어와 사회의 언어가 괴리되었고, 지금은 사회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설명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IMF 이후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체계로 급선회한 후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교회는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교회가 중산층 위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여전히 대형 교회, 성장 위주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구조로는 우리 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에 대해 대응할 수 없다. 가나안 성도 현상도 이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교회가 사회와 괴리되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지금은 교회의 언어와 사회의 언어가 너무 달라져서 교회 내에서 어떤 의미 있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운 지경이다. 과거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쳐 온 여러 기독 운동도 여전히 교회를 기반으로 움직여서 더 이상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구조다. 교회가 다시 사회 일원으로 긍정적 영향력을 회복하려면 구조 자체를 극복해야 한다.

- 교회의 보수성을 극복하자는 말인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보수 교회는 사회적 활동을 전도의 일환으로 생각해 왔다. 가령 '마을 만들기 운동'에 지역 교회가 참여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여전히 목표가 협소한 의미의 복음 전도인 경우가 많았다. 진보 교회는 오랜 기간 사회와 호흡해 왔지만 계도의 방식을 탈피하지 못해서 이제는 찾기 힘들 정도로 영향력이 약해졌다. 둘 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 어젠다를 적극 발굴하고 해결해 가는 새로운 시민사회 문법을 교회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교인을 동원하거나, 교회가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모습은 여전하다. 두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교회 밖에서 성장한 기독교 자원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기성 교회는 이걸 다 놓치고 있었다. 교회가 이들과 연결된다면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리라 생각했다. 교회 밖에서 이미 하나님나라 선교 관점에서 활동하는 이들에 주목한 것이다.

몇 군데 시민단체 실무자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교회와 시민단체를 연결할 네트워크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도시목회연구소, 도시선교연구소가 아닌 '도시공동체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교회가 도시 일원이 되어 시민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치자는 말이다.

2월 20일 열린 도시공동체연구소 10주년 감사 예배. 사진 제공 성석환
2월 20일 열린 도시공동체연구소 10주년 감사 예배. 사진 제공 성석환

- 한국교회가 모델로 삼을 만한 사례가 있나.

도시공동체연구소를 설립하기 전에 팀 켈러 목사가 개척한 뉴욕 리디머교회(Redeemer Church)를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는 'Hope for New York'이라는 NGO를 세워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 리디머교회 핵심 역량과 가치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NGO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리디머교회의 교회 개척 사역이나 도시 사역을 따라 하다가는 엉뚱한 길로 빠진다.

Hope for New York은 맨해튼 시민단체들과 교인들을 연결한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고 주중에는 교인들이 각 시민단체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한 연결뿐만 아니라 모금 운동까지 함께한다. 당시 Hope for New York 연구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여러 교회와 총회 관계자에게 이런 사역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실패했다. 뭐든지 교회 이름으로, 총회 이름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리디머교회는 교회 이름이 드러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사역도 시민단체가 직접 수행하게 했다. 이 모델이 한국교회 다음 어젠다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뜻이 맞는 분들과 도시공동체연구소를 창립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진도를 나가지는 못했다.

- 그간 '선교적 교회' 운동에 열심을 내 왔다. 영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s of Church)이나 그린벨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에 집중한 이유는?

교회가 시민사회 일원으로 지역사회에 존재하면서, 전도 목적이 아닌 시민 활동을 하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교회론·선교론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교회는 그동안 복지 사업을 많이 했다. 기독교 관점으로 복지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지만,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공동선을 위해 지역의 여러 주체와 협력하는 개념은 부족했다. 이것은 선교론의 부재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선교적 교회 운동을 열심히 한 것이다.

서양 시민사회는 부르주아 세력이 왕권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오랜 기간 역량을 축적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에야 비로소 반제국주의라는 시민사회적 경험을 시작했다. 이는 해방 이후에는 반독재 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시민이 누구인지 이해하는 폭이 아무래도 좁을 수밖에 없다.

이제 촛불 혁명을 경험하면서 시민이 주체가 되어 사회 어젠다를 주도하는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선교적 교회 운동은 그런 사회적 변화에 교회가 반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새로운 시대에 흐름에 맞춰 선교론, 더 나아가 교회론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 한국은 '시민사회'라고 했을 때 정파적 경향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교회가 시민사회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반제국·반독재를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시민사회라는 단어가 굉장히 확장됐다. 반독재를 통해 성장한 시민사회 영역 외에도 소셜 영역으로 불리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이들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마을 만들기로 대표되는 지역 공동체 운동도 기존 운동의 문법과 다르게 움직인다. 교회마다 자신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분야에 연결된다면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 교회가 시민사회 일원으로 동참하고 싶어도, 현 사회 분위기를 보면 공론장에 초대받을 수 있을까 싶다.

하버마스를 비롯해 서구의 대표적인 지성들이 교회에 공적 역할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 계몽주의를 통해 정립된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해 보니 부족한 점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톨레랑스가 분명 좋은 가치이지만 극단적으로 가면 모두가 각자의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게 되고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공공 영역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좋은 정치를 뒷받침하는 가치, 즉 윤리와 도덕을 생산해야 하는데 그 주체가 국가일 수는 없다. 하버마스는 이를 '의미의 저장고'(Reservoir of meaning)라고 부르고 그중에서도 종교 역할을 강조했다. 종교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도덕과 윤리를 생산해 낼 때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종교는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조금만 관점을 바꾼다면, 충분히 우리 사회 안에서 도덕적 자원으로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성 교수는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성 교수는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도시공동체연구소가 10주년을 맞아 사역 방향을 점검했다고 들었다. 어떤 변화가 있나.

그동안 선교적 교회 사역을 열심히 해 왔다. 그 열매로 한국선교적네트워크(MCNK)를 발족해 지금까지 이어 왔다. 이제 한국선교적네트워크는 본격적인 교회 운동으로 전환하여 목회자들이 이끌게 될 것이다. 도시공동체연구소는 10년 전 고민했던 문제로 다시 돌아간다.

10년 전 리디머교회 사역을 연구할 당시 Hope for New York 사역 슬로건이 'We Help People Who Help People' 이었다. 시의적절한 구호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위스테이', '위워크' 등의 브랜드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우리 사회 화두로 'We'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있다고 느꼈다. 도시공동체연구소는 'We Help People Who Help People'이라는 새로운 사역을 구상하고 있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각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뤄 가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교회가 대외 사역을 할 때 주로 미자립 교회를 지원했다. 이제는 그런 방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미자립 교회에 돈을 지원하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시대적 과제와는 다소 떨어져 있다. 최근 초대형 교회가 분립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전히 미자립 교회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분들의 진정성이야 충분히 공감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지역사회와 호흡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운동이야말로 한국교회가 지금 할 수 있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돕고 후원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참여와 실천까지 가야 한다. 각 교회가 사회적 실천을 선교로 받아들이고 사람과 자원을 지원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We Help People'는 한국형 선교적 교회의 실천이다.

도시공동체연구소는 지역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사진 제공 성석환
도시공동체연구소는 지역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사진 제공 성석환

기존의 교회 개혁 운동과는 약간 결이 다를 수 있다. 교회 개혁 운동이나 작은 교회 운동은 교회의 존재 양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도시공동체연구소 사역은 교회 크기와 상관없이 시민사회,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세우는 일이다. 기성 교회도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역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호흡할 방안들을 제시하고 실천 영역까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다. 선한 일을 하는 이들을 지원하고 돕는 일을 통해 교회 자원들이 공공 영역에 참여하도록 도우려 한다. 교회의 공공 영역 참여가 곧 선교이며 하나님나라 운동임을 증언하고자 한다.

젊은 세대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과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상상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교회 활동이 교회 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향하는 교두보가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특별히 이미 사회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그리스도인이 많다. 그들을 찾아 격려하고 돕는 사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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