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10년 전 오늘] 삼일절 기념사와 정치혐오

'국민의 눈' 가리기 이젠 그만…독립운동의 역사를 더럽히지 말아야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3.01 08:56:20
[프라임경제] 지난해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서훈했습니다. 17세 소녀에 불과했던 유 열사는 만세운동 과정에서 양친을 일본 경찰에게 살해당했고, 모진 고문과 투옥생활 가운데서도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유 열사에 대한 회상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가장 뜨거웠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100년만에 기념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본은 또 다시 위선과 억지로 무역분쟁을 일으켰죠.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전국적인 'NO JAPAN' 운동으로 화답했습니다.  

일본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생각은 확고했고, 숫자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유 있는 저항은 결과를 만들어 냈고, 양국간 상호 동등한 지위에서 정직한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창궐로 일본과 힘을 모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일본의 국민들도 고귀한 생명을 존중받아 마땅하며,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한 노력에 양국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간 우리 지도자들은 기념사를 통해 '듣기 좋은 거짓말'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더럽혀 온 측면이 있습니다. 단호하고도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처럼 말하고는 굴욕적인 외교정책을 펼쳤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더니 뒤로는 일본의 주장만 반영해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에 프라임경제는 10년전 3.1운동 기념사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3명의 전·현직 대통령과 1명의 권한대행이 독립기념관에서 꺼낸 기념사를 통해 우리 정부가 어떤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왔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현재의 3.1운동 기념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하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2008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에서 삼일절 노래를 부르는 모습. ⓒ 국정홍보처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나라를 빼앗기고, 총칼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우리 민족은 남을 배격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하려 하지 아니하>였고 <일본의 소의(少義)를 책하려 아니하>였습니다.
오직 일본으로 하여금 <부자연하고 불합리한 착오상태를 개선광정(改善匡正)하여, 자연 합리한 정경대원(正經大原)으로 귀환>케 하고자 했습니다.
일본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다만 일본의 비정상을 바로잡아 옳은 길로 이끌고자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큰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자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비전이라 하겠습니다."
2010년은 한일경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로, 나라를 잃었던 한 세계를 거쳐 백년대계를 기약하는 의미있는 시기였습니다. 취임 세번째 3.1절 기념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를 언급했고, 우리민족이 일본에 대해 원망하거나 추궁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일본은 지난 해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양국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냉전을 넘어 세계화로 가는 21세기에 이제 20세기의 유산을 청산해야 합니다."
반면 이듬해 이 전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 정립에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의 담화문을 인용했습니다. 간 나오토 전 총리 담화문은 '식민지 지배가 가져다 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심정)을 표명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재(在)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반환 지원, 조선왕실의궤 반환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 총리가운데 가장 전향적인 담화였으나, 상징성을 고려하면 일왕의 사과가 우선이어야 했다는 주장과 불법 병합부터 위안부 피해자 지원과 독도문제에 대한 언급이 빠져 반쪽짜리 사과라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론은 '간 나오토 총리'에게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한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며 '사이다'라고 추켜 세웠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적어도 삼일절 기념사에서 만큼은 일본에게 강도높은 책임을 묻기 위한 발언을 매년 이어갔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 '굴욕외교'가 있었다는 사실은 퇴임 이후에 밝혀지게 됩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3.1운동이 오늘날 더욱 빛나는 것은 위대한 '관용' 정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논리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은 원한과 복수가 아니라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를 호소했습니다. 
…중략…특히 군대 위안부 문제만큼은 여러 현안 중에서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인도적문제입니다. 평생 마음에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온 할머니들은 이제 80대 후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분들이 마음에 품은 한을 살아생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은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마지막해 삼일절 기념사에서 여전히 위안부에 대해 조속히 해결하라고 말하는 한편 앞서 '관용'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수위를 조절합니다. 

그해 5월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처음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집고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 보상입법을 위한 일한공동행동' 사무국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일본제철의 판결 수용은 2012년 6월 열린 이 회사 주주총회에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주주들이 "재판에서 지게 되면 배상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신일본제철 경영진 측은 "배상하라는 결과가 나올 경우 어쨌든 법률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의 보도에 인용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의 발언을 보자면 "이명박 정부 초기에 대일관계에서 이명박 정부는 과거사, 즉 한일 과거사를 잊지는 않겠지만 한일과거사에 연연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서 비즈니스 관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박 실장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8년 2월25일 한일정상회담에 관한 주일 미 대사관의 비밀전문'을 인용했습니다. 주일 미 대사관은 '양측이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교과서 논란을 가볍게 취급하고 넘어갔으며 한국 대표단은 일본 측에 약간의 우려만 전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비밀전문은 이 전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가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양국의 정치인들은 신일본제철의 배상의사와 달리 한일관계 이슈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소비한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은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역사왜곡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뉜 한일관계 이슈 가운데 독도와 교과서 논란에 대해 '우려'만 했다는 것입니다.  

즉 대국민 메시지로는 '이미 일본도 인정한 바 있는 위안부 문제'를 선택했지만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정되자, 나머지 두가지 이슈에 대해서도 강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은 재상고심을 제기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새로운 증거나 쟁점이 없기 때문에 '심리 불속행'을 통해 하급심 판결이 확정되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원합의체로 선고를 미루게 했지요.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이 한 번 판단했던 사안을 판례 변경 등 중대한 변수가 있는 사안을 다루는 전원합의체로 넘긴 유일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습니다. 재판거래까지 포함하면 유례없는 사법부의 망신이자 매국적 행동으로 비판받게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2012년 삼일절 기념사가 그해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한 기회였습니다. 이 날 언급한 '관용'을 통한 '일본과의 우호 강화'가 표심에 영향을 미쳤는가는 다음 총선이 있던 2016년 삼일절 기념사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취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는 어땠을까요. 취임 첫해 박 전 대통령은 '창조경제'와 일본의 올바른 역사관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기념사 일부를 발췌해봤습니다.   

2016년 3월1일 충남 천안 독림기념관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일절 기념사를 낭독하는 모습. ⓒ 국정홍보처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저는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국력의 토대가 되도록 만들 것…중략…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양국의 미래 세대까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세대 정치지도자들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아픈 과거를 하루빨리 치유하고, 공영의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변화와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취임 직전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가 취임합니다. 따라서 당시의 삼일절 기념사는 각각 새로운 지도자가 정권을 잡은 직후로, 적어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어떤 대일관계를 설정할 것인지를 양국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즉, 전범국과 피해국을 구분해서 문제를 바라볼 것이라는 메시지는 전달한 셈이죠. 그러나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의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표현은 빠져있습니다. 독도에 대한 왜곡 교과서를 일본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지적도 없었습니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면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던 역사 인식이 있었기 때문…중략…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중략…
특히, 한평생을 한 맺힌 억울함과 비통함 속에 살아오신, 이제 쉰다섯 분밖에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 받아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할수록 초라해지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듬해 박 전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들고 나왔습니다. 또 이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간 나오토 담화'가 아닌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인용합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년과 달리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발언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다만 전년도에 언급했던 '창조'는 사라졌습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우리는 양국이 미래로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할 역사적 과제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올해에 들어서도 벌써 두 분의 피해 할머니들이 평생 가슴에 맺힌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쉰 세분만이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0세에 가까워서 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며,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 이라는 최근 한 역사학자의 지적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웃관계에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이 날의 기념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2010년대 삼일절 기념사 가운데 위안부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렇듯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가 지속되는 원인을 일본정부로 지목하고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12월 28일 박 전 대통령은 '이면합의', '졸속합의'로 알려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합니다. 정부 주도하에 '불가역적'을 못박은 이 협상은 사실상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가장 심하게 모욕한 행위로 지난해 한일 무역 분쟁의 단초가 됩니다.

협상 자체가 일본측의 요구를 반영해주는데다, 양 국이 자국에 발표한 협상 결과가 서로 다르게 공표돼는 등, 우리 정부의 무능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2017년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밝혀낸 사실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TF 보고서는 비공개 부분 내용에 대해 "일본 쪽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피해자 관련 단체를 특정하면서 한국 정부에 설득(합의에 대한 불만시 설득)을 요청했고, 이에 한국 쪽은 '관련 단체 설득 노력'을 하겠다며 일본 쪽의 희망을 사실상 수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측은 해외에 상(像·소녀상), 비(碑·기림비) 등을 설치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려 했고, "한국 쪽은 '지원함이 없이'(지원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비공개 부분에) 넣는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으며, 특히 일본 측은 한국 측에 '성노예(sexual slavery)'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원했고, 한국 측은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했음을 비공개 부분에서 확인했습니다.

또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도 이전 될 뻔 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다"고 밝힌 데 대해 한국 측은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답했던 것으로 나왔습니다. 

같은해 대법원은 2015년 1월 정부기관이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을 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을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변경된 민사소송규칙에 따라 2012년 나온 대법원 소부 판결을 전원합의체로 보내어 버리는 '재판거래'를 실행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지난해 말, 24년 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간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명예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역사의 과오를 잊지 말고, 이번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온전히 실천으로 옮겨서 미래 세대에 교훈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서로 손을 잡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듬해 삼일절 박 전 대통령은 불가역적이라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 기념사에서 '한 분 한 분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면합의에 대한 내용은 밝히지 안은 채, "합의의 취지를 실천하자"는 발언은 국민을 상대로 한 가장 지저분한 거짓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실 당시 '합의'로 인한 부정적 여론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는데 이 기념사가 한 몫을 했습니다. 협상 자체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누구의 입장에서 직시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 약화의 엑셀레이터를 밟은 것과 다름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 들어 두번째로 치뤄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대통령이 몸담았던 새누리당이 1석차이로 원내 최대정당 자리를 내어주게 됐습니다. 직전 과반의석을 확보했던 것을 볼 때 '참패'한 셈이죠. 

또한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약진했고,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시키며,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을 만들었습니다. 박 대통령 개인에게는 '오명'이 됐을지언정 민주주의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승리'의 역사로 기록됐습니다.

2017년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 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의 출발점이자 필요조건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미래세대 교육입니다. 정부는 이와 같은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중략…일본 정부도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미래세대 교육과 과거사의 과오를 반성하는 데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피해자 분들이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고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탄핵정국에 돌입한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現 미래통합당 대표)가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기념사를 맡게 됐습니다. 황 전 총리는 양 측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는 대신, 전년도 합의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실상 대일정책을 수립하거나 실천하기에 황 전 총리의 권한과 주어진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정책을 수립하기에는 앞서 '불가역'이라던 협상의 결과가 있었고, 이를 반대하거나 변경하기 위해선 이듬해 대선이라는 정치적 과제가 선결돼야 했지요.

당시 황 전 총리 정권은 새로운 정부라고 말하기엔 '권한대행' 타이틀에서 부터 약점이 됐고, 자신을 임명한 전임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민심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전향적인 발언을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2019년 3월1일 문재인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 낭독. ⓒ 청와대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입니다.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이전 정권이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강대국과 타결한 협상을 번복하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독도문제와 관련해선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또 위안부 문제의 가해자로 일본정부를 특정하고, 종결되지 않았다며 '불가역 합의'를 뒤집습니다. 여론은 전 정부의 약속을 '무효화' 함으로 국제 관계의 손해가 예고되는 상황에도 큰 용기를 냈다고 칭송하거나, 무리한 발언이라는 비판으로 엇갈렸습니다.

현재 코로나19로 대중외교와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여론이 갈리고 있지만, 당시 합의를 파기함으로 일본과의 동등한 관계를 설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충분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 일부발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3.1독립운동이 배타적 감정이 아니라 전 인류의 공존공생을 위한 것이며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로 가는 길임을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과감하게 오랜 잘못을 바로 잡고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을 밝혔습니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우리의 정신입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한국과 일본이 굳건히 손잡을 때 평화의 시대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위안부, 독도와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발췌한 부분이 유일하게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대신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뤄왔던 강제징용 선고를 내립니다.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선택을 정치적 거래라고 판단했다면, 이후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행보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국가적 분쟁을 담보한 선이 어디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독립적인 판단으로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대통령의 의사와 관계없었던 것이길 바라 마지 않습니다. 법치주의와 삼권분리가 민주주의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이 기사에서 재차 강조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후의 사정은 예고됐던 바와 같이 양국간 무역분쟁으로 치달았습니다. 가장 선명했던 대일 메시지는 부정적인 효과 또한 명확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과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공감했고 국가적 합심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 수요집회는 아직도 열리고 있습니다. 19명 남은 피해 할머니들의 생전에 진정성을 갖춘 일본의 사과와 피해보상이 요원하다는 사실은, 또 다시 삼일절 기념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지 모릅니다. 

항간에선 중국과 여당이 손을 잡고 여론을 조작한다는 풍문이 돌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신속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국민은 더 이상 우롱당하는 정치를 보고싶어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오늘의 대국민 기념사를 통해 거짓말로 도배되온 과거에서 벗어나 분명하고도 구체적이며 불가역적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약속받길 기대합니다. 또 대통령은 한 마디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 말길 당부합니다. 우리의 역사적 배경이 정부 설립의 기반이었다면, 지금의 국민들은 현 정권 설립의 기반입니다. 

[뱀발] 새해를 맞이하며 찾아온 코로나19는 두자릿수 사망자를 기록하며 국가적 재난사태에 처했습니다. 전염병을 갖고 들어온게 우리국민이라고 하더라도 초기 방역에는 분명히 실패했습니다. 

또 신천지의 무책임한 태도로 피해자가 늘은 만큼, 사회적 안전망에 빈틈이 많았다는 지적도 당연합니다. 최대한 많은 확진자를 찾아내 치료하겠다는 태도는 환영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 까지 국민들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대구와 경북을 봉쇄한다거나 감염학회가 중국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추천하지 않았다는 등 여권과 정부의 메시지 관리도 실패했습니다. 

역대 삼일절 기념사를 정리하다보니 2018년 "어떤 위기에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 대통령의 발언이 보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흔드는 것은 외부가 아닙니다.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서 기념사가 더 이상 허언으로 그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