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식 목사는 이번 총선은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라고 말했다. 하나님나라 가치에 부합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문식 목사는 이번 총선은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라고 말했다. 하나님나라 가치에 부합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4·15 총선을 앞두고 교계가 술렁인다. 광화문에서 반정부 집회를 이끄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는 문재인 정권이 공산주의·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며 막아야 한다고 외친다. 노골적으로 보수·우파 정당을 지지하면서 문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선동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존경과 덕망을 받아 온 원로들도 시국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는 '말씀과순명' 기도회에서 "이번 4·15 선거는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라면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체제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홍 목사에게 해명해 달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내자, 이번에는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원로)가 반박하는 글을 게재했다. 정 목사는 기윤실을 향해 "왜 이번 선거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중 하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인지 심사숙고해 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이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때아닌 이념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복음주의 운동에 앞장서 온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는 이번 총선이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성서한국·남북나눔운동·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에서 활동해 온 이 목사는 "나라가 촛불 항쟁을 통해 성숙한 시민사회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일을 하는 정당·정책·정치인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독교인은 하나님나라 가치를 우선에 두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정의·사랑·평화·평등·자유 등을 실현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교계 안팎에서 논란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됐든 말씀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복음은 좌우에 있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상대화해야지,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 복음이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때에는 진영 논리에 빠지게 되며 교회는 함몰된다고 했다.

이문식 목사를 2월 19일 수원 광교산울교회에서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대표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목사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숭배 벗어나야
정의·사랑·평화 하나님나라 가치가 먼저"

- 총선을 앞두고 교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기총 전광훈 목사 같은 극우적 인사뿐만 아니라 교계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던 분들까지도 체제 문제를 이야기한다. 기독교인은 이번 선거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기독교인은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총선은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다. 하나님나라 가치를 실현하는 정당·정치인을 뽑으면 된다. 정의·사랑·평화·평등·자유, 약자를 향한 보호 등이 하나님나라 가치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는 '평화'라고 본다. 분단 상황에서 평화는 최고 우선순위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평화 문제에 애를 썼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는 '핵'을 빼놓을 수가 없다. 기독교인은 반핵·비핵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비핵 평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우리도 핵무장하자", "전술 핵이라도 들여오자"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됐든, 모두를 말살하는 핵은 정당화할 수 없다. 남북 모두 핵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의 핵도 마찬가지다.

- 이번 4·15 총선을 앞두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라는 주장도 있다.

이번 선거는 사회 재구성 논의와 무관하다. 지나친 주장이다. 체제 선거, 진영 선거, 이데올로기 선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숙한 시민사회로 들어가는 것과 관련해 현 정부가 잘하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순기능을 하는 정당이 있는지, 그러한 정책이 있는지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딱 하나다. 촛불 혁명으로 시작한 시민사회에 맞는 정부인지, 정당인지, 정치인인지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앞으로 시민사회가 발전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끌 수 없을 것이라 본다. 대통령의 임명 권한을 줄이고, 지자체에 힘을 더 실어야 한다. 지방분권을 잘 다듬어야 추후 통일할 때 발생하는 압력, 예를 들어 서울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 등을 골고루 분산할 수 있다.

이런 과제들을 앞에 두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하는 정치 세력이 누구인지 판단해야 한다. 특정 정당의 모든 면을 다 찬성할 수는 없다. 언제나 비판적 지지자의 자세로, 그래도 누가 더 나은지 판단해야 한다.

- 한국교회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데올로기는 사상+권력을 말한다. 안 따르는 자는 처단하고, 자기비판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종교화하거나 우상화한다. 한국교회 현재 상황은 신앙+이데올로기다. 위기라고 판단했을 때 복음보다 이데올로기가 우위에 선다. 이는 우상숭배와도 같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든 혹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든, 말씀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반정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반정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전광훈 목사는 반공 사상을 앞세워 반정부 집회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는 주로 노년층이 참여한다.

나는 대한민국을 크게 1~3세대로 분류한다. 모두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1세대는 태극기 집회에 주로 참여하는 70대 이상 세대다. 이분들은 6·25 전쟁을 겪었고 자유민주주의 가치 형성에 기여했다. 공동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2세대는 386, 소위 민주화 세대다. 전두환 군부와 싸우며 고문당하고 투옥됐다. 이들은 공동체를 위해 생애를 투신했다. 3세대는 세월호 세대다. 이들은 참사 당시 광화문광장에 나와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10대들이 광장에 나와서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연설하는 곳이 없다. 세월호 세대를 보면서 한 세대가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감동했다. 공동체 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인식하는 세대다.

1세대는 불행히도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빨갱이' 하면 죽창이 생각나고, 떨리고 두려워하는 세대다. 실제 내가 그 세대였더라도 그렇게 느낄 것 같다. 레드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세대로서, 성경에 나오는 가인처럼 트라우마 탓에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이들은 평화가 없는 세대다. "빨갱이가 와서 죽일 거다", "핵 폭격한다", "미사일 쏜다"와 같은 말에 증오·분노·공포를 느끼며 생애를 보냈다. 나는 이분들의 아들 세대로, 그 두려움을 이해하지만 증오와 트라우마 같은 아픔은 다음 세대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 끊어야 한다.

용서와 화해·사랑 없이 공존은 없다. 적대적 증오만 있는 곳에 어떻게 기독교 아가페 정신이 존재할 수 있겠나. 1세대 기독교인은 가인이 유랑자가 되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의 평강에서 벗어난 상태다. 레드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거다. 이들에게 이데올로기는 성경보다 더 절대적이다.

하지만 복음은 좌우 모든 이데올로기를 상대화해야지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때 진영 논리에 빠진다. 교회는 함몰된다. 교회는 손양원 목사와 같은 아가페 영성으로 이데올로기를 이겨 내지 못했다.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만 용서와 포용이 나온다.

이번 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일어난 정부다. 광화문 촛불은 6월 항쟁 이후 30년간 지속된 민주화 과정의 완성이었다. 촛불의 요구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 당시 3세대들은 "시민사회를 위한 정부는 어디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중요한 질문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권 이후 모든 정권은 여기에 대답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을 맞았다. 대답 못 하면 이 세대가 언제든지 등 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정'이란 화두에 문재인 정부가 몇 가지 실망을 안겨 주니까 많은 젊은 세대가 등을 돌리지 않았나.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공정 가치 실현해야
증오 대물림해선 안 돼
구조 악뿐 아니라 일상의 악과 싸워야"

이 목사는 이데올로기가 복음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를 우선하는 건 우상숭배와 같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 목사는 이데올로기가 복음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를 우선하는 건 우상숭배와 같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말씀하신 3세대가 실망했다는 '공정'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문재인 정권은 촛불 민심으로 탄생했다. 국민이 싸워 만든 정권이다. 책임을 지고 응답해야 한다. 세월호는 국가적 위기가 일어났을 때 정부가 부재했던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국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고무적이다. 전세기를 띄워 교민을 데려오고, 강원도 산불 등 대형 사고에 비교적 대처를 잘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와 확실히 다르다. 촛불의 또 다른 요구인 적폐 청산도 열심히 했다.

다만 요즘은 문제가 있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옛날 운동 방식으로, 적폐 청산한 그 자리에 자기네 사람을 대신 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젊은 세대의 정의는 민주화가 아니라 공정이다. 공정성 문제는 약자와 소외된 사람 눈에는 잘 보인다.

젊은 세대는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이전 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현 정부도 공정이라는 가치에 무신경하다고 본다. 입시 공정성 문제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고, 권력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이번 선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정부 집회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젊은 그리스도인이 많다. 교회가 반동성애 등 소수자 이슈와 이데올로기를 결합해 정치권력 확보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분들은 증오의 씨앗을 뿌리면서 증오를 재생산하려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증오는 절대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증오는 혐오를 일으킨다. 형제의 가슴에 총질을 한 1세대에게는 하나님이 평화를 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전쟁을 많이 하고 피를 많이 흘려서"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증오를 재생산하는 1세대는 3세대에게 평화의 영성을 물려줄 수가 없다.

증오·혐오 프레임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석될 것이다. 역사적 과정을 보더라도 이런 보수 반동은 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증오를 가지고 계속 싸울 것이다. 분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거듭나는 과정은 50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본다. 그 기간, 자유한국당 같은 보수당이 다시 집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밀고 당기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조금씩 펼쳐질 것 같다.

-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떤 과제에 집중해야 할까.

교회는 구조적 폭력뿐만 아니라 일상의 폭력을 극복해야 한다. 사랑·용서·포용의 영성을 안고 시민사회와 사회 공동체를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 지역사회 공동체에 녹아들어서 협업하고, 함께 헌신해야 한다. 흔히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거창하다. 자기 동네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만 해도 다행이다. 지역 안에서 공공성을 실현해야 한다.

교회는 시민교육 운동을 병행하고, 시민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지역 시민단체, 환경운동가, 여성 운동가, 싱글맘 운동 단체, 이주 노동자들과 소통해야 할 과제가 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교회가 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여성, 약자, 이주 노동자뿐 아니라 고용 외주화, 비정규직을 향한 폭력이 일상화하고 있다. 강자 중심의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개인 윤리만 잘 지키면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조 악뿐 아니라 일상의 악과도 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거와 관련해서 거듭 말하지만, 교회는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하나님나라 가치를 가지고 정책·인물·정당을 평가해야 한다. 건강한 시민사회는 하나님나라 가치에서 시작하리라 믿는다.

이문식 목사는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나왔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했지만, 공정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문식 목사는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나왔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했지만, 공정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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