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72. 한양 도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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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도읍지 거닐며 나도 ‘왕’이 된다

북한산 한양도성 둘레길 모습. 성곽은 복원이 잘 되어 무너진 곳이나 부서진 곳이 없고, 둘레길도 관리가 잘 돼 반질거린다. 북한산 한양도성 둘레길 모습. 성곽은 복원이 잘 되어 무너진 곳이나 부서진 곳이 없고, 둘레길도 관리가 잘 돼 반질거린다.

서울로 원정 갔다. 서울에는 한국인이라면 가볼 만한 곳이 많다. 그중에서도 인사동, 북촌, 한양도성을 잇는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출발점은 서울이 내세우는 인사동 거리다.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 11번 출구로 나가면 탑골공원과 만난다. 왼쪽으로 구부러지면 바로 악기 판매상이 몰려 있는 낙원상가와 인사동 거리가 나온다. 인사동 거리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액세서리 점포들과 골동품점, 향토 음식점, 옷가게, 고서점 가게들이 이어져 있어 고급스러운 문화 향취가 풍겨 나온다.


전통 문화 향취 그윽한 인사동서 출발

북촌 한옥마을 거쳐 한양도성 닿아

복원 잘 된 성곽과 정비 잘 된 둘레길

말바위 전망대서 서울 조망하며 땀 식혀


숲과 자연 어우러진 삼청공원 부러워

맛집서 소머리곰탕과 단팥죽 ‘입 호사’

이어지는 고궁과 다양한 문화시설

하루의 여유, 넉넉하게 즐기기에 충분


인사동 골목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과거가 있고 살림이 있고 현재가 숨 쉬고 있다. 몇 번의 방문에도 싫증 나지 않는 이 거리는 부산 사는 이에게는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부산에도 이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보수동 책방 골목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곳은 헌책방이라는 것에 국한되어 있어 많은 차이가 난다.

인사동은 우리 삶의 총체적인 모습들인 의식주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과 어깨를 비껴가며 걷는다. 실내에 조성된 쌈지길과 마주 보는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우리나라 불교 선종의 총본산인 조계사가 있다. 길 하나를 건너 조계사를 들렀다.

광화문 광장의 뒤쪽에 자리 잡은 조계사에서 나와 율곡로를 따라 걸어가면 종로경찰서가 나오고 종로경찰서 앞 건널목을 건넌다. 곧바로 이어지는 길이 윤보선로다. 그곳에서부터 북촌마을이 펼쳐진다. 길을 따라 좌우로 한옥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양반골로 이뤄진 북촌은 여러 동네가 합쳐져 어떤 특정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전통적인 한옥마을을 이룬다. 기와지붕의 처마 능선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미학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기에 정겨움이 절로 느껴진다. 북촌은 넓은 영역으로 골목골목이 나름의 멋과 운치를 안고 있어 많은 생각이 피어난다. 골목을 걷다 보면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넓은 길을 따라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헌법재판소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북악 스카이웨이가 출발한다. 오른편에 남북회담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그곳에서 길을 따라 오르면 성균관대학교 후문을 지나 작은 터널 앞 오른쪽이 와룡공원이다. 작은 정자 하나가 있고 화장실이 있는 성곽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간을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시인 한용운 선사가 만년에 머물렀던 심우장과는 700m 거리로 가까이 있다.

와룡공원에서부터는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다. 성곽은 복원이 잘 되어 있어 무너진 곳이나 부서진 곳이 없다. 새로 끼워놓은 돌과 오래 묵은 돌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성벽을 이룬다. 낮은 곳은 보통 사람의 키 높이이고 높은 곳은 서너 길이 됨직하다. 성곽 밑에는 둘레길이 잘 닦여져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관리가 잘 되어 반질거렸다. 길은 성곽 아래를 따라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회를 시킨다. 군부대 경비초소 때문인가 보다. 아래쪽으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등에 땀이 맺힌다.


검은 산 하얀 성벽을 따라서

창칼을 손에 든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돌을 깨어 나르고 쌓던

흰옷 입은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성벽에는 눈과 귀와 입이 있다

산 등을 따라 가로막아 선 성벽은

가두는 일을 하지 않는다

백성을 다만 품어 안을 뿐

성벽이 나누는 건 피아가 아니다


목표지점을 말바위로 정하고 덱으로 만든 계단을 타고 오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가면 성곽을 따라가는 종주 길이고 말바위는 왼쪽으로 가라는 표시가 있다. 말바위는 조선시대 북촌에 사는 선비들이 여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말을 타고 올라와 가무를 즐기던 전망 좋은 바위를 일컫는다.

전망대가 설치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미세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흐린다. 남산 타워가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땀이 식을 때까지 조망하다가 왼쪽으로 난 삼청동 가는 길을 따라 하산한다. 가파른 길은 계단이 나 있어 편하게 내려갈 수 있다.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숲에는 식목한 화살나무들로 길을 곱게 다듬어 놓았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르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마음만 먹으면 5분 이내로 숲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산을 다 내려간 곳에서 삼청공원을 만난다. 가급적 인공물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을 그대로 살려 이를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부산의 공원들은 너무 많은 체육시설과 인공물들을 설치해 자연을 훼손시켜 놓은 공원들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서울 삼청공원이나 와룡공원 같은 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숲과 언덕에서 조용히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옛것과 현재가 공존하는 인사동 길의 초입. 옛것과 현재가 공존하는 인사동 길의 초입.

삼청공원 입구에 있는 공무원 연수원을 지나니 금융연수원이 나온다. 점심 무렵이라 인근 맛집을 찾았다. 유명한 집인지 모르고 들어갔는데 벽면에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다녀갔는지 서명지가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유명한 집인 것 같다. 한옥으로 소머리곰탕이 주메뉴였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삼청동에서 꽤 이름난 단팥죽 집을 찾았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집이다. 왜 첫째가 아니고 둘째라고 이름 붙였느냐는 질문에 자신들보다 더 잘하는 집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겸손을 떤다. 사실 그 말은 자신들이 서울에서 첫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자부심이 숨겨져 있다. 손님들은 그 겸손에 현혹돼 단팥죽을 먹으러 먼 곳에서도 찾아온다. 사실 맛도 좋았다. 우연히 들른 음식점들이 맛집이어서 다행이었다.


삼청동 공원 입구 모습. 삼청동 공원 입구 모습.

그곳을 나와 조금 걸으니 국무총리 공관이 나오고 경복궁 뒤쪽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나온다. 더 내려오면 경복궁 동문 맞은편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문화시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 서울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젊은 아베크족들도 미술관이나 고궁을 찾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품격 높은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미술관을 나와 경복궁에 들어섰다. 고궁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부산에도 고궁이 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단지 바다가 없는 서울은 한강을 굽어보며 바다를 대신하고 있지만 파도치는 바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부산 사람들의 유일한 자부심이 되지 않을까. 서울 사는 젊은이들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부산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듯이 부산 사람들은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서울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회루를 한 바퀴 돌아 근정전 앞으로 갔다. 외국인은 물론 수많은 남녀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고궁을 배회하는 모습이 또 다른 볼거리다. 관광객이 관광 상품이 되는 경우다. 품계석에 기대어 기념사진도 찍고 왕이 된 듯 위엄을 떨어보기도 한다. 여유도 있고 하루를 보내기에 넉넉한 시간이었다.

덧붙여 지난 회에 게재된 아홉산 숲의 철조망 울타리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그것은 산을 개방했을 때 무분별한 음주·가무와 취사 행위, 임산물 불법 채취로 인해 숲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설치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를 간과한 내용이었다. -끝-

강영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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