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국민 절반이 아프다는데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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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3   |  발행일 2020-01-13 제30면   |  수정 2020-01-13
국민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정치인 뽑았는데 반대 결과
보수와 진보 서로 견제하되
함정에 빠뜨리는 술수 안돼
난세에 지도자 없는게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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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소설가

선진국은 가치의 다원주의가 정착되어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비판할지언정 적대감을 갖고 공격하지 않는다. 상호 경쟁하여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론의 차이쯤으로 여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가 특이한 대결과 갈등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마치 해방공간사와 6·25전쟁사의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여기듯. 이런 편 가르기의 주모자는 설명하지 않아도 정치지도자들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절반이 아프다고 한다. 건강검진을 받은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질병이 있거나 의심환자라는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은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함께 짊어진 특이한 국민이 되어 버렸다. 국민은 편안하게 살기 위해 정치인을 뽑았다. 그런데 그들이 국민을 아프게 만들었다.

진보정당은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평과 평등을 모색해야 하고 보수정당은 현 체제 속에서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유와 선택을 모색해야 한다. 공평, 평등이나 자유, 선택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좋은 나라가 되려면 진보와 보수가 서로 견제하되 함정에 빠뜨리는 술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

김영삼정권 후반기엔 삼풍백화점 참사와 성수대교 사건, 대통령 자녀의 비리와 외환위기를 비롯한 사건사고가 이어져 칼럼 쓸 거리가 넘쳐났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시절과 매우 다른 양상이다. 그 시절에는 큼직한 사건사고가 연달아서 한 가지 주제로 비판적 칼럼을 썼는데 요즘은 사건사고가 서로 엉켜서 주제를 선정하기 어렵다. 대통령, 조국, 청와대, 검찰, 울산시장, 감찰무마, 광장대결, 여야혈전, 경제위기, 부동산실패, 반개혁 따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 모두가 국민 외면, 국민 불통, 국민 분노로 연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10일, 이 날은 진정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는데 2년7개월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 묻고 싶다. 세상은 내 편과는 손을 잡고 다른 편과는 경쟁하기에 인류가 빠르게 진화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국민을 위해 대통령과 권력이 존재하는 것이지 대통령과 권력자들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가슴에 새겨야 한다.

영화 속 해적선장은 거개가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시각장애인이다. 칼싸움을 하다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선장은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이다. 전깃불이 없던 시절에 다른 배를 습격하여 선실에 들어가면 깜깜하기 마련이다. 숨어있던 상대편이 급습하면 방어할 수 없다. 사람의 눈은 깜깜한 곳에 들어가면 10여 분 정도 지나야 사물을 구별할 수 있다. 공격할 때 선장은 부하보다 먼저 위험한 선실에 들어가는 지도력을 갖춰야 한다. 선실에 들어서는 순간 안대를 벗으면 바로 사물을 분간할 수 있기에 평소 불편해도 안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적 선장조차도 지도자의 덕목을 갖춰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판에 그런 지도자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이 없다는 게 나 혼자만의 분노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라가 어지러울 때 현자가 나온다는데 이 어지러운 시절에 현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바른 소리를 하면 미움을 받고 집단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리라. 바른 소리를 귀담아 들어줄 지도자가 없다는 게 비극이다. 김홍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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