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달인’이 펼쳐놓은 고군산군도의 흑백풍경…대구 첫 전시회 여는 민병헌 작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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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30   |  발행일 2019-10-30 제22면   |  수정 2019-10-30
유럽·미국서 인정받는 한국작가 중 한명
감각과 직관에 충실한 사진 작업 선보여
1990년대부터 촬영한 누드시리즈도 소개
‘회색의 달인’이 펼쳐놓은 고군산군도의 흑백풍경…대구 첫 전시회 여는 민병헌 작가
민병헌 ‘고군산군도’
‘회색의 달인’이 펼쳐놓은 고군산군도의 흑백풍경…대구 첫 전시회 여는 민병헌 작가
민병헌 사진작가

아날로그 흑백 프린트를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는 사진작가 민병헌(64). 한국 사진계에서 그는 독보적인 존재다.

1984년 울퉁불퉁한 자갈길에 어지럽게 바퀴 자국이 팬 땅바닥을 스트레이트로 거칠게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1990년대 중반 잡초(weed) 시리즈로 자신만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사진계에 이름을 확고하게 새겼다. 이후 40여년, 중간톤 회색조의 프린트를 통해 드러나는 서정적인 자연 경관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한국의 사진가 중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민병헌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아트갤러리 루모스의 초대로 열리는 ‘자연과 인체’전이다. 12월22일까지.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강, 잡초, 안개, 나무, 설경, 폭포를 잇는 새로운 자연 시리즈 ‘고군산군도의 풍경’이다. 2015년 군산으로 작업실을 옮긴 뒤 시작한 새로운 작업을 이번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였다. ‘회색의 달인’이라는 수사가 말해주듯 작품은 온통 부드럽고 은근한 잿빛의 변주로 채워진 흑백의 스트레이트 사진들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중간 회색을 드러내는 그의 사진은 위치와 거리, 방향에 따라 조금씩 톤이 달라지며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목격하게 한다.

그의 사진은 지루하다. 절제된 빛 때문에 원근감은 사라지고 톤도 콘트라스트도 없이 오직 흐릿한 이미지로만 보인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잡힐듯 잡히지 않는 그것들은 어떤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에 익숙해져야 하나둘씩 사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듯, 관객들은 작품 앞에서 아주 오랜 시간 머물러 귀기울여야 한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아주 많은 것을 말해주는 그의 사진을 감상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 지루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지루할 만큼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게 사진은 ‘하는 것’이지 ‘찍는 것’이 아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찰나다.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는 대상과 교감한다. 직관적으로 대상이 와 닿는 순간까지 자신의 감성을 채우고 끌어 올린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그는 온전히 즐긴다. “나는 머리가 곤두설 때 셔터를 누르고, 톤이 소름 끼치게 좋아야 작업을 마친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초지일관으로 감각과 직관에 충실한 사진을 ‘한다’.

“나는 인화에서도 여전히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고집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디지털을 부정한다, 고집이 세다 라고 한다. 요컨대 나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여태 해왔고 계속 해나갈 뿐이다.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지 매체나 재료, 기법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냥 나는 아름답게 보여줄 뿐이다. 비록 지루하고 촌스러울지라도.”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또 다른 연작 누드도 감상할 수 있다. 신체를 다소 적나라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한 사진에서 농밀한 분위기를 환유하는 사진까지 1990년대부터 촬영한 누드 시리즈 중 일부를 선보인다. “희미하며 아스라하며 잠기고 있으며 겨우 떠오르고 있다”는 그의 표현처럼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 살아있다. 화이트의 밝은 톤에서 블랙의 어두운 톤까지 다양하게 변주되는 누드 작업은 지금까지 쌓아온 풍경 작업을 누드를 빌려 새롭게 음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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