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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행복한 게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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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7 07:00:11   폰트크기 변경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뒤꿈치에서 종아리까지가 뻐근하다. 할 수 없이 난간을 붙잡고 발을 옆으로 돌려 걷는다. 새끼 게 앞에서 뽐내며 걷는 어미 게가 된 거 같아 픽 웃음이 난다.

매주 토요일 산행을 한 지 6개월,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 지난 토요일 광청종주를 했다. 광교산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출발하여 백운산을 지나 청계산 양재역 방면으로 내려오는 노선이다. 깔딱고개를 넘으며 포기하고 싶었지만 가방을 들어주고 과일을 주는 동료들 덕분에 목표거리 22Km를 완주했다.

약을 복용해도 혈당 관리가 되지 않아 지속적인 걷기의 필요성이 절실할 무렵 지인의 추천으로 K산악회 밴드에 가입했다. 첫 산행은 관악산에서 시작했다. 손발을 다 쓰며 바위를 오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후미 안내를 맡은 회장님이 산악 병아리의 걸음을 맞춰 주어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회원 중에는 건강 때문에 산행을 시작했다가 지금은 혼자서도 이곳저곳을 다니는 산꾼들이 많았다. 이른 출발시간을 맞추느라 허겁지겁 나선 나와 달리 과일과 커피를 싸 와서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회원들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각자 싸 온 전국의 토속 반찬과 홍어무침까지 곁들인 산상뷔페는 꿀맛이었다.

청계산 매봉을 향해 지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앞서 간 회원들이 건너편에서 힘내라고 소리쳤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응원하는 엄마처럼 그들은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이끌었다. 그들의 격려는 덕풍계곡에 불던 바람 같고 등산로 옆에 핀 들국화의 미소 같다. 어쩌면 이들의 마음은 산 내음을 맡고 걸으며 산물이 들어가고 있나보다.

등산은 다음 날을 산뜻하게 시작하는 힘이 되었고, 흙을 짚고 돌을 짚어 가며 걸은 시간은 내 마음을 짚어 보는 시간도 되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안나푸르나의 하늘도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며 나는 불편한 다리를 달래며 행복한 게걸음을 걷는다.

 

조현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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