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기업 박사님. <뉴스앤조이>에 기고하신 '민족·역사 품지 못한 홍정길 목사의 설교'를 정독했습니다. 박사님의 신학적 정체성과 역사관에 전폭적으로 동감하고 찬사를 보냅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짚어야 할 실체적 진실이 간과되는 현실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기업 박사님은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존경스러운 후배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제가 진실로 존경하는 영적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두 분 생각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민족·역사 품지 못한 홍정길 목사의 설교'를 통해 제기하신 내용은, 문재인 정부를 향한 홍 목사님의 비판과 염려가 성서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상당 부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유감이라면, 설교 한 편에 홍정길 목사님 삶과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지점입니다. 비판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삶과 인격 전체를 부정한다면 당사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강경민 일산은혜교회 목사. 뉴스앤조이 최승현

홍 목사님께서는 문재인 정부 역사관을 비판하시면서, 예컨대 '지금 한국이 겪는 위기의 핵심은 북한 핵 문제이거늘 북한 핵을 젖혀 놓고 일본과 싸울 때냐?'라고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그 싸움에 민중을 끌어들인 태도가 마치 동학혁명 시절 지도자들이 민중에게 진실을 말하기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민중을 선동했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논리를 펴셨습니다. 그 결과, 허다한 농민들이 아깝게 죽어 갔다 하셨습니다.

이에 남 박사님은 동학혁명을 실패한 혁명처럼 인식하시는 홍 목사님 견해를 반박하셨습니다. 저 역시 동학혁명에 대한 홍 목사님 진의가 무엇인지도 사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청중 앞에서 깊은 역사적 성찰 없이 동학혁명을 폄훼하셨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던진 '1919년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지 어찌 건국 기념일이냐?' 하는 문제 제기도 성급한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학계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을더러, 정치적 편향성이 극복되지 않은 문제이니만큼 1919년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일', 1948년 8월 15일은 '정부 수립일' 정도로 정돈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단정하면, 일제에 강탈당한 뼈아픈 역사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없어지고 정부 수립 이후 누가 건국에 기여했느냐 하는 단순 주제만 부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친일파들이 선호하는 역사관입니다.

이 나라 현대사에서 친일 세력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근원적인 역사 왜곡을 불러왔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합의된 역사 인식이라는 생각이 남 박사님과 저의 공통점입니다. 이 점에서도 홍 목사님의 현대사에 대한 역사 인식 방법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점은 유감입니다.

친일파 척결에 대한 홍 목사님의 역사 인식이, 예컨대 기독교계에서 그렇게 존경을 받고 있는 김활란 여사 같은 분들의 친일 행위를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애국 애민 정신이었다고 평가하는 역사 인식과 동일한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활란은 조국 독립을 비현실적 환상으로 단정하고 대한의 젊은이들에게 충실한 황국신민이 되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남 박사님의 근현대사 인식에 깊이 동감을 표합니다. 이 나라가 오늘날처럼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위대한 역사를 갖게 된 것은, '동학혁명 – 3·1 운동 – 4·19 혁명 – 전태일 열사의 희생적 죽음 – 5·18 민주화 운동 – 6·10 항쟁 – 촛불 혁명'으로 이어지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피눈물 나는 싸움의 결과였다는 역사 인식에도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보지 못한 역사의 맥을 동시에 직시하고 드러내고 감시해야 합니다.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은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섭리 안에 있는 역사의 비밀을 하나하나 캐내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역사를 은혜로 규정하는 것이 곧 몰역사적 태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통치에서 정의와 공의를 빼면 남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 유수에서 해방될 때 그들이 부른 노래, 고백한 신앙이 시편 126편입니다. 그들은 해방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사(은혜)라 노래했지만, 70년 포로 생활 내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역사를 자유와 정의를 위해 피눈물을 뿌린 자들이 거둔 열매라고 보는 남 박사님 시각이나, 역사를 하나님 은혜라 일컫는 홍 목사님 시각이 반드시 대립된 것만은 아닙니다. 더더욱 제가 아는 홍 목사님 생각이나, 남 박사님 생각은 다른 것보다 같은 지점이 훨씬 많습니다. 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강남에서 50년 목회 생활을 하셨습니다. 목회자는 자기가 목회하는 사람들 삶과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어쩌면 운명적인 것입니다. 제가 남서울교회에서 홍 목사님과 함께 목회할 때, 지역 정서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 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중견 안수집사님과 사회적 관점을 이야기하다가 "홍 목사님이 중도 우파라면 저는 중도 좌파 정도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상상 속에서 '중도 좌파'라는 말은 '빨갱이'로 자동 인식이 되었고, "강 목사가 스스로를 '빨갱이'라 했다", "교회에 빨갱이가 들어와 있다"고 소문내고 다녀서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너무 힘들어 홍 목사님과 의논했더니 "강 목사가 빨갱이 아닌 것을 내가 아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시며, 일일이 대꾸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남서울교회 사역자로 있던 1986년 6월, 남서울교회에 복음주의권 진보 그룹인 '복음주의청년연합'이 결성되었고, 교회에서 수없이 실무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민중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서광선 박사와 요즘 보수(수구) 신학의 아이콘처럼 인식되는 김영한 박사 간의 신학 논쟁이 벌어진 곳도 남서울교회였습니다.

6·10 민주 항쟁 때는 홍정길 목사님도 명동에 나가 경적 시위에 동참하셨습니다. 그해 6월 30일경 남서울교회 교역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교인분들과 교회에서 터미널까지 '직선 개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계획을 면밀히 세웠습니다. 모임은 양승헌 목사가 주도했고 홍 목사님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거사를 추진했는데, 6·29 선언으로 무산됐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의 대사회적 섬김을 사회적 봉사(Social Service)와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으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행동 없는 사회적 봉사가 비판받기도 합니다만, 사회봉사가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 50년간 목회하신 남서울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가 보여 준 사회봉사 정신(실적)은 타 교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농어촌교회와 소외자들을 찾아 섬기는 남서울교회의 흔적은 가히 '예수의 흔적' 자체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도 도왔습니다. 홍 목사님은 50여 회 평양을 다녀오셨지만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자나 주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도우려면 홍정길 동무같이 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장애인들을 섬기는 남서울은혜교회의 정신과 실천은 100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홍 목사님의 이념적 스탠스는 '중도 우파'가 맞습니다. 제자인 저나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는 중도 좌파입니다. 홍 목사님과 우리가 모이면 좌우 논쟁이 치열(?)합니다. 동료들이 염려할 정도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는 저나 이문식 목사를 아십니다. 사회변혁 태도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이 조금은 래디컬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넉넉히 공존합니다. 우리가 좌파라는 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홍 목사님께서 좌파 정부를 향한 기우가 너무 깊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그럴수록 저와 이문식 목사 역할이 커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절 목사님은 독재 정권을 비판했고, 촛불 혁명을 지지했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공적으로 요청했습니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금 한국은 사회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금도 관용하지 못하는 '극한 사회'입니다. 제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번 설교로 홍 목사님 생애 전체가 매도되는 것입니다. 홍 목사님의 삶과 사상은 김진홍·서경석 목사님과 전혀 견줄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했지만 존경할 수 없었던 '4인방'이라 불리던 분들과도 다릅니다.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최근 열왕기서를 묵상하다가, 남유다 아사왕 이야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사왕은 4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유독 다윗왕을 닮았습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11),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왕상 15:14)고 했습니다. 아사왕 36년, 북이스라엘(바아사)의 침략을 받고, 아람 왕 벤하닷에게서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고 역사적 사실을 기술했지만(왕상 15:17-22), 열왕기 기자는 아사왕의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일언반구도 진술하지 않았습니다.

역대기 기자 진술은 많이 다릅니다. 역대기 기자는 아사왕에 대한 기록을 열왕기보다 많이 남깁니다. 역대하 14~15장 전체가 아사왕의 선한 믿음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증언입니다. 그런데 아사왕 36년에 북이스라엘(바아사)의 침공을 받은 이야기가 역대하(16:1-8)에도 열왕기와 똑같이 기록됩니다. 거기서 역대기 기자는 그때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저버렸다고 심히 책망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대하 16:9)."

열왕기 기자는 바아사 침략을 받은 아사왕이 군사·외교적으로 대응한 일을 단순한 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아사의 군사·외교적 대응을 하나님을 중대하게 배신한 일로 해석했습니다. 두 기자의 관점 차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학적 통찰력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아사왕이 통치한 41년 전체에 주목했습니다. 41년이라는 긴 세월 중 36년은 아사왕에게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5년, 아사왕이 북이스라엘 침공을 받았을 때도 나쁜 놈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였다는 점이 열왕기 기자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매우 엄중했습니다. 36년을 흠 없이 지냈지만, 마지막 5년의 실수를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역대기 기자 관점으로 홍 목사님 생애와 사상을 비판하거나, 열왕기 기자 관점으로 홍 목사님 생애를 칭송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남 박사님을 비롯한 젊은 후배들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생애와 사상을 평가할 때, 좀 더 길고 차분하게 그분의 삶 전체를 보자는 것입니다. 홍 목사님의 삶과 사상은 한국교회, 특별히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는 순전한 청년들에게 허다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홍 목사님은 풍성한 신앙적 유산을 남긴 분입니다.

동학혁명, 3·1 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없이는 촛불 혁명도 없다는 역사 인식이 당연한 것처럼, 한국교회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오늘날 교회 현상을 이해하는 필수 교양입니다. 새로운 신학적 관점을 도구화해서 믿음의 선배들을 도매금으로 비판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들입니까.

유교적 전통 차원에서 무조건 선배들을 존경하라고 강요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진리를 묵상하면서, 아닌 것은 '아니다' 하고 옳은 것은 '옳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편적 현상을 보고 '너도, 그도 모두 한 그물에 든 고기'라는 식의 역사 인식 태도는 역사의 단절 속에서 독불장군만 득실거리게 할 것입니다. 역사나 개인을 통해 배울 것은 무엇이고, 단절할 것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대가 아무리 급속히 변한다고 해도, 한 시대를 보듬고 치열하게 살았던 원로들이 보여 주는 혜안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경청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냉소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저분한 양비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균형 감각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 말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 좌파 정권을 향한 지나친 기우로 역사 해석에서 균형을 잃은 부분이 있다는 점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는 그것이 홍 목사님 세대의 운명적 한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주의권 젊은이들이 홍 목사님 같은 우파 지도자(선배)에게서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귀한 유산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배를 타고 역사의 격랑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도자들이나, 사랑의교회에 가서 반역사적이면서 냉소적인 유머(?)로 순진한 청중을 웃기는 선동자들은 우리 동역자일 수 없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겸손히 무릎을 꿇으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환히 보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기업 박사님. 모든 일에서 진보를 이루어 가시길 기대합니다.

강경민 /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상임운영위원, 남북나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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