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간 서로 '주의하자'는 표현 자주 오가…평소와 큰 차이점 아직 못 느껴
보건의료노조, 사용자(기관장) 의무 불이행 감시·처벌 강제성 부재 한계 지적
상호존중 인식개선 통한 문화 정착이 관건…자체 캠페인·교육 시행 활발
고용노동부, 상담센터 내년까지 8개 운영 계획…올해 하반기 2개소 시범운영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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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금지'를 담은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가량 지난 가운데 일선 의료기관 현장에 아직까지 특별한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은 분위기다. 

법 시행 초기단계인 만큼 괴롭힘에 대한 판단기준 및 가이드라인에 대한 해석과 인식 개선을 위한 자체적인 노력이 우선되고 있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는 것.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했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자'의 의미를 의료기관에 적용할 경우, 기관의 장이나 기관 자체 혹은 부서의 장 정도를 의미할 수 있다.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까지는 법 시행 이전과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며 "법이 생긴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없는 듯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시행 당일과 다음날 정도까지 '우리 서로 조심하자'는 식의 농담 섞인 얘기를 나눈 것이 전부"라며 "누구나 괴롭힘의 대상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미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와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소위 태움 문화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가장 시급했을 간호사들의 분위기는 다소 달랐다.

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는 "생각보다 서로 조심하려 한다는 느낌은 든다. 하지만 특별한 변화가 동반됐다는 뜻은 아니다"며 "곧 관련 교육이 자체적으로 있을 예정인데 솔직히 법의 실효성에는 회의적인 간호사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법에 거는 기대만큼 우려가 더 커…괴롭힘 개념 모호한 점 문제

이번 법에 가장 많은 기대감을 갖고 있는 측은 노동자다. 

의료기관 내에서 괴롭힘 발생 시 이를 신고해도 해고나 부서이동 등 불합리한 처우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그동안 소극적으로 대응한 노동자들이 따돌림과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의료연대본부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제정된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고자 대응했던 노동조합 투쟁의 성과"라고 자평하며 "피해자들이 신고 이후 마음 편히 문제를 제기하고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더 큰 측도 노동자다.

다른 직장에 비해서 직역 간의 보수적인 문화, 공고한 위계질서, 의료현장 특유의 긴장감 등이 강한 곳이 의료기관이기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의료기관 노동자 측에서 이 같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다음날인 17일 고용노동부가 직접 브리핑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고용노동부 김경선 근로기준정책관은 "업무의 수행과정에서 필요한 어느 정도의 독려나 성과평가는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 보기에는 애매한, 즉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언과 질책까지 괴롭힘에 포함되는지 혼란이 오자 좀 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것.

단지, 업무상의 독려를 함에 있어서 인격적 모독이 담긴 폭언 등의 행위가 가미된다면 적정범위를 넘어섰다고 봐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 김경선 정책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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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책관은 "반드시 사업장 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업무시간 종료 후 SNS 등으로 이뤄지는 행위들도 업무와 관련이 있다면 그 자체도 괴롭힘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의 한 의료기관 종사자는 "의료기관은 일반 직장보다 훨씬 잦은 지시와 명령이 실시간으로 발생한다"며 "적정범위라는 표현의 기준이 무엇인지,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등 뜬구름 잡는 얘기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행위자가 괴롭힘을 줄 의도가 없더라도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느꼈다면 괴롭힘의 포섭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시비가 붙는 사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또한 괴롭힘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가 온전히 사업장(사용자)에게 맡겨져 있고, 이 사용자가 괴롭힘 행위의 당사자일 경우에 이를 대처할 강제 조항이 없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법에는 즉각적인 조사 착수,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조치 등만을 담고 있다"며 "사용자나 사업장, 즉 의료기관에서 최고 지위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해결이 요원해진다"고 비판했다.

물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괴롭힘의 당사자가 사용자이거나 사내에서 해결이 힘들다고 피해자가 판단할 시 관할 노동청에 진정 제기를 할 수 있고 피해자가 사내 조사절차를 요구할 경우 기업 내 감사가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매뉴얼에서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권고와 지도 수준에 머물러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게 의료연대본부의 입장이다.

의료연대본부는 "피해자가 사건과 2차 가해로부터 보호받고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려면 회사의 인사조직과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괴롭힘심의위원회 구성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은 기본 토대…구성원 간 상호 존중과 이해 문화 정착이 핵심

결국 법 시행과 별개로 의료기관은 타 직장과 달리 24시간 운영되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구성원 간 상호존중 문화의 정착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으로 이어진다.

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는 "주변 지인들은 직장 안에서보다 회식자리, 회의자리, 출장자리 등에서의 괴롭힘을 더 걱정하는데 병원은 그렇지 않지 않냐"고 반문하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지 병원 내 괴롭힘 금지법은 아니기 때문에 멀게만 느껴진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병원 내 모든 업무에 대한 조언과 질책은 언제든 괴롭힘으로 탈바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태움, 괴롭힘, 조롱, 따돌림 등이 잘못된 문화라는 인식의 개선과 병원도 일반 직장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의 전환 없이는 법만으론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기자
ⓒ메디칼업저버 김민수기자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병원계는 법 시행과 맞물려 다양한 방안 마련과 함께 조직문화 개선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우선 대한병원협회는 간호인력취업지원추진단을 통해 지난 6월부터 전국 20개 병원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건국대병원과 충북대병원은 각각 '반(反)괴롭힘 정책 선언문 채택 행사'를 법 시행 전에 개최해 예방 교육을 진행했으며, 한림대성심병원도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 캠페인 선포식'을 열고 직원 간 상호 존중 일터 구축을 다짐한 바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병원은 보건의료인력이 많은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며 "인력 부족 문제 등 구조적 원인이 변하지 않는 한 많은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동료직원을 서로 미워하게 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 괴롭힘 방지 상담센터 구축으로 추가 지원 지속

고용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완과 원활한 정착을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시스템 구축을 약속한 상황이다.

김 정책관은 "사업장 단체와 연계해 현장 설명회를 꾸준히 열고 우수 사례도 발굴해 다른 기업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라며 "괴롭힘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담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은 있다"고 인정했다.

김 정책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올해 하반기에 괴롭힘 관련 상담센터 2개소를 시범운영하기 위해 예산을 준비 중이며, 오는 2020년에 약 8개소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지방 노동간사회 직장 내 괴롭힘 전담 근로감독관 지정을 통해 전문위원회 구성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종사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한 정부의 괴롭힘 근절 노력이 의료기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전했다. 

그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취지대로 의료기관 안에서 제대로 이행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인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으면 쉽게 바뀔 것"이라며 "정부가 꾸준히 관리·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3년 전 혼란을 겪었던 김영란법이 지금은 당연한 문화가 됐듯 이 법도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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