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충청시평]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어느덧 계절의 여왕 5월이다. 한참 극성을 부리던 미세먼지 농도도 조금 낮아졌고, 여름이 성큼 다가선 듯 날씨도 따뜻하여 나들이하기 좋은 때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구태여 힘든 먼 길을 나서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박물관, 미술관 나들이를 통해 옛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근대 미술의 선구자 안중식의 100주기를 맞이하여 개화기에 활동한 서화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은 ‘근대서화’전이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서러움과 울분을 표현한 서화를 감상하면서 그들이 불태운 강한 저항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은 고려가 만든 나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그들의 미소를 통해 나도 나한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옆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공쥬, 글시 뎍으시니’전이 열려 조선 순조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 집안 3대의 한글을 감상할 수 있다. 덕온공주, 공주의 양아들 윤용구, 윤용구의 딸 윤백영, 조선 왕족의 품위와 교육 방식이 한글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순조 비인 순원왕후가 덕온공주의 남편인 부마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도 있어 궁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백제 한성기 터에 세워진 한성백제박물관은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전을 열었다. 현재까지의 발굴 성과를 공개하는 이 전시를 통해 거대한 왕릉에 묻힌 신라왕들이 생전에 살던 왕궁인 경주 월성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웅진기 터에 자리한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무령왕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전이 열리고 있다. 금송으로 만든 목관, 그 앞에 놓인 왕과 왕비의 지석,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화려한 장신구는 세련된 문화를 향유했던 6세기 웅진기 백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사비기 터에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은 ‘부여 왕흥사 사리장엄구’전을 선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왕흥사 목탑 터 출토 사리기는 물론 창왕의 누이인 공주가 사리를 봉안한 사리감, 백제 귀족의 불심이 담긴 비석, 신령스러운 금동대향로를 통해 사비기 백제의 불교와 금속공예를 만끽할 수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에 자리한 국립경주박물관은 ‘금령총 금관’전을 준비했다. 신라의 고분 금령총은 192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한 유적이다. 금방울 1쌍이 출토되어 이름 지어진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 금허리띠, 국보인 기마인물형토기 등 화려한 왕족 문화를 보여 준다. 박물관 마당에는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진 거대하면서 아름다운 성덕대왕신종도 있다.

이처럼 전국 박물관에서 각양각색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 어디서든 우리 선조가 남긴 진기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장차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통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것이 유물이 주는 기쁨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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