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 계시나요" 버스 안 흉기난동 신고자 보호 못한 경찰에 들끓는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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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 계시나요" 버스 안 흉기난동 신고자 보호 못한 경찰에 들끓는 여론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1.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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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문자메세지 40자 제한 문제...부득이하게 신고자 찾은 것은 잘못" / 신예진 기자

한 승객이 버스 안에서 흉기를 든 남성을 신고하자, 경찰이 범인이 있는 버스에 탑승해 범인보다 신고자를 가장 먼저 찾았다. 경찰은 시스템의 한계로 신고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분노를 표하고 있다.

일명 ‘당산역 버스 흉기 난동’ 사건은 지난 19일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영등포 당산동의 한 시내버스에서 발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이날 버스에 탑승한 한 남성은 흉기를 들고 횡설수설했고, 승객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를 지켜본 한 승객은 112에 문자로 신고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신고자는 "지금 000에서 00쪽으로 출발하려고 정차한 00번 버스에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설하며 커터칼 들고 있습니다", "방금 출발한 버스입니다", "00역 지났고 00가고 있습니다. 파란 패딩에 금발 남자입니다", "저희가 신고한 거 모르게 해주세요" 등을 차례로 112에 보냈다.

경찰은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탑승했다. 그러나 다짜고짜 버스 안에서 범인을 찾는 게 아니고 "신고자 있느냐"며 신고자 행방을 물었다. 신고자는 본인의 옆에 문제의 남성이 앉아있어 대답할 수 없었고, 경찰은 그대로 버스에서 내렸다. 신고자는 다급히 경찰을 따라 내려 자신이 신고자임을 밝히고 정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문제 남성을 하차시킨 뒤 신원만 확인한 채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지난 19일 발생한 '당산역 버스 흉기 난동' 사건에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면서 경찰이 21일 공개 사과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신고자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신고자 보호’ 개념이 없는 경찰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한 네티즌은 ”잔혹 범죄가 이렇게 잦아지는 것은 분명히 경찰 행정력에 큰 구멍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하루가 다르게 경찰의 헛발질이 뉴스에 나오는 것이 답답하다“고 혀를 찼다. 또 다른 네티즌도 “애초에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신고자 계십니까'에서부터 경찰이 얼마나 무능한지 바로 각이 나온다”고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각자 겪은 경찰의 안일한 대응을 풀어놨다. 한 네티즌은 ”새벽에 술 취한 사람이 나 혼자 자취하는 원룸 문을 두드리고 도어락을 열고 번호까지 누르길래 태어나서 처음 문자로 신고했다. 경찰은 취객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정확하게 ‘여기 사시는 분이 신고하셨다’며 나에게 밖으로 나와 보라고 문을 두드리더라. 내가 미쳤다고 나 혼자 사는 집에서 내 얼굴을 노출하겠냐. 무슨 대응이 이따윈가 싶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불의를 봐도 신고하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빗발쳤다.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는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네티즌은 “신고자를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보복당하라고? 경찰은 행동 매뉴얼이 없나?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신고 못 할 듯”이라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신고자는 왜 찾냐. 신고자의 안전보다 본인들이 작성하는 보고서가 더 중요한 경찰들”이라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경찰은 21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해명에 나섰다. 지난 2012년 112 시스템을 통합하면서 문자 신고가 40자 이내로 제한돼 칼을 가졌다는 신고 문자는 40자가 넘어 접수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40자 이상으로 문자를 작성하면 멀티미디어 메세지(MMS)로 전환돼 데이터가 초과된다.

경찰은 이날 최대한 빨리 글자 수 한도를 늘리겠다고 했다. 경찰은 "민간 통신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스템이라 이날 오후 7시까지 통신사에서 (글자 수 관련) 조치를 완료할 예정"이라면서 "작년부터 용량을 보완하려 했는데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다만, 경찰의 신고자 보호 의무와 관련해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경찰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원 청장은 “신고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출동 경찰관 입장에서는 누가 소란행위를 했는지 몰라 부득이하게 (신고자를) 찾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앞으로 112신고와 경찰관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교육을 강화하도록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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