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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박금해 전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과 함께합니다. 
1977년 만 19세의 나이로 건설부 광주국토관리사무소 행정서기보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박금해 소장은 국토교통부에서만 41년동안 근무해 ‘국토우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2017년에는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으로 임명돼 국토부가 전국 18개 국토관리사무소 체제를 만든 지 43년만에 첫 여성 소장이 되는 등 남성들의 부서라는 인식이 강했던 국토부의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주목받았습니다. 

□ 출연 : 박금해 전 영주국토관리사무소 소장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조금 전에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오늘 스튜디오에는 지난 41년 간 국토교통부에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국토교통부의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 한 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금해 전 영주국토관리사무소 소장과 함께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박금해 : 반갑습니다.

△강동훈 : BBS 불교방송 애청자, 그리고 유투브로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금해 : 안녕하십니까?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1월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동훈 : 제가 방금 영주국토관리사무소 소장이라고 소개를 해드렸는데, 엊그제 바로 사무소 소장직을 끝내시고 또 공무원직도 끝내셨다고 하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박금해 : 41년, 정확히 말하면 41년 4개월이 되겠습니다. 공직의 길을 끝까지 별탈없이 마치고 소임을 다하게 되어서 감개무량하고요. 또 여러분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서 새로운 제 인생 2막을 출발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고마운 마음 가득합니다.

△강동훈 : 박금해 소장님 앞에 보면 책이 있는데,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 이렇게 있는데. 공무원 조직에서 여성 공무원으로서 41년간 근무한다는 것은 굉장히 경이로운 것 같은데 전체 공무원 가운데 이런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요? 국토교통부의 경우는?

▲박금해 : 선배님들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강동훈 : 41년. 보통 30년 근무자들은 조금 저희가 만난 적이 있었는데.

▲박금해 : 30년이 통계상으로 8% 정도로 나온 것 같은데요. 40년은 좀 넘기 어려운 숫자인 것 같습니다. 41년이라는 숫자는 제가 아마도 마지막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 0.1% 정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강동훈 : 그래서 제가 여기에 모신 거예요. 보통 일반 장관이나 차관이 퇴임을 하면 자서전 형태로 글을 남기는데 일반 공무원, 특히 19살 때부터 공무원을 시작했다고 하셨죠?

▲박금해 : 네, 여고 졸업하고.

△강동훈 : 여고 졸업 후 바로 공직생활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참 가시밭길 같기도 하고 탄탄대로 길도 걸었을 것이고 한데. 국토교통부, 장관이 김현미 장관으로 여성 장관이니까 그런 영향도 있었습니까?

▲박금해 : 아무래도 있지 않았을까, 저희가 변화의 혜택을 받은 첫 세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강동훈 :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 라고 했는데. 왜 이런 자서전 형태의 기록을 남기게 됐나요?

▲박금해 : 공직은퇴를 한 2년 정도 앞두고 있었을 때 앞으로 인생 후반기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이런 고민을 시작을 해봤었어요. 그러다가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한 번 뒤돌아보자, 이런 생각으로 했는데. 맨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내가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내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 번 적어보자, 이렇게 가볍게 시작한 것이 1년 동안 내내 자서전을 써서 제 공직 41년의 기록을 수록을 해놓은 책이 되겠습니다.

△강동훈 : 이제 자서전 이야기는 중간중간에 제가 여쭤볼 것이고, 영주지방국토관리소 소장, 보통 국토 관리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볼 때 보통 남성 분들이 많이 가지 않습니까?

▲박금해 : 그렇습니다. 국토사무소가 생긴 지가 43년 정도 됐고요. 18개 국토사무소에서 그동안 계속 남성들이 하셨었죠.

△강동훈 : 청취자들, 또 시청자들이. 국토교통부 내에 보통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산하죠? 주로 하는 일이 어떤 일들입니까?

▲박금해 : 국토사무소는, 국토관리청에서는 교량과 도로를 신설을 하고요. 준공이 되는 즉시 국토사무소에서 이관을 받아서 유지 관리를 하게 됩니다. 영주국토만 하더라도 관내가 500km 정도.

△강동훈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입니까?

▲박금해 : 7개 시·군을 관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안동, 상주, 문경, 또

△강동훈 : 여러 주변 지역까지 포함해서?

▲박금해 : 예, 주변지역.

△강동훈 : 그러면 그 지역에 있는 도로의 관리는 전부 영주지방국토관리소에서 한다?

▲박금해 : 주로 그런 도로 시설물과 교량이라든지 터널이 요즘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구조물 관리, 또 하천 유지 관리까지 담당을 하게 됩니다.

△강동훈 : 소위 말해서 대한민국의 SOC를 만든 다음에 관리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

▲박금해 : 그렇습니다. 노후화된 시설이 많아서 굉장히 유지 관리에 힘쓰고 있습니다.

△강동훈 : 직원이 한 100여 명 정도 있다고 들었는데?

▲박금해 : 예, 100여 명.

△강동훈 : 그분들의 수장으로서 봉직을 하고 나오셨네요. 원래 국토교통부 공무원으로 출발했습니까?

▲박금해 : 네, 그렇습니다. 총무처 9급 행정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부처에 갈 수도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건설부가.

△강동훈 : 그 당시 건설부?

▲박금해 : 좋아 보인다. 한 번 거기 가봐라, 이렇게 권하셔서 건설부에 들어가게 됐고요. 그 다음에 국토교통부가 됐다가 국토해양부가 됐다가 다시.

△강동훈 : 그 많은 직원들 가운데, 특히나 대부분 행시 출신으로 해서 사무관으로 올라가신 분도 있고, 또 지금 박금해 소장님처럼 처음부터 9급으로 하는데. 그 분들이 41년을 하고 또 소장까지 올라가는 것은 남성도 힘든데 여성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굉장히 박수를 받고, 많은 후배들한테 귀감이 될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박금해 : 많은 후배 공무원들이 응원을 해주고 저보다 더 좋아하고 기뻐해서 다 같이 격려가 되었습니다.

△강동훈 : 제가 국토교통부 하면 항공, 즉 하늘, 코레일, 한국도로공사 등등 하늘하고 지하까지 넘나드는 그런 공간을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하고 또 관리하는 그런 대단한 부처란 말이에요? 그동안 41년간 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텐데. 특히 두 아이의 엄마, 또 남편을 봉양을 해야 되고. 이런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41년간을 지탱해왔을까, 굉장히 궁금해요.

▲박금해 : 사실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는 힘들었겠지만 참 즐겁게 생활을 했던 것 같고요. 또 가사 부분은 시어머니가 거의 20년 가까이 해주셨습니다. 돌봐주셔서 저는 대신 가정보다는 업무에 더 열중한 그런 케이스 같습니다.

△강동훈 : 친정 어머니도 아니고 시어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박금해 : 네. 시어머니께서 희생을 하셨죠. 저를 위해서. 사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거서 같습니다.

△강동훈 : 시어머니는 지금도 아직 생존해 계시나요?

▲박금해 : 10년 전에 다 키워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강동훈 : 손주들 다 키워주시고 또 며느리 외부 활동에 지장 없도록 다 해주시고. 남편 분은 뭐하시는 분입니까?

▲박금해 : 저는 국토부 공무원이고 남편은 환경부 공무원.

△강동훈 : 같은 공무원이군요. 그러면 세종청사에서,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박금해 : 과천청사에서부터. 네.

△강동훈 : 굉장히 다들 부러워했겠어요?

▲박금해 : 부러워도 했지만 저는 개발부서에 있고 남편은 환경보전부서에 있다 보니.

△강동훈 : 개발과 보전, 굉장히 상충하는 업무네요?

▲박금해 : 그래서 굉장히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고. 또 제가 개발업무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은 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그런 부분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균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고 할까요? 그런 좋은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사실은 한쪽은 건설해야 된다, 한쪽은 무슨 소리냐 환경보전이 우선이다, 이렇게 해서 하는데. 어찌됐든 또 부부니까 그런 부분도 이해할 부분은 이해하고. 대한민국의 개발과 보전 부분을 잘 균형있게 하셨네요.

▲박금해 : 처음에는 다툼도 많았죠.

△강동훈 : 저희가 보면 국토교통부가 여러 가지 업무를 많이 하고 있지만 특히 현장업무, 소위 말해서 안전모 쓰고 안전화 신고 다니는 그렇게 해서 현장을 누비는 일들이 많을 거란 말이에요? 소장 하시면서 현장 많이 다니셨어요?

▲박금해 : 거의 오전에는 결재 부분을 하고요. 오후에는 현장을 누볐습니다. 관내가 원체 500km 정도 관장을 하지만 양 차선으로 하면 1,000km에 가까운 것이라서 부지런히 다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동훈 : 그만큼 현장에서 하는 일도 많고 한데 거기서 갔다 오면 평가도 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정리도 할 텐데. 이런 부분에서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이런 것은 어떻게 잘 풀어갔나요?

▲박금해 : 그 부분은 요즘은 여러 가지 문자도 보낼 수 있고 카톡도 보낼 수 있고 사진도 전송을 실시간으로 충분히 보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제가 녹음을 하거나 급한 것은 하기도 하고요. 밴드나 비상연락망 등 여러 가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많이 있어서 적극 활용을 했었습니다.

△강동훈 : 적극적인 성격은 저도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에. 제가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 간사를 했었어요. 그때 보니까 공간 정보화할 때, 그 공간정보, 지금 소위 말해서 측량이라는 것이죠? 측량이라는 것, 지적공사가 같이 포함되어있는 것인데. 공간 정보화할 때 그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댄스도 하고 그랬어요. 박금해 소장님께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어요.

▲박금해 : 그 지적 재조사 사업이 시작될 때였고요. 저희가 어떻게 하면 신규사업을 잘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업비는 있지만 홍보비는 사실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가 지혜를 발휘해서 유튜브를 찍어서 이것을 우리의 열정과 기획단의 출발 의지를 보이면 어떻겠냐, 이렇게 기획관님한테 보고를 드렸더니 좋은 생각이다,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저희가 율동도 기획하고 안무 짜고 해서 함께. 요즘 유투브 조회수를 얼마 전에 보고 깜짝 놀랐어요. 1만 8천 회.

△강동훈 : 보통 그런 것은 국토부 관련해서 홍보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잘 안 보거든요?

▲박금해 : 한 200회, 300회 정도인데.

△강동훈 : 그때 제가 언뜻 봤는데 흰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추는. 담당 국장이 전 국장이셨죠? 같이 하시고.

▲박금해 : 전만경.

△강동훈 : 전만경 국장님하고 여러 직원들이 직접. 출연료도 안 받고 기획, 연출 다 하시고. 그때 또 유투브가 많이 활성화되지도 않았을 때인데?

▲박금해 : 활성화되지 않았었죠.

△강동훈 : 요즘 그래도 많이 보고 하니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것에 열정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았나 싶거든요?

▲박금해 : 해야 된다 싶으면, 간절해지면 방법은 여러 가지 생각이 나고 그런 방법을 또 찾으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강동훈 : 첫 번째 공무원, 왜 공무원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요즘은 공무원이 인기짱인데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하면 부모님들이 대학을 가라, 이렇게 할 텐데. 어떻게 공무원의 공직자 일을 선택을 하셨나요?

▲박금해 : 다 운명인가봐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사범대를 가고 싶어서 준비를 했었는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이 암에 걸리셨고, 수술도 받으시고 이렇게 하시면서 제가 공직 1년 차 되던 해에 양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끝까지 그 길을 가게 됐고 또 천성에도 잘 맞아서 보람을 많이 느끼면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동훈 : 그 당시에 일찍 부모님이 가셨기 때문에 소녀가장인 형태가 되겠네요? 동생 분들도 있다면서요?

▲박금해 : 동생이 네 명.

△강동훈 : 그분들도 다 여의시고?

▲박금해 : 다 결혼해서 이미 다.

△강동훈 : 유투브로 보시는 분들은 박금해 소장님 얼굴이 보이지만 라디오로 듣는 분은 박금해 소장님이 어떻게 생겼을까 할 텐데. 상당히 미인이세요. 그런 소리 좀 들으세요?

▲박금해 : 미인이라는 소리 처음 듣습니다. 맏며느리감이다, 이런 소리는 들었습니다.

△강동훈 : 공직생활을 처음에 국토 분야, 과거의 건설부에서 했는데. 그때는 거의 다 남성 분들이었을 것 같아요. 직원들이.

▲박금해 : 네, 맞습니다. 저희 국토관리청에 일반직 여성 공무원이 두 명이었고요. 국토관리사무소에는 저 혼자였기 때문에. 아마 본부에도 10명 미만이었던 걸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50대 50으로 여성 공직자들 진출이 아주 활발합니다만 그때는 5% 미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동훈 : 그러다 보면, 저도 출입을 해봐서 아는데, 소위 말하는 건설사들도 같이 링크를 해서 일하는 곳이다 보니까 소위 말해서 곡차, 술도 자주 해야 될 그런 분위기일 텐데. 처음 갈 때 보통 신고식 하잖아요? 신고식 어떻게 치렀어요?

▲박금해 : 첫 의례는, 일단 신고식부터 그때 당시에는 건설부 문화였으니까요, 술로 환영을 해줍니다. 그래서 인사간 날 회식 자리가 만들어졌었는데 한 2개 과 전부 다 해서 45명 정도 남성 분과 여자는 저 혼자인 채로 환영식을 치렀는데. 쭉 직원들이 앉아계시고요. 그러면 제가 옮기면서 주시는 술잔을 다 받아서 마시면서 이동을 하면서 끝까지 가야지만 신고식이 끝나는 겁니다.

△강동훈 : 그때 나이가 19살이었죠?

▲박금해 : 19살이었죠.

△강동훈 : 원래 술을 잘 못하시는 것 아닌가요? 그것을 어떻게 다 드셨어요?

▲박금해 : 제가 여중 나오고 여고 나오고 했기 때문에 술 마실 기회는 그때 생전 처음 마셔봐서 이게 술인지 물인지 잘 모르고 그냥 주시길래 쭉쭉 주시는 대로 감사하게 끝까지 잘 마셨는데요. 누가 어떤 분이 소주 8병 마셨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세요. 그런데 저는 너무나 긴장도 되고 하라니까 술 마시고 이랬는데 더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면서 굉장히 초롱초롱하게 취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강동훈 : 요즘에 그렇게 하면 상당히 문제가 심각하지만 41년 전에 그런 신고식도 있었고 그런 신고식을 여성 공무원으로 잘 치러냈다, 그것도 하나의 기억에 남겠네요.

▲박금해 : 그때부터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술 센 여직원.

△강동훈 : 그런 강단이 있기 때문에 거칠게 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그런 조직 분위기를 잘 이겨내지 않았을까. 

▲박금해 : 타고난 소질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술이 그렇게 센지 저도 잘 몰랐습니다. 언제 취하나 보자, 하고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잘 안 취하더라고요.

△강동훈 : 박금해, 이름을 바로 불렀는데. 보통 금해라는 이름을 보면 남성 이름이거나 이럴 텐데. 보통 아버님이 지어주신 겁니까?

▲박금해 : 사실 지명입니다. 김해. 딸 다섯이다 보니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이동을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실망을 하셔서 아버지가 지어주신 경해라는 이름 대신에 김해에서 났다고 하니까 김해로 올리고, 또 광주에서 나면 광순이라고 올리고. 또 광주에서 나니까 광숙이라고 올리고.

△강동훈 : 진짜 동생 분들 이름이 그래요?

▲박금해 : 네, 호적에 다 그렇게 올리셔서. 

△강동훈 : 정말 저도 딸이 셋인데, 정말 이쁘고 귀엽고 애지중지 하는데 어떻게 과거에 딸 낳았다고 그랬을까, 라는. 참 그렇네요. 그래서 김해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박금해다? 이름 가지고 많은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박금해 : 네, 많았어요. 남자인줄 알고 합숙교육 같은 것 할 때 배정을 남자 방으로 한다든지 또 인사발령 할 때도 여성 같은 경우는 그때 인사가 좀 특별 케이스여서 관리를 했거든요? 그런데 남자여서 그냥 무사통과한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강동훈 : 그때 만약 젊을 때였으면 아마 그 자리까지 안 갔을 수도 있을 뻔 했네요? 이름 덕분에, 이름이 좀 부르기는 그렇지만 이름 덕분에 오히려 이익을 봤군요?

▲박금해 : 그렇다고 봐야죠. 할아버지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강동훈 : 아니었으면 박경애? 경애로?

▲박금해 : 네,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경애였는데.

△강동훈 : 우리가 흔히 너무 여성 공직자에 대해서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역차별 같은데. 어찌됐든 여성이라는 그 당시 문화를 본다면 참 어렵다, 했는데 그것을 다 극복을 하고 국토우먼이 된 것인데. 국토교통부, 거기가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나왔었지만 직접 일반직 공무원으로서 근무하는 국토교통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금해 :  국민의 실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곳이죠. 그리고 국민 전반에 걸쳐서 하늘, 땅, 지하까지 통틀어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하시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다난한 일들이 있어서 힘들어하시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보람있게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강동훈 : 지금 소위 말해서 아까 소개를 보니까 나이를 알 것 같은데,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젊고 여러 가지 한데. 단도 하신다고 들었고 명상도 하신다고 들었고. 불교와 밀접한 그런 신행 활동도 같이 하는 겁니까?

▲박금해 : 내공을 키우는데 주력을 했었습니다. 힘든 부분도 있고 공직자라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 내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수련 내지는 수행을 조금씩 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강동훈 : 솔직히 말해서 일하다 보면 힘들고 할 텐데. 세종청사 내에 그런 모임이 많이 있더라고요?

▲박금해 : 네, 동호회가 많이 있습니다.

△강동훈 : 단 하시는 동호회, 국선도?

▲박금해 : 국선도는 아니고 기체조 힐링 명상 동호회.

△강동훈 : 거기는 한 몇 분이나 활동하고 계세요?

▲박금해 : 많이 성행했을 때는 거의 90명 가까이 될 때도 있었는데요. 지금 30명 정도 회원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지금도 가끔 거기 나가시고?

▲박금해 : 네, 제가 15년간 총무를.

△강동훈 : 15년 총무면 장기집권 아닙니까? 

▲박금해 : 2년 전에 조미라 후배에게 총무직을 물려주고 지금 잘 되고 있습니다.

△강동훈 : 뭐든지 했다 하면 집념적으로 추진력 있게 능동적으로 하는 그런 자세가 굉장히 박 소장님한테 보이는 것 같아요.

▲박금해 : 끝까지 가는 이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강동훈 : 마치기도 끝까지 하고 일을 추진해도 끝까지 하고. 그렇게 41년을 하다 보면 어려움도 있었고 내가 그만둬야 되지 않나, 하는 때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때가 언제쯤, 혹시 예를 들어서?

▲박금해 : 한 번 있었어요. 첫 아들, 맨 처음에는 어머니가 아이들 봐주시기가 어려워서 저희가 세들고 있던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시고 계시던 시기였거든요? 그동안 제가 담배 연기를 많이 맡아서 그런지 7개월 된 아기가 폐렴에 걸렸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연가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누가 돌아가시거나 이런 일 있을 때나 연가를 쓰지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연가를 쓰거나 조퇴를 하기에는 참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끝나자마자 가면서 아픈 아이를, 병원에 입원해있는 아이를 놔두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때 많이 울었죠. 그때 그만둬야 되겠다, 누가 봐줄 사람 없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강동훈 : 자식 이야기 나오면 모성이 나와서 눈물이 글썽하시는데. 담배 연기 아까 말씀하셨는데, 담배를 태우시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만 해도 사무실에서 다 담배 피울 때였나요?

▲박금해 : 그렇죠. 80년대 이야기니까요. 금연구역이 설정되고 이것이 국민건강진흥법인가요? 이것이 만들어진 것은 2003년 정도로 생각합니다. 저는 80년대에는 사무실 풍경이 책상마다 재떨이가 있었고 또 사무실에서 당연히 일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겨울에 추우니까 문을 닫아놓고 하기 때문에 늘 사무실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차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강동훈 : 그래서 사실 저희들도 우리 회사 내에서도 불과 10여 년 전에는 전부 다 재떨이가 있었고 사실 재떨이가 들락날락하면서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흡연공간하고 사무실은 분리가 되어 있지만 어쨌든 그런 아픔도 있었군요. 자녀 분들 그렇게 해서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박금해 : 88년생, 92년생.

△강동훈 : 그 정도면 다 장성했고. 혹시 며느리 보셨습니까?

▲박금해 : 아직은, 네.

△강동훈 : 남편 분도 환경부 공무원으로서, 그때 같은 또래 동갑이십니까?

▲박금해 : 네, 동갑이고 저보다 먼저 1년 명예퇴직을 했는데요. 지금은 또 다른 멸종위기동물 복원하는 일에 종사를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유럽의 공무원들을 보면 퇴직 후에 보면 자기가 갖고 있는 자질, 능력을 사회에 봉사하는 그것이 참 아름답게 보이더라고요? 그것을 남편 분은 직접 하시고. 박금해 소장님도 퇴직 후에 그런 꿈들이 다 준비되어 있을 텐데. 앞으로 아까 몇 년, 20년은 더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이 될 텐데. 어떻게 준비하고 싶으세요? 제 2막을?

▲박금해 : 일단 방향은 그동안 쌓은 지혜와 경험들을 사회에 재능기부로 하면서 저로 인해서 사회가 좀 더 밝아지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하고 있고요. 지금 여러 가지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통일의 과정이라든가 통일 후의 갈등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제가 참여를 해서 도움이 됐으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강동훈 : 우리가 남북 대화가 몇 번 열렸고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이제 철도를 통해서 가는 길도 국토교통부가 앞장설 텐데 그와 관련된 일들, 그런 통일에 관한 일을 2막에서 시작하겠다?

▲박금해 : 그런 부분도 있고 저는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마음의 통일 이런 쪽에 제 재능을 보태고 싶습니다.

△강동훈 : 충분히 하실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하신 것을 보면 굉장히 정열적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바라지만 함부로 나서는 분들이 없거든요? 결국 정부의 정책과 일부 부처의 공무원들만 통일에 관심있는 양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전 국민들이 통일에 할 수 있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해주신다는 굉장히 큰 일인 것 같아요.

▲박금해 : 베이비붐 세대들이 숫자적으로도 많고 은퇴를 많이 시작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가장 일하기가 좋은 시기가 60세부터 75세까지라고 하더라고요. 젊은이들은 너무 현안에 바쁘고 연세 너무 많이 들면 힘이 없고.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 쪽의 주역이 되고 열심히 참여를 해서 보람을 느끼는 세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강동훈 : 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됐어요. 여성 공직자로서 후배들에게 혹시 남길 말, 또 애청자 여러분께 하시고 싶은 말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금해 : 여성 공직자들에게 남기고 싶다면 매 순간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잘 썼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과 어떤 것들을 최대한 발휘를 해서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쓰게 된다면 보람과 긍지도 느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잘 쓰여지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 저는 지금 첫 해에 무언가 시작하는 설렘이 가득한 1월인데요. 시작할 때는 큰 용기를 가지시고 끝까지 잘 풀리는 좋은 해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강동훈 : 박금해 소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박금해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강동훈 : 지금까지 박금해 소장님과 함께 진행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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