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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아이사랑 수필 공모전 수상작, 동상 김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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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2018-11-13 10:13:44
옆집 아이 중강새


    

아줌마네 집에서 놀아도 돼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여섯 살 난 여자아이가 열어놓은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복도에서 킥보드를 타고 놀다가 열린 현관의 방충망을 통해 집안의 내가 보였나 보다. 아파트에서 옆집이란 문을 열다 마주치면 목례 정도만 나누는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른 장소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보고 지나친 적도 있었으리라. 예기치 못한 싱그러운 방문이다.

아이는 일명 클레오파트라 앞머리를 하고 있으며, 흰색 오프숄더 블라우스와 통 넓은 겨자색 와이드 팬츠를 입고 있었다. 멋스러운 꼬마 손님은 이슬아다.

슬아는 밥상머리 교육을 잘 받았다. 집에 들어오면서 가족들이 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안방의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가 사용하는 작은방으로 왔다.

몇 년 만에 집에 놀러 온 꼬마 손님에게 무엇을 대접해야 하나. 요구르트를 꺼내주었더니 빨대를 달라고 한다.

슬아는 빨대를 꼽아서 할머니 먼저 드리고 남은 요구르트를 갖고 와 나이 순서대로 나눠 주었다. 우리 집은 막내가 스물다섯 살이니 집에 놀러 온 아이가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다섯 명 모두 아무 말도 없이 빤히 아이 얼굴만 쳐다봤다. 민망한지 개나리꽃 같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때마침 책꽂이에 방치됐던 내 아이들이 보던 종이접기 책이 눈에 띄었다. 색연필과 색종이도 함께 꺼내주었다. 슬아는 공룡과 새를 좋아했다. 종이에 공룡을 그리고 꼼꼼히 색을 칠했다.

색종이로 까치, 앵무새, 참새 등 여러 종류의 새를 완성했다. 여섯 살답지 않게 손끝이 야물어 잘 따라 접었다. 교실 뒤 솜씨자랑 환경판이 생각나 거실 한쪽 벽면을 슬아가 만든 작품으로 장식했다.

놀러 온 지 두 시간쯤 지나니 아이 아빠가 슬아를 데리러 왔다.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하는 너머로 아쉬운 표정이 같이 인사한다.

다음 날 아파트 복도의 아침이 유치원 가며 인사하는 슬아의 밝은 목소리로 열렸다. 슬아에겐 11월에 태어나 말로만 두 살인 여동생 이루다가 있다.

루다가 어린이집 가느라 유모차 바퀴 돌돌돌 구르는 소리도 곁들여졌다. 루다는 앞이마로 약간의 애교머리를 내린, 양 갈래머리를 하고 있다.

낯가림이 심한지 입술을 앙다물고 무심한 표정이 영락없는 새침데기다. 화단의 작은 나무가 선잠을 깨 비몽사몽 몸을 흔든다. 슬아의 까르륵 소리에 잠을 깬 까치는 두리번두리번 얼떨결에 아이들과 달리기를 한다. 조용한 복도식 아파트에 파릇한 유월의 동화가 시작되었다.

유치원 수업을 마치고 온 슬아가 문 앞에 서 있다. 그렇게 아이는 유치원에 다녀오면 먼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매일 놀러 오길 일주일 정도를 했던 날, 집에 가며 말했다.

아빠가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노는 거라고 했단다. 아주머니도 쉬셔야 하는데 매일 가면 아주머니 힘드니까. 슬아는 신통하게도 약속을 지켰다.

그리곤 주로 토요일에 놀러 왔다. 아이와의 놀이는 어른들만 사는 우리 집에 키득키득, 흐흣 다양한 웃음소리를 퍼뜨렸다.

다방면에 똘똘한 슬아는 특히 그림에 소질이 있는 듯하다. 아저씨를 그려준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우선 아빠 다리를 하고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손은 턱을 괴라고 일러주었다.

어린 작가가 하라는 대로 다리 혹은 손 모양을 바꿔가며 얘기를 다 들어 준다. 슬아는 남편의 불룩하게 나온 둥근 배와 목 뒤에 접힌 살까지 세밀하게 그렸다. 남편이 슬아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슬아와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온 식구가 아이디어를 낸다. 요리 교실을 열었다.

플라스틱 나이프로 복숭아, 키위, 바나나 등을 잘랐다. 플레인 요거트에 매실 진액을 넣고 저은 다음 예쁘게 세팅한 과일 위에 살짝 뿌린다.

예의 바른 슬아는 할머니부터 한 접시씩 나눠 주었다.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완성한 맛있는 과일 샐러드다.

요리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는지 한동안은 오자마자 요리 만들자고 했다.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토스터에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한쪽에는 딸기잼을 다른 쪽에는 땅콩잼을 골고루 발랐다. 그리곤 손바닥보다도 큰 식빵 두 장을 붙여 완성하며 접시에 올려놓았다.

슬아는 가끔 퀴즈를 내면서 맞추라고 한다. 상품도 있다며 과자나 요구르트를 보여준다. 하지만 슬아는 좋아하는 아저씨가 맞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리 손을 들어도 지목하지 않는다.

아저씨에겐 귀엣말로 정답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하긴 남편 사진을 보며, “내 아저씨네.” 두 손을 모으며 감탄을 하는 슬아다.

어쩌다 새침데기 루다가 놀러 올 때도 있다. 현관 앞에 앉아 신발을 벗느라 끙끙대며 한참을 뱅글뱅글 맴을 돈다. 그리곤 힘겹게 벗은 신발을 휙 던지고 들어온다.

의외로 시원시원한 면도 있다. 텔레비전의 만화영화를 보느라 신나게 춤을 추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한다.

보고 있노라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루다가 흥이 나면 날수록 기저귀가 엉덩이 아래 무릎으로 내려간다. 소변을 잔뜩 머금은 기저귀의 무게를 고무줄 바지는 버티지 못했다. 소변이 배어 나와 방바닥이 젖었다. 이제 집에 가자고 하니까 슬아는 못 들은 척한다.

그래도 루다의 기저귀가 신경 쓰였는지 나보고 기저귀를 갖고 오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의 부모가 처음에는 한 시간 만 놀라고 하며 보냈지만 어울려 놀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난다. 그러면 아이 아빠가 데리러 온다.

슬아, 이제 옆집 가자.”

아이 아빠는 재치 있는 말을 건네며 슬아를 데리러 온다. 일주일에 하루 아이와 놀이 시간이 생기면서 우리의 생활도 상쾌해졌다.

주말에 외출할 일이 생기면 슬아네 집에 먼저 우리의 일정을 알려줬다. 두 해 정도의 시간을 격의 없이 지냈다.

겨울이 한창 무르익은 12월에 슬아는 슬픈 얘기가 있다고 했다. 학교 갈 때는 멀리 이사 간다는. , 이런 소리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구나.

서울보다는 좀 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고 했다. 사교육은 가능하면 늦게 시키고 싶다는 부모의 결정이었다.

슬아는 유치원만 다닐 뿐 한글이나 수 교육을 위한 학습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기의 마음을 시로 표현할 줄 알고, 노래도 지어서 불렀다. 슬아의 다재다능은 부모의 열린 교육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 영원히 사랑해요. 아줌마 영원히 안 잊을게요.”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슬아는 자동차로 이동해도 족히 1시간 30분은 걸리는 김포 신도시로 이사 갔다. 아이는 자동차 뒷좌석 창문을 열고 눈물방울을 대롱대롱 매단 채 앙증맞은 손을 흔들었다.

벌써 슬아가 이사를 간 지 두 계절이 훌쩍 지나고 있다. 우리 집 책장에는 슬아 키와 몸무게를 표시한 색연필의 색깔이 아직도 선명하다.

시나브로 이렇게 많은 추억을 우리 집안 곳곳에 물들여 놓았다. 슬아 자매의 매혹에 빠진 내 아이들이 결혼하고 싶다며, 슬아엄마의 카카오톡에서 사진을 넘겨보고 있다. 사진 속 슬아의 배경은 1학년 11반 교실이다.

요즈음은 아이 하나 기르기도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는지라 아이가 없거나 하나만 기른다고 한다.

하지만 내 욕심에 나의 세 아이들은 최소한 두 명의 자녀를 두었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슬아의 예쁜 모습이 내 마음을 시도 때도 없이 톡톡 건드린다.

옆집 아이 중강새가 보고 싶다.

*중강새 ? 중간에 이가 없어 샌다 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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