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은 하늘이 차츰 맑아져 푸르게 되는 날이고, 한식은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5번째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든다. 우수·경칩을 지나 춘분이 오면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아직 농사 등 바깥일을 하기는 이르다. 청명이 되어 날씨가 풀려야 농사준비를 하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일을 챙긴다. 농경사회에서 청명은 사실상의 봄의 시작을 알린다.
한식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추모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여 망명 중인 문공을 구했지만, 문공은 왕이 된 뒤 그를 잊었다. 늙은 어미와 함께 산에 들어가 살았고, 왕이 뒤늦게 후회하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산불을 놓아 유인했지만 끝내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우리나라에서도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전통적인 4대 명절이었다.
한식에는 임금이 백성들에게 불을 나눠주는 ‘사화(賜火)’풍습이 있었다. 불씨를 오래 두고 바꾸지 않으며 불꽃이 거세지고, 양기가 지나쳐서 역질(疫疾)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서 만든 새로운 불씨를 임금이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개 고을 수령에게 나눠줬다. 수령들은 이를 다시 백성들에게 전달하는데 이 때 묵은 불(舊火)을 끄고 새 불(新火)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수 없어서 찬밥을 먹었다.
이처럼 청명과 한식은 서로 다른 날이지만, 오늘날에는 흔히 구분하지 않는다. 청명이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속담도 여기서 나왔다. 도긴개긴과 비슷한 뜻이지만, 굳이 ‘죽기 좋은 계절’을 주저없이 입 밖에 내는 조상들의 심정에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초연함과 곤궁했던 살림살이가 읽혀지는 듯하다.
청명과 한식은 귀민날(귀신이 하늘로 올라가 매인 날)이라고 하여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도 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농삿일 준비와 함게 이장이나 묘자리 손보기, 비석세우기, 집 고치기 등을 하고 있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현대에는 청명과 한식이 봄나들이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남쪽에서부터 꽃 소식이 들려오고 들판은 점차 초록색 옷을 입는다. 그러나 항상 주의해야 한다. 바람이 유난히 심한 때여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조상들이 찬밥을 먹고 새로운 불씨를 나눈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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