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정의평화기독교대선행동이 보내온 강경민 목사의 설교문(원제: 한국교회는 북한·통일 어떻게 볼 것인가? / 본문: 요일 3:16-18)입니다. <뉴스앤조이>는 민주 회복, 경제 평등, 평화통일, 생태 환경과 사순절의 의미, 대선에서의 기독인 역할 등을 담은 대선행동의 사순절 공동 설교를 2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6주간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독일이 통일된 지 26년이 지났습니다. 독일 통일은 독일인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급격한 변화, 다시 말하면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이루어진 동서 냉전 구도 붕괴라는 세계사의 전환을 독일 국민은 기가 막히게 자국의 통일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통독(통일 독일)을 준비한 것은 물론 서독 정부였습니다. 서독 정부가 통일을 주도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동독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체의 언행을 삼간 것이고, 둘째는 통독이라는 대사가 이루어지기 20여 년 전부터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인 주도로 동독을 지원한 것이고, 셋째는 통독으로 인한 주변 국가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통독 30여 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분단의 벽이 높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한 시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구태여 한국교회 입장을 구분 지으려면 어떻게 한국교회가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인가 모색하는 입장에서라야만 한국교회의 입장을 강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4가지 주제를 아주 균형 있게 다루고 있는 역사의 대파노라마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타락과 구속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창조와 완성이라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창조와 완성이라는 두 기둥을 제쳐 놓고 설명한 타락과 구속의 진리마저 매우 불안하게 해석되었습니다. 그런 결과 한국교회는 통일 신학을 체계 있게 정돈할 수도 없었고 설교를 통해 통일에 대한 주제를 성도들의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신학적 통전성이 없이는 통일과 신학(신앙)을 연결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와 반공 신앙

예컨대 필자가 21년 전 개척한 우리 교회에서 통일에 관해 설교를 한다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북한 동포를 돕자는 설교를 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당연한 설교를 듣고 성도들은 왜 충격을 받았을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신앙은 곧 반공이다'라는 공식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그럼 공산주의를 반대해야지 찬성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당장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신앙은 곧 반공이다'라는 말에는 너무나 많은 편견과 이념으로 도배된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반공이란, 넓은 의미의 각종 사회주의까지를 총망라하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 개념까지도 몽땅 반공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기 십상입니다.

6·25 동란이 멈춘 지도 벌써 6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여러 방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으려는 보수 세력과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유렵의 정치·사회적 이념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 진보 정당이 없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지금의 정의당 정도가 진보정당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전두환 시절에 노동부장관을 지낸 남재희 씨는 통일되면 지금의 민주당이 보수당이 되고 정의당 정도가 약간 진보적인 정당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이 이러할진대 한국교회의 이념적 성향은 어떠할까요? 이 문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 판단으로 말한다면 한국교회의 80% 이상은 이념적 측면에서 매우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은 오늘 설교에서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길고 복잡합니다.

돌이켜 보면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한 비전이 없었습니다. 통일 신학이 없었던 것입니다. 문익환 목사님 같은 선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통일 신학이 없던 한국교회에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은 충격적이고 단회적인 사건으로 각인되었을 뿐입니다. 마치 두 아들을 살해한 공산주의자를 용서하고 그를 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이 한국교회가 공산주의자들을 용서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못하고 다만 한 개인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로 묻혀 버렸던 것과 같은 사건이 되어 버린 것과 같습니다(손양원 목사님과 문익환 목사님의 숭고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니라 선각자들의 거룩한 행위가 꽃피지 못한 한국교회의 척박한 토양에 관한 안타까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통일 신학이 없던 196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통일 운동은 전혀 통일 운동이 아니었고, 북한 교회 재건 운동이 있었을 뿐입니다. 통일이 되면 무너진 북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지금도 종잣돈을 저축만 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고 하니 통일 신학의 부재가 얼마나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1960년 4월 혁명 이후, 한국교회는 진보적 성향의 교단을 중심으로 사회의식에 눈뜨기 시작했고 그 역량으로 1970년대 들어와서는 진보적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해 왔던 것은 역사가 다 아는 일입니다. 1980년 광주 민중 학살 경험을 치르면서, 한국 사회는 한국의 민주화를 근원적으로 훼방하는 근원이 분단 구조에 있음을 착안하고 분단 극복을 위해 진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운이 1990년 동서 냉전 체제의 붕괴와 맞물리면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민족 공동체의 기운으로 솟아오릅니다.

1988년 2월 29일 한국교회는 한국 통일 운동사에 길이 남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을 허다한 반대를 무릅쓰고 발표했습니다.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한 이정표였습니다. 이 선언서는 1991년 남북한 당국 사이에 합의된 문건인 '남북 기본 합의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당시 실무 책임자의 증언입니다. 그때부터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는 진보든 보수든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의 대세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994년 창립된 기구가 남북나눔운동이었습니다.

남북나눔운동과
한국교회 평화통일 운동

남북나눔운동은 NCCK 계열과 복음주의 계열의 지도자들이 총 망라되어 남북 상호간 정치적 이념과 국가 정체성의 차이를 넘어 상호 간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물론 상호 간이라 하였지만 대한민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어려움을 돕겠다는 의지 표명이었습니다.

"반공을 국시의 1호로 삼았던" 과거 정권과의 차별을 과시했던 문민정부 출현이 한국 사회에서 남북나눔운동이 출현하는 배경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곧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던 한국교회의 토양에서 남북나눔운동 같은 NGO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평화통일 운동을 선도해 왔던 NCCK 계열의 지도자들과 복음의 정신과 능력을 이데올로기 안에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깊었던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지도자인 홍정길 목사(현재 남북나눔운동 이사장)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유명한 뒷이야기가 되었지만, 당시 홍정길 목사는 남북나눔운동의 대표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당신의 은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뜻은 동의하나 대표직은 고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홍 목사는 당시 안기부 쪽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그 자리에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홍정길 목사는 목사인 내가 어떻게 당신들 말을 듣고 움직이겠느냐, 어쩔 수 없이 1년은 대표를 맡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대표를 맡았던 것이 20년 이상을 대표직에 있게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를 길게 소개한 것은 남북나눔운동이 출범한 당시만 해도 비록 문민 정권의 탄생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대북 경직성이 어떠하였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거쳐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는 평화통일에 대한 부푼 소망을 안고 북한에 대한 열린 자세로 활발한 남북 교류를 이루어 냈습니다. 한국교회는 남북나눔운동을 필두로 북한을 돕는 일에 압도적인 헌신을 해 온 것은 통일부의 공식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그 후 이명박·박근혜의 보수 정권이 들어선 지난 10년의 남북 관계는 경색될 대로 경색되고 한국교회의 대북 자세까지도 보수 정권의 대북 궤도와 비슷하게 깊이 닫혀져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대로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한국교회는 평화통일 여정에서 때로는 선구자적 위치에서 통일 운동을 이끌어 가는 선도적 역할을 했지만, 전체적 궤도는 정부 정책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움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통일 운동 과정에서 정부 정책과 정면충돌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을 감안하다 할지라도 오늘과 같은 정체 현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학의 부재가 가져온 슬픈 현실입니다.

분단 지속 원인은
통일 신학 부재

진보적 교단은 전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통일 신학이 정립되어 있는 교회는 불과 10% 미만이고,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90%의 보수 교회는 통일 신학 자체가 없습니다. 이 분야에서 새롭게 눈을 뜬 젊은 세대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 세대가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 기운은 꺼지지 않을 것이니 희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연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반만년 가까이 한 민족 공동체로 이끌어 오셨기 때문입니다(행 17:26). 그리고 우리 민족을 분열시킨 이데올로기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미움과 증오의 산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미움과 증오의 이데올로기는 극복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통일은 대박이기 때문에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단 이데올로기가 증오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증오를 녹여야 합니다. 분단 유지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증오가 생산되어야 하는데 증오는 마침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부추깁니다. 전쟁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예방해야 합니다. 전쟁 예방보다 근본적이고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없습니다.

사랑의 안경으로
북한을 본다면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보면 북한은 악마요 우리의 주적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면 북한은 우리의 동족이요, 민족 공동체의 부흥을 함께 이루어 갈 동역자입니다. 그들이 핵무기를 생산하고, 핵무기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까지도 따지고 보면 살겠다는 몸부림이지요.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의 눈으로 보면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만용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 네가 망하면 우리도 함께 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한을 미·일·러·중처럼 바라볼 수 없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면서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같이 살자고, 같이 살아야 한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의 다윗이 북이스라엘의 반역을 모두 잊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그들을 포용했듯이 우리도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책임이냐고 따지고 물을 것도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축복을 누린 자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정신이기 때문입니다(눅 12:47-48).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고 평화의 기운이 깨지면 그 직접적인 원인 제공이 북한이라 할지라도 궁극적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6-18)

누가 이 말씀은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해 보십시오. 아주 지속적으로. 어떤 이들은 진보 정권 10년 동안 그들을 도왔더니 그 돈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비난합니다. 아닙니다. 그때 우리가 그들을 돕지 않았다면 북한 인민 100만이 더 굶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은 핵을 보유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적 운명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기운으로 북한이 꼼짝할 수 없을 때까지 북한을 몰아붙여 봅시다. 그들이 항복하고 나설까요? 최후의 수단으로 전쟁의 칼을 뽑을까요? 고양이에게 쫒기는 쥐도 도망갈 구멍이 없으면 고양이에게 달려든다는 것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지혜가 아닙니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가설이지만 증오의 바람이 멈추지 않는 이 상태에서 도적같이 통일이 온다 해봅시다. 그것이 어찌 우리에게 축복이 되겠습니까? 북한 정권에 충성하고 있던 100만(혹은 200만)의 군대와 공산당원들을 어찌하려 합니까?

통일 이후 발생할 정치·경제·사회적 혼돈을 두려워하여 현상 유지를 원하는 어리석은 국민들도 있습니다. 분단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증가되는 분단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 대가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계속 생산해 내지 않고서는 남북 모두가 분단 구조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분단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사회적 안전을 끝없이 피폐하게 할 것입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민족은 통일되어야 합니다. 오직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 땅에 평화를 이끌어 올 유일한 에너지는 사랑뿐입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말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거룩한 사랑의 원천이 되길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1919년 3월 1일, 이날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입니다. 그때 한국교회가 그 일에 앞장섰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입니다.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34년째요. 기독교 인구가 1% 정도였을 때 일이었습니다. 아직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타산이 달라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미움과 증오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북한을 위해 물 쓰듯 돈을 씁시다. 그리하면 남북을 하나 되게 하는 평화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옵소서.
우리는 어리석게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남과 북이 폐허가 된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켜 주옵소서.
더 많이 받은 자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진 것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남과 북이 평화로 만날 수 있도록 저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강경민 /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