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김상범 동아대병원장 편] "섬김·나눔 경영은 두 분 스승 가르침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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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앞에서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 동아대병원장이 지난해 열린 한태륜(7번째) 서울대 의대교수 정년퇴임식에 참석해 김진호(6번째) 명예원장과 함께 하트 자세를 하고 있다. 김상범 동아대병원장 제공

내 인생의 멘토를 꼽으라면 김진호(서울 도티기념병원 명예원장·83), 한태륜(강원도재활병원 원장·69) 교수가 생각난다.

두 분은 서로 상반된 스타일의 스승이었다. 김 선생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연상하게 할 만큼 인자한 반면 한 선생은 별명이 '조지 패튼 장군' 혹은 '독일군 장교'로 불릴 정도 엄격했다.

김진호 원장 자애롭고 인자
겸손·존중의 리더십 일깨워

한태륜 교수 엄격하고 일관
레지던트 시절 혹독한 훈련

김 선생으로부터는 겸손과 존중의 리더십을, 한 선생으로부터는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리더십을 배웠다. 두 분의 가르침을 통해 현재 병원장으로 섬김과 나눔 경영을 펼칠 수 있는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부산고를 거쳐 중앙대 의대로 진학했다. 졸업할 무렵 주변으로부터 '재활의학과가 미개척 분야이지만 전망은 밝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 이왕 할 바에는 국내 최고인 서울대병원에서 하고 싶어 김진호 재활의학과 과장을 찾아갔다. 

김 선생은 "닥터 김의 성격이라면 사막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것 같다"고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김 선생은 당시 서울대병원에선 처음으로 타교 출신을 받아주는 포용력을 보인 것이다.

레지던트 1년 차 시절, 김 선생의 진료 보조 때 일이다. 70대 할머니 환자가 '허리와 무릎 관절이 아프다'며 찾아왔다. 'CT검사 등이 필요하다'고 하니 할머니는 "(김진호)교수님 진료를 받기 위해 4개월을 기다렸다. 돈이 없으니 검사보다 주사와 약만 달라"고 울먹였다. 이에 김 선생은 비서를 원무과로 보내 자비로 각종 검사 등을 받게 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분이구나'하며 감명도 받았다.

당시 재활의학과는 초창기이다 보니 병원 당국 및 의료당국의 지원이 미미했다. 이런 이유로 재활의학 전공자 중 중도에 포기하는 이도 생겨났다. 이때 김 선생은 "현재 병원 내 위상이 낮다고 결코 위축되지 마라. 앞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노년의학이 꼭 필요하게 될 것이다"며 격려해 주었다.

두 번째 멘토는 한태륜 선생이다. 김 선생과의 첫 면담 후 당시 의무장이었던 한태륜 선생에게 인사하러 갔다. 친절한 김 선생과는 달리 한 선생은 '턱도 없는 친구가 찾아왔네' 하는 듯한,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레지던트 지원시험에 합격하자 한 선생은 "레지던트는 교수의 머릿속에 있는 의학지식을 무조건 흡입해 실력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레지던트 2년 차 때 일이 생각난다. 당시 긴장이 약간 풀린 상태였다. 하루는 매주 열리는 세미나 발표 준비를 제대로 못 해 한 선생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한 선생은 "닥터 김, 1년 차가 보고 있는데 2년 차가 그 정도밖에 못 해. 1년 차보다 못하구만"이라고 호통 쳤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듯 섬뜩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한 선생은 계속 재발표하게 했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하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한태륜 교수로부터 인정받아야, 모두가 인정하는 재활의학과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5주 연속 재발표를 한 이후에야 한 교수는 "이제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의사답구만"이라며 칭찬했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이처럼 한 선생은 병원 내에서는 엄격하면서 공정한 스승이었지만 업무가 끝난 후에는 인정이 넘치는 형님 같은 은사이기도 했다. 후배 혹은 제자 의사들과 함께 어울리며 술도 마시며 인생 상담도 해주었다.

두 분 멘토 모두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김 선생은 "환자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진료에 임해라"라고 항상 말씀했다. 한 선생은 "역지사지를 베풀려면 환자의 상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실력을 강조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두 분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김진호 선생이라면, 한태륜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올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우리 병원이 지역거점병원으로 지명되었을 때 두 분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김 선생은 '부산시민의 건강을 위해', 한 선생은 '동아대병원의 능력과 실력을 보여줄 기회'로 보고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병원 전체가 힘을 합쳐 메르스 환자를 완치시킨 후 무사히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두 분께 배운, 섬김과 나눔의 경영을 이어갈 생각이다.

정리=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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