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교수(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최덕성 교수(브니엘신학교, 기독교사상연구원장)가 한기총과 NCCK, WEA·WCC 준비위원회 간의 지난 1월 13일 ‘WCC 총회 개최에 대한 선언문(이하 공동선언문)’ 합의 이후 에큐메니칼 진영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며, “한국교회와 WCC의 상극관계를 직시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23일 부천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에서 ‘한국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앙고백’을 제목으로 이를 발표했다.

이 ‘공동선언문’은 당초 위 4개 기관 대표인 길자연·홍재철 목사와 김삼환·김영주 목사 등 4인간의 합의로 이뤄졌으며, 공동선언문 4개항에서는 △종교다원주의·혼합주의 반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유일성 고백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애 등 복음에 반하는 사상 반대 △개종전도금지주의 반대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비롯된 무오한 말씀이자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절대적 표준이라는 고백 등을 담고 있다. 이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WCC 반대 및 철회촉구 운동의 신학적 근거로 활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먼저 ‘공동선언문’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의 신앙 확언(確言·affirmation)이자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사의 기념비적 신앙고백문”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교회가 복음주의(에반젤리칼)와 에큐메니칼 진영으로 나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작성됐다는 것. 그러나 이 공동선언문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거친 반발과 항의가 빗발치면서, “공식 채택한 문서가 아니”라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는 “사실상 실효가 없어졌고 파기됐으며 ‘쓰레기’라고까지 여겨졌던 공동선언문과 그 이후의 사건을 따지는 이유는 한국교회 발전에 유익한 교훈을 얻고 교회사적 이정표를 삼으려는 목적”이라며 “이번 사건은 기독교와 WCC, 한국교회와 WCC-NCCK 간의 신학충돌 및 패러다임 차이, 화합할 수 없는 실체를 드러냈고, 한국교회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는 기념비적 선언을 파기해 공동체적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불행한 전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공동선언문 파기, ‘역사적 기독교’와 WCC 세력간 차이 확인

최덕성 교수는 “진보계 에큐메니스트들(Ecumenists)이 위 공동선언문에 거칠게 반발한 까닭은 자신들의 신앙고백 곧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앙고백과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동선언문 사건은 한국교회와 WCC의 상극관계, 즉 신학충돌을 직시하게 했고, 역사적 기독교와 진보 에큐메니칼 기독교가 같지 않으며, 한국교회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신학 패러다임이 다른 두 그룹이 화합하거나 일치할 수 없는 실상을 똑똑히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공동선언문 사건은 ‘깜짝 쇼’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겼다고도 했다. 화합을 과시할 목적으로 작성된 공동선언문이, 오히려 평화가 아니라 ‘칼’을 가져다줬다는 것. 최 교수는 “당장 보기에는 복음주의 진영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기뻐하거나 축배를 들 형편은 아니다”며 “진보계 신학자들은 차제에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더 확실히 드러내고 이를 선전·확대·파급시키는 원년으로 삼고자 하며, 백사천난(百死千難)의 마음가짐으로 맹렬하게 한국교회 복음주의 신앙을 공격하여 무너뜨리고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학을 확산시킬 각오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제3의 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치력과 돈, 세력을 가진 이들은 복음적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보적 에큐메니칼 신학을 포용하고 동조하는 이른바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자들(Ecumenical Evangelicals)”이다. 그는 “이들은 에큐메니칼하면서도 에반젤리칼하고, 에반젤리칼하면서도 에큐메니칼한 활동을 한다”며 “자신들의 신앙과 상충하고 격돌하는 자유주의 신학 중심의 WCC 부산총회 준비에 지극정성을 바치고,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친 성도들의 헌금 거액을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갈 수도 있는 WCC 총회를 위해 사용하고 국민의 혈세까지 끌어다 쓰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총무의 서명 취소와 파기 선언, 과연 유효한가?

▲발표하고 있는 최덕성 교수.

공동선언문 발표 이후, 총무 중심의 NCCK 체제에서는 이례적으로 회장인 성공회 김근상 신부가 직접 나서 “공동선언문이 담고 있는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단체, 특히 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에 마음을 담아 머리 숙여 무릎 꿇고” 사과한 다음, 공동선언문 추인을 거부했다.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배태진 총무, 성공회대·감신대·한신대 교수들, 여성신학자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문화신학회 등 에큐메니칼계는 학계와 교계를 망라해 전례없는 반대 총공세를 벌였다. 결국 공동선언문 합의 당사자인 NCCK 김영주 총무는 합의 한 달도 되지 않은 2월 4일, 공동선언문 서명을 취소하고 파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최덕성 교수는 이에 대해 “김영주 총무의 파기 선언은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과 진보 에큐메니칼 진영의 질서를 어지럽혔고, 바람직하지 않은 교회사적 전례를 남겼다”며 “본의는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를 우롱(愚弄)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최 교수는 △WCC 한국준비위원회와 협의 없이 집행위원장직 사임을 선언하면서 면죄부처럼 내밀어, 공동선언문 작성 및 서명·발표 때와 같은 과오를 저질렀고 △상식을 벗어나 일방적으로 취소를 선언했으며 △한국교회 4개 단체 수장들이 작성하고 서명해 ‘일종의 유효한 계약’인 공동선언문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한국교회에 결례를 저질렀다는 것 등을 들었다.

특히 적법한 사유 없는 계약 파기의 책임은 파기 당사자에게 있고, 한 사람의 일방적인 취소나 파기 선언은 무효에 해당하므로, 합의 당사자 중 나머지 세 명 공동으로 또는 한 명이 단독으로 ‘공동선언문 유효확인 청구소송’을 할 경우 틀림없이 승소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주 총무는 당시 자의적으로 서명했고, 합의 내용이 사회적 통념에 위반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가 WCC 신학과 NCCK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와 착오, 착각 속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정리하자면 공동선언문은 공식 채택한 문서가 아니라서 구속력이 없다지만, 공동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파기할 수 있는 문서는 아니다”며 “마지못해 정말로 취소나 파기 선언을 해야 할 처지라면 먼저 나머지 세 명과 그들이 대표로 활동하는 단체들에게 동의나 양해를 구해야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한국교회 구성원들을 기만했고, ‘깜짝 쇼’를 연출해 우롱했다”며 “공식 결의내용이 아니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기는 태도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의 민낯, 곧 정직성 결여와 상식 부재를 확인시켜 줄 뿐”이라고도 했다.

통합과 기하성… 진퇴양난, 양시쌍비, 회색주의, 궤변

최덕성 교수는 NCCK에 속해 있는 주요 교단들과 에큐메니칼 신학자들에 대한 논평도 곁들였다. 공동선언문을 ‘우스꽝스러운 문건·보수측 입장만 가득 담긴 문서·실패한 문서·그릇된 성경관의 부산물’로 취급한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에게는 “종교다원주의자”라면서도,“공동선언문 사태의 원인을 “정직성 결여”라고 진단한 것은 정확했다고 평했다.

공동선언문에 반발해 지난달 열린 에큐메니칼 신학심포지엄에 대해서는 “WCC와 NCCK 신학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고, 다원주의와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라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독성을 정확히 직시하도록 했다”며 “한국교회가 WCC를 따라갈 것인지, 관망하고 침묵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비평했다. 이 자리에서 이정배 교수(감신대)는 “WCC 신학이 현재보다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음”을 지탄하면서 “WCC를 향해 유·불·선 등 동아시아 종교들 모두가 살아있는 세계 유일의 공간인 한국에서 종교다원주의의 실상을 경험하라”고도 했다.

총회장과 총무가 공동선언문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 기장에 대해서는 “어차피 공동선언문은 정치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고, 이 선언문 때문에 WCC가 신학을 바꾸거나 복음적으로 회귀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며 “그러므로 WCC 준비세력은 에큐메니칼 정신, 즉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 원리에 따라 공동선언문을 웃어 넘기고 내일을 기약하면서 부산 총회를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야 하지 않았나”고 언급했다.

이밖에 예장통합에 대해서는 “에반젤리칼하면서 에큐메니칼하고, 에큐메니칼하면서 에반젤리칼한 양시쌍비적 궤변론 또는 회색주의적 태도를 다시 확인했다”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에 대해서는 “WCC·NCCK와의 신앙고백 및 신학 불일치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예측가능성과 신뢰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각각 밝혔다.

‘적당한 타협 안에서의 일치’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

▲학회는 서울신대에서 열렸다.

최덕성 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공동선언문 사태가 한국교회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거나 한때나마 진행됐던 ‘한(1)교단 다(多)체제 운동’이나 한기총-NCCK 간의 단일화 로드맵 등 일련의 노력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진리 안에서의 일치’라는 성경적 원칙을 무시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공동선언문 사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진보계와 보수계가 궁극적으로 ‘하나’가 아니고, ‘하나’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로 한국교회 안에는 복음주의자들과 에큐메니스트들, 그리고 제3의 힘을 가진 에큐메니칼적 복음주의자들이 혼재돼 있음을 알려준다”고 했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애 옹호, 개정전도금지주의 등을 부정하고 성경 66권의 특별계시와 무오성을 인정하는 ‘기독교’가 한국에 아직도 ‘유령처럼’ 백주에 활보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용어들은 마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진보 신학자들은 현재 다소 불리해진 분위기를 에큐메니칼 신학의 선전과 확산, 번영 등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인식을 확대하고 있어, 한국교회에는 위기상황을 안겨주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지난 1920-30년대 기독교 근본 교리들을 부정한 오번선언서(Auburn Affirmation·1924)를 중심으로 한 미북장로교회(현 PCUSA) 신학논쟁 사건과 비슷한데, 당시에도 다수 칼빈주의 또는 근본주의자들이 침묵하거나 설마 하는 태도로 일관하다 자유주의자들에게 교회와 신학교를 넘겨주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강한 집념을 가진 소수가 역사를 움직이게 돼 있고 역사는 결코 똑같은 형태로는 반복되지 않는다지만,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한국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단결하여 반기독교적인 에큐메니칼 신학의 확산운동을 막아낼 경우에만 이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에큐메니칼 진영에 대해서는 “이들이 정통 신학자들을 향해 주로 비난해 오던 ‘독선적이고 편협한 근본주의’ 사고방식을 그들도 갖고 있음과 함께, WCC특유의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와 자유주의 정신마저 버리고 에큐메니칼의 껍데기만 ‘보수’하려는 극도의 폐쇄성·배타성을 드러냈다”며 “한국준비위원장은 위원장직에 연연하고, NCCK 총무는 눈물과 호소, 비상식적 계약파기를 선언하는 등 감투싸움과 자중지란을 보면 보수 연합기관들과 별다를 것 없음을 보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