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회차 사채권자 집회 신청 주목…이자율 3년전比 두 배 이상 상승

LX인터내서널이 3년 전 발행한 일부 공모채에 기한이익상실(Events of default, EOD) 원인사유가 발생했다. 1년 전 LX그룹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로 떨어져 나오면서 '지배구조 변경제한' 계약조건을 위반해 선언된 건인데,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유가 치유되지 않아 다시 사채권자들에게 조기상환 여부를 묻게 됐다.


1년 전 최초 EOD원인사유가 발생했을 당시엔 사채권자들의 조기상환 청구 움직임은 없었다. 계열분리에도 되레 실적과 재무상태가 개선되는 흐름을 보여 투심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EOD 재공고에도 현재까진 청구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진행경과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년 전과 달리 올 들어서는 실적과 재무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회사채 금리도 치솟았다. 사채권자입장에선 조기상환을 받아 재투자하는 것이 유리한 국면이다.


◆ 500억 규모, 마지막 남은 EOD 원인사유채권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X인터내셔널(AA0-, 안정적)은 최근 120-2회차 공모채에 EOD가 발생해 사채관리회사(한국금융증권)가 사채권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120-2회차는 3년전인 2020년 5월 500억원 규모로 발행한 건이다. 만기가 2025년 5월까지로 5년물이다. 이자율은 2.071%였다.


LX인터내셔널은 이날 기준 회사채 발행잔액이 총 6500억원이다. 이 가운데 120-2회차가 마자막 남은 EOD 원인사유 채권이다. 나머지는 사모채이거나 LX그룹 계열분리 공식화(LX홀딩스 출범) 이후 발행한 공모채다.



LX홀딩스는 2021년 5월 1일 LG에서 인적분할로 출범했다. 산하에 LX인터내셔널(옛 LG상사)과 LX하우시스(옛 LG하우시스), LX엠엠에이(옛 LG엠엠에이), LX세미콘(옛 실리콘웍스) 등 5개사를 자회사로 뒀다. 이후 LX홀딩스와 LG 대주주간 지분정리를 거쳐 2022년 6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LX그룹 독립경영을 인정(LG그룹에서 제외)하며 계열분리가 마무리됐다.


LX인터내셔널이 기발행한 회사채들에 EOD원인사유가 발생한 것도 공정위 판단 직후다. 120-2회차를 비롯해 120-1회차(900억원), 118-2회차(300억원) 등 총 1700억원 규모였다. 해당 채권은 최대주주 변경을 제한하는 요건이 달렸고 위반시 EOD 원인사유가 된다.


해당 회차 사채관리계약에 따르면 EOD원인사유가 발생 시 발행물량의 10분의 1 이상을 소유한 사채권자는 단독 혹은 공동으로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할 수 있다. 집회가 소집되면 조기상환 청구를 결의할 수 있는데 ▲참석한 사채권자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미상환잔액 의결권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할 때다.


최초 EOD가 발생했을 당시엔 집회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올 1월이 만기였던 118-2회차와 5월이 만기였던 120-1회차는 조기상환없이 전액 만기 상환됐다.


LX인터내셔널이 LG그룹 소속이었을 당시에도 계열지원 효과 없이 자체신용도(AA-)로 회사채를 발행한 덕으로 풀이된다. LX그룹으로 지배주주가 바뀌었지만 신용등급(AA-)이 그대로 유지됐다. 채권가치에 큰 변화가 없던 셈이다.


더불어 실적과 재무가 지속 개선되고 있었다. 2020년 11조2826억원이던 매출이 2021년 16조6865억원, 2022년 18조7595억원으로 늘었다. 감가상각전 영업이익(EBITDA)도 같은 기간 3235억원에서 8435억원, 1조1980억원으로 증가했다.


투자자들은 그룹간판이 바뀌면서 인지도 하락 등으로 사업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을 수 있는데 오히려 LX간판으로 큰 폭의 성장을 이뤘다. EOD가 조기상환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로 풀이된다.


◆ 5년물 이자율 2%서 5%로 상승…SK쉴더스는 조기상환


이번 EOD 재공고 이후에도 현재까진 사채권자의 집회 신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집회신청기간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아 만기까지 가능성은 지속 남아 있다. 120-2회차는 약 2년 후(2025년 5월)가 만기다.


올 들어선 투심에 비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상승세였던 실적이 꺾이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은 7조1403억원으로 전년 동기(9조9381억원)에 비해 28.2%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351억원에서 2910억원으로 45.6% 감소했다. 매출과 수익성이 함께 큰 폭으로 약화했다.


LX인터내셔널은 ▲석탄과 팜오일 중심의 해외자원개발과 ▲화학·IT제품 트레이딩 ▲물류사업을 주력으로하고 있다. 그런데 올 들어 석탄 가격이 낮아진데다 해운운임이 하락(정상화)하면서 자원과 물류사업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


이에 지속 개선되던 재무상태도 올 들어선 약화됐다. 신사업을 위한 투자비지출은 늘어난 반면 현금창출력을 줄어든 탓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 변동요인 주요 지표로 순차입금/EBITDA 배수를 설정하고 있다. 현재 빚(차입)을 벌어들이는 돈으로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를 보는 수치다. 



순차입금은 올 상반기 말 기준 1조3992억원으로 최근 4년 새 최대치를 찍고 있다. 전년 말(5960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올 들어 수익성은 악화했고 이에 순차입금/EBITDA 배수도 상반기말 기준 1.6배로 전년 말(0.5배) 대비 3배로 뛰었다. 신용등급 방향성이 올 들어 하향세로 전환했다.


무엇보다 회사채 발행금리가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크게 상승해 투자자입장에선 조기상환 유인이 커졌다. 120-2회차(2.071%)는 저금리시기에 매입한 회사채다. 이를 회수해 같은 만기(5년물)의 같은 등급(AA-) 회사채에 재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에서 유리하다.


LX인터내셔널 공모채 3년물 개별민평(자료:키스자산평가)


LX인터내셔널이 올 4월에 발행한 5년물(700억원) 회사채 발행금리가 4.394%였다. 3년전보다 수익률이 두 배 이상으로 올라있다. 이달 14일 기준 LX인터내셔널 공모채 5년물 개별민평은 이보다 높은 4.921%로 형성돼 있다.


실제 다른 발행사는 EOD채권에 조기상환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SK쉴더스는 2670억원 규모 기발행 공모채에 EOD가 발생해 사채권자들로부터 조기상환 청구를 받고 있다. 업계에선 대다수 상환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감안해 SK쉴더스는 이달 14일 2200억원대 유상증자를 추가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