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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6) 서민희 필립스옥션 한국사무소 대표 

예술의 가치를 읽다 

정소나 기자
미술 경매는 가치를 읽는 예술 산업이다. 필립스옥션 한국사무소를 이끄는 서민희 대표는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 시장을 보는 안목, 작품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읽어낼 줄 아는 감각을 두루 갖춘 예술 경매 전문가다. 급격히 주목받는 한국의 현대미술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고, 세계의 뛰어난 미술작품을 국내에 선보여 한국 미술시장의 다각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를 밝힌 서민희 대표를 만났다.

▎필립스옥션을 통해 더 많은 한국 작가를 국제 무대에 알리고 싶다는 서민희 대표.
경매는 이제 예술품 매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표준화된 수수료와 과거 낙찰가격 등 거래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잠재적 구매자들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순기능이 있다. 또 해외 여러 곳에 있는 지사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정보 공유는 신속한 진위 검증과 시세 파악에도 도움이 된다.

1796년 영국에서 시작한 필립스옥션은 크리스티, 소더비와 함께 세계 3대 경매 회사로 꼽히며, 한국 시장에는 2018년 진출했다.

서민희 대표는 지난해 10월 필립스옥션에 입사해 한국사무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글로벌 본사와 소통하면서 경매 작품 위탁 및 한국 컬렉터들이 필립스옥션을 통해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2년간 케이옥션에서 스페셜리스트로 근무하며 서울 외에도 홍콩 라이브·온라인 경매와 뉴욕 프리뷰 전시 등에서 전반적인 경매 업무를 수행했고, 프라이빗 세일 등 국내 외 컬렉터들의 작품 구매 시 자문 역할을 했다.

10년 넘게 미술 경매 현장을 누비며 단순히 소장 작품의 거래를 넘어 작품에 담긴 잠재력까지 끄집어내 작품 가치를 정점에 올려놓는 서민희 대표. 지난 6월 15일, 정승우 이사장이 서 대표를 만나 미술 경매 시장의 흐름과 동시대 트렌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술계에 몸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부에서는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영국 어학연수를 갔는데 6주간 런던에 머물며 매일 미술관, 박물관을 드나들며 미술작품에 푹 빠져들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미술사 과목을 수강하면서 미술에 더욱 흥미를 느꼈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주립대에서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재팬 소사이어티 갤러리,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AKG Museum), 보스턴 미술관 등에서 경력을 쌓으며 미술적 감각을 키웠다.

내가 유학을 떠난 1999년에는 서울옥션이 막 설립되어 한국에서 미술품 경매는 아직 생소한 분야였다. 2005년 말 케이옥션이 설립되면서 국내에서 미술 경매 시장이 서서히 확장되고 대중의 인지도도 차츰 높아졌다. 다양한 미술작품을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로 2010년 케이옥션에 입사했다. 미술 생태계에서 경매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갤러리에서보다 다이내믹한 일에 재미를 느꼈다. 지금껏 내게 가장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잘 맞았나.

실제 미술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 데다, 다양한 작품을 컬렉터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의 컬렉션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특히 컬렉터가 소장품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위탁 의뢰를 할 때 소장 경위를 듣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리서치하고, 시장 상황과 시기 등을 살펴 경매에 출품해 잘 낙찰되기까지 돕는 일련의 과정들이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미술품 경매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경매는 미술시장의 세컨더리 마켓으로, 수요와 공급의 단순한 충족이 아니라 창작자와 소비자 간 투명한 거래를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다각화는 작가와 컬렉터 모두에게 이로운 개방성과 공정성이라는 토양에서 싹튼다.

누구나 미술작품을 향유하고 소장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으면 하는데, 경매에서는 다양한 작품군과 가격대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누구나 쉽게 자신의 취향과 재정에 맞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된다. 경매의 이런 매력이 컬렉터 층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로컬 경매사와 글로벌 경매사를 모두 경험했다. 국가 간 경매 문화 및 컬렉터의 차이가 있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 사실 경매사가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 경매에 출품할 작품을 위탁받고, 경매라는 시스템을 통해 컬렉터에게 알려서 작품이 공개된 시장에서 거래를 한다. 가장 큰 공통점은 팀워크다. 국내 경매사에서도, 현재 일하는 필립스에서도 성공적인 경매나 전시 또는 프라이빗 세일 등 그 어느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훌륭한 팀워크를 발휘해 협력할 때 가장 좋은 성과가 나온다.

국내외 경매 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는 출처이다. 한국에서는 소장 이력을 크게 따지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소장 이력이 아주 중요한 작품 정보이다. 실제로 이전에 어떤 사람이 소장했던 작품인지에 따라서 낙찰가가 크게 달라진다. 쉽게 말하자면 경매 물품의 스토리와 헤리티지가 작품 고유의 가치에 반영되어 낙찰 가격이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소장했던 파텍필립 시계가 경매에 출품되어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약 6분간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 수수료를 포함해 한화 약 81억원에 낙찰되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컬렉터들도 자신의 소장품을 여러 매체를 통해 알리고 있다. 점점 작품의 소장 이력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그동안 숨 고르기를 하던 홍콩이 다시 세계 문화 허브로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홍콩에 새로 문을 연 필립스 아시아 본부 신사옥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2019년 이후 3년 만에 재개방된 홍콩 아트마켓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트바젤 홍콩, M+ 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 전시를 비롯해 각 갤러리들의 전시와 여러 행사를 보기 위해 아시아 각지에서 미술 관계자들과 컬렉터들이 홍콩을 방문했다.

2023년은 필립스 아시아에 매우 중요한 해다. 3월 홍콩 아트위크 기간에 서구룡 문화지구에 신사옥을 오픈했다. 아시아 최대 미술관인 M+ 바로 앞에 자리하며, 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했다. 아시아 진출 8년 만에 상설 전시가 가능한 독립된 전시공간을 오픈한 것은 매우 놀라운 성과다. 이 신사옥에서 더욱 다양한 경매와 전시를 소개할 예정이다. 3월 말 열린 20세기 및 현대미술 봄 경매는 전년 대비 33% 성장을 달성했다. 낙찰자의 38%가 필립스의 신규 고객이었고, 낙찰자의 30%가 밀레니얼 세대 젊은 고객이었다. 또 시계 경매는 낙찰률 100%를 기록했는데, 벌써 2년 연속 화이트 글러브 세일(100% 낙찰) 기록이다. 마지막 황제의 푸이의 파텍필립 출품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주얼리 부서도 이번 시즌 업계 최고의 낙찰률을 기록하며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


유망 작가들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려는 필립스만의 차별성이 있을 것 같다.

필립스옥션의 강점 중 하나는 신진 작가들을 경매에 데뷔시키는 것이다. 2022년 한 해에만 전 세계 작가 148명이 필립스옥션을 통해 처음으로 경매시장에 소개되었다. 필립스옥션은 특히 20~21세기 작품들의 예술적 담론을 정의하고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에 집중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경매 회사로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립스의 직원들은 각 옥션하우스, 미술관, 갤러리, 기타 주요 예술 기관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스페셜리스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화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각 컬렉터에게 개인 맞춤화한 시장 동향과 작품 분석 지침을 제공한다.

최근 열린 런던 사진 경매의 ‘ULTIMATE’ 섹션에 출품되었던 한국 사진작가 5인의 작품은 완판되었다. 이처럼 작품의 독창성과 완성도, 시장의 기대를 잘 분석하여 특별 섹션을 기획하는 등 다각도의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우리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매 업무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한국 미술작품을 선호하는 해외 고객들과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김창열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해 여러 점 소장한 스위스의 여성 컬렉터가 있다. 어느 날 작품 카탈로그를 보고 조선시대 어해도에 응찰하고 싶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담아 어해도 병풍은 문화재보호법으로 인해 국외 반출이 안 된다는 내용을 쓴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후에도 간간이 우리나라 고미술 작품에 관심을 보였으나 응찰할 수 없어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운보 김기창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꼭 구매하고 싶다며 작가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운보 김기창 선생님에 대한 영문 자료를 모아 보냈고, 대영박물관에도 운보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드렸다. 이메일로만 소통하고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의 남편이 세미나 발표차 한국에 방문했을 때 마치 그 컬렉터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렇게 한국 미술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컬렉터들에게 한국 미술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글로벌 컬렉터들을 통해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할 때마다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예술품 경매 회사에서 시계, 보석, 와인 등 미술품 이외의 고가 물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세계 주요 경매 회사들이 설립된 1700년대의 주요 경매 품목은 책이었다. 당시 수집가들의 목록에서는 책이 가장 중요했다. 기본적으로 옥션하우스는 수집 가능한 모든 품목을 다룰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토리와 헤리티지가 있는 물품은 소장 가치가 있고, 그것들이 경매시장에서 유통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시계, 와인, 보석 등 럭셔리 시장도 점점 규모가 커졌고, 경매 출품 때마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필립스옥션은 20세기 및 동시대 미술, 디자인, 사진, 에디션, 시계, 주얼리 등 6가지 특화된 카테고리에 집중함으로써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방법으로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필립스는 한국에서도 특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

지난 2022년부터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기간에 특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시들을 통해서 국내 고객에게 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필립스가 국내에서 경매를 진행하지는 않지만 이런 전시들을 통해서 국내 컬렉터들에게 필립스옥션을 알리고 있다. 올해부터는 경매 하이라이트를 함께 전시하려고 계획 중이다.

또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을 포함하는 등 동시대 아트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려 한다. 한국 컬렉터들은 앞선 감각과 높은 안목으로 전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 그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수준 높은 한국 컬렉터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미술시장을 확대하고 질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콩, 영국, 미국, 한국의 예술품 시장을 비교한다면.

최근 경매는 지역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온라인이나 전화 응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매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작가군이나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홍콩 경매의 경우 아시아 컬렉터들의 취향을 반영해 최근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색감이 뚜렷한 아이코닉한 대표작들이 이브닝 경매를 장식한다. 런던 경매에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럽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출품된다. 뉴욕 이브닝 경매의 경우 대가들의 마스터피스나 매우 고가의 작품들이 출품되는데 전후 미국 미술 등 미술관급 작품들이 출품된다. 한국 미술시장은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국내 거장들, 근대미술, 고미술에 대한 국내 컬렉터들의 대한 수요가 꾸준하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예술품 경매의 매력은.

경매의 매력 중 하나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수작들이 간혹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이 출품되면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되고 경합을 거쳐 새로운 소장자를 만나게 된다. 이처럼 모두에게 공개된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 경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옥션하우스에서 제시한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기도 하고, 간혹 시장 상황에 따라 낮은 추정가보다 더 낮은 금액에 낙찰되기도 한다. 특히 미술품 중 단 하나의 오리지널 작품만 있는 경우, 이 유일한 이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다. 경매사, 전화 응찰자, 낙찰자, 언더비더 등 경매 현장의 모든 사람이 단 하나를 얻기 위해 집중한다. 그 긴장감과 열기가 바로 경매의 매력 아닐까.

옥셔니어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먼저 미술사를 공부해라. 경매를 현장에서 직접,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전시를 많이 보고, 뉴스를 항상 접하면서 미술시장의 트렌드를 익혀야 한다. 그리고 경매 회사에는 옥셔니어, 스페셜리스트 외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있으니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모색해볼 것을 권한다.

최근 미술계 동향을 보면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소외되었던 계층에 대한 재조명이자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이다. 세상과 사회에 대해, 또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방향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습관이 더욱 성숙한 세계관과 자아 형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2307호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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