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경련 회장. 사진=국회사진취재단
허창수 전경련 회장.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60년간 경제단체의 맏형 노릇을 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쇄신의 바람이 분다. 12년 만에 리더십을 물갈이하기로 결정했다. 차기 회장은 내부에서 선택될 수 있고, 외부에서 추대될 수도 있다. 경제단체의 구도가 재편될 수도 있는 중요한 선택지가 전경련 앞에 놓였다.

21일 전경련에 따르면, 최근 사의를 표한 허창수 회장의 임기가 오는 2월 만료된다. 2011년부터 6회 연속 회장을 맡은 ‘최장수 회장’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긴 끝에 전경련 회장실을 떠난다.

전경련 회장은 한때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다. 재계를 쥐고 흔들던 당대의 거물들이 한번쯤은 맡고 싶어 했던 비중 높은 자리였다. 전임 회장들의 면면만 봐도 화려하다. 이병철(삼성)·정주영(현대)·구자경(LG)·최종현(SK)·김우중(대우) 등 4대그룹 급의 위용을 자랑한다. 전경련의 전성기는 4대그룹과 함께였다.

하지만 허 회장 퇴임식에 4대그룹 관계자의 모습은 볼 수 없을 전망이다. 이미 탈퇴한 지 오래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뒤 전경련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악화되면서 등을 돌렸다. 기업 이미지가 잠재적인 재산인 기업으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4대그룹은 2016년 12월부터 불과 두 달 만에 전경련에 탈퇴원을 내고 미련 없이 모두 떠났다.

4대그룹이 탈퇴하자 허 회장 역시 2017년부터 수차례 직을 내려놓겠다고 주변에 밝혔다. 하지만 후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강제 연임’이 시작됐다.

허 회장의 고충은 심각했다. 전체 회비의 절반을 책임지던 4대 그룹의 탈퇴 뒤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외부적으로는 굳건하던 위상이 흔들렸다. 문재인 정부 당시 모든 경제계 행사에서 배제되는 굴욕을 당했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각종 경제단체장 회동에 초대받으며 다시 제자리를 찾나 했지만, 지난해 연말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만찬에 배제되면서 분위기는 미묘하게 흘러갔다. 허 회장의 퇴진설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도 이때쯤이다.

차기 회장을 뽑는 전경련의 키워드는 ‘내부 혁신’ 또는 ‘외부 통합’으로 모아진다.

일단 내부적으로 혁신위원회를 꾸려 회장을 물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혁신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이달 말부터 대대적으로 회장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이 명예회장과 함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중량급 인사들이 거론된다. 이들은 전경련 회장 교체기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더욱 이목이 쏠리는 대목은 전경련을 둘러싼 통합설이다. 이는 외부 인사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관련이 있다. 손 회장은 줄곧 전경련과 경총이 합쳐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다. 두 단체가 통합해야 재계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논리다.

한국 경제에 영향력이 큰 4대그룹을 재가입 시키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통합설에 불을 지피고 있다. 4대그룹 일원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3월 기자간담회에서 전경련 재가입 여부에 대해 “우리는 다 같은 식구”라면서도 “지금으로써는 여건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경련의 쇄신과 변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 필요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기업인 중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하면 학자나 관료 출신 인사 영입도 검토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실제 경제5단체 구성원인 한국무역협회의 경우 2000년대 이후에만 해도 이희범, 사공일, 한덕수, 김인호, 김영주 등 학계나 정부에서 활동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무협의 경우 정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회원사가 대부분 대기업인 전경련의 위상 회복을 위해서는 역시 재계 총수가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의 이번 회장 교체는 그 어느 때보다 주요 경제단체로서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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