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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유림의 사상, 세상 밖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윤영 시문집 ‘후산문집’
문화 문화일반

조선 말 유림의 사상, 세상 밖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윤영 시문집 ‘후산문집’

1940년 이전 아들 정수용 필사 번역본... ‘홍진을 지나며’·‘단오’·‘회양 가는 길에’ 등 작품
유배지서도 굽히지 않은 신념·백성의삶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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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윤영 시문집 ‘후산문집’. 화성시역사박물관 제공

 

‘돌아가자/ 편안한 집이 오래 비었으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세월은 흘러흘러 멈추지 않으니/내 마음은 아프고 슬프네./.../어찌 위태롭고 미약한 마음에서 올바름을 택하지 않으리./.../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니/태화가 술동이에 가득하네./취한 노인을 나무라며 앞으로 나아가니/여윈 얼굴에 긴 봄이 머물렀네./고요하게 거처하며 곤궁함을 지키니/화려함은 본래 편안한 것 아니라네.’ (후산문집 中 ‘‘귀거래사’에 차운하다’_ 고종 15년, 1878)

 

세상의 명성과 부귀를 탐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는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이런 글을 남기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경기지역을 대표하는 위정척사사상가로 학문과 교육활동에 전념해 온 후산(后山) 정윤영. 그의 지식과 사상이 총망라된 시문집 ‘후산문집’을 번역해 엮은 ‘역주 후산문집’이 최근 발간돼 학계와 지역 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윤영은 경기지역의 대표적인 위정척사 사상가다. 1833년(순조33년) 당시 화성군 동탄면 금곡리에서 출생해 1898년(66세, 광무 2년) 별세했다.

 

고종 18년인 1881년 유생들의 신사척사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척사만인소(斥邪萬人疏)’를 작성해 경기유생들을 적극 지원했으며, 이 사건으로 이원현에 정배됐다가 3년 만에 풀려났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처의(處義)에 있어 신하들은 마땅히 나가서 죽어야 하고 선비들은 자정(自靖)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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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영의 큰아들 정수용이 자료를 선별해 편찬한 필사

본 문집 ‘후산문집’(1940년 이전)과 이를 바탕으로 발간

된 ‘역주 후산문집’(사진 위). 화성시역사박물관 제공

정윤영이 남긴 ‘후산집’은 그의 아들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후손들에 의해 1994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편찬됐다.

 

이 중 총 20권 11책으로 구성된 세 번째 ‘후산문집’이 가장 완성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화성시역사박물관은 이를 번역해 최근 ‘역주 후산문집’으로 펴냈다.

 

권1부터 권4까지는 정윤영의 부 6편, 사 3편, 시 총 345제 568수가 수록돼 있다.

 

열 살때 지었다는 ‘화성의 팔달산에 오르다’ 등 유배 이전의 작품에선 곤궁한 일상 속에서도 성리학적 사유를 강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유지한 학자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드러난다. 1881년 8월 함경도 이원으로 유배돼 1883년 2월 귀향하기까지의 작품에선 ‘임명을 지나며 지은 부’ 등 당대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강한 신념을 읽을 수 있다.

 

‘홍진을 지나며’, ‘단오’, ‘회양 가는 길에’ 등의 작품에는 북관 백성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또 단발령이나 변복령, 동학, 의병 등 당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조선이 마치 눈으로 읽혀지듯 절절하게 써내려졌다.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선조의 삶과 가치를 연구하고 세상에 알리고자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등 그의 후손들이 소장한 문집과 유물을 화성시역사박물관에 기증하면서다.

 

화성시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정윤영 선생의 사상이 총망라된 ‘후산집’을 통해 조상이 남긴 글의 가치와 정신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 후손들의 정성 어린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며 “방대한 양의 자료가 한문으로 돼 있어 내용 파악이 어려웠는데 정윤영의 사상과 학문 연구 기반을 마련하고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번역 작업을 거쳐 책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배 시기에 쓴 문학작품과 척화의 신념을 밝히며 단발령을 개탄하며 작성한 상소,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글, 금강산 유람기 등이 실려 있는 문집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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