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김서연 씨(가명)는 갓 스무 살을 넘긴 2019년, 권 아무개 목사(새로운OO교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권 목사는 신앙생활의 일환이라면서 수시로 김 씨에게 범죄를 저질렀다. 권 목사는 올해 10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연 씨는 피해를 당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권 목사의 행위가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동안 권 목사가 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신앙 행위라고 서연 씨를 세뇌해 왔기 때문이다. 권 목사는 "목사를 기쁘게 하는 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목사의 수제자가 돼서 많은 영혼을 먹여 살려라"라는 말로 서연 씨를 조종하고 고립시켰다. 그루밍 성범죄의 전형이었다.

서연 씨는 2020년 6월부터 권 아무개 목사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권 목사는 이를 거부했고, 교회에 자신의 범죄 사실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권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호헌(예장호헌·이우회 총회장) 총회는 올해 4월 권 목사를 제명했지만, 새로운OO교회에 대한 후속 행정 조치나 피해자 지원은 전혀 없었다. 현재 새로운OO교회는 권 목사의 아내 고 아무개 목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권 목사의 성범죄 사건을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앤조이>는 11월 16일 서연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권 목사의 지시 사항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녹음·녹취를 해 온 김 씨는 자신의 기록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당시 기억을 꺼내 놨다. 실제 고소장에 수록된 사건 관련 녹취록만 120여 페이지에 달할 정도다. 녹취록에는 권 목사가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서연 씨를 길들이고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담겨 있다.

새로운○○교회 권 아무개 목사. 새로운○○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새로운○○교회 권 아무개 목사. 새로운○○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교회는 마치 군대 같았다"

서연 씨는 모태신앙이다. 서연 씨의 부모는 결혼할 때 권 목사의 주례를 받았다. 서연 씨는 부모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누구보다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다.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권 목사가 시키는 대로 새벽 기도부터 철야 기도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회 청년부 리더, 목장 모임, 성가대, 교회학교 교사 등 맡지 않는 직책이 없을 정도였다.

서연 씨는 교회가 흡사 '군대' 같았다고 말했다. 평소 권 목사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조했다. 스스로를 '모세', '하나님의 선한 목자'라고 부르면서 "목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목자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이다", "목사를 기쁘게 하는 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권 목사는 주 1회 진행되는 청년부 목장 모임에서 교인들이 설교 내용을 잘 지켰는지 하나하나 점검했고, 자신의 말을 항상 녹음하라고 지시했다.

권 목사는 자신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서연 씨를 서서히 길들였다. 서연 씨가 고등학교 3학년일 무렵, 권 목사는 차세대 리더를 양성한다며 목양실 청소를 맡겼다. 그동안 설교 녹취, 교인 연락, 외부 손님 응대, 간식 준비 같은 일을 해 오던 서연 씨는 목양실도 쓸고 닦았다. 입시 준비로 분주한 시기였지만, 순종을 강조하는 권 목사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목양실 청소는 원래 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일이었는데, 여호수아 세대를 세운다면서 교회 생활에 열심인 청년들한테 그 일을 맡겼어요. 제가 두 번째로 맡은 거였어요. 밤 11시쯤 학원을 마치고 교회에 가서 청소했죠. 시간이 없으니까요. 목양실에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고. 권 목사는 그런 제게 북한의 김여정을 언급하면서 '주의종 오른팔이 돼라', '돕는 배필이 돼라'고 했어요."

하루는 권 목사가 '순결교육'을 하겠다며 서연 씨와 여성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목사와 성도의 '결합(다바크)'을 강조하며 "첫 순결은 목사에게 바칠 정도가 돼야 한다"고 했다. 권 목사는 교육이 끝난 후 서연 씨를 따로 불러 "음란의 영을 조심하라"며 학교에서의 이성관계에 대해 조언했다. 하루는 서연 씨에게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그림인 '시몬과 페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네가 찬양하는 모습에서 여인의 모습을 보았고 가슴이 보였다", "나이 들고 지친 나를 위해 젊고 혈기 왕성한 네 생기를 주어 나를 기쁘게 해라"고 말했다.

권 아무개 목사는 전 세계 '문화 선교' 사역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평소 교인들에게는 목사를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했다. 서연 씨는 군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다고 증언했다. 구기동○○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성경이 말하는 '음란' 아니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

권 목사는 2019년 10월부터 서연 씨를 추행하고 강간했다. 서연 씨가 기억하는 범행만 수차례나 된다. 주로 저녁·새벽이나 교인들이 없는 낮 시간에 목양실로 불러 범행을 저질렀다. 그때마다 권 목사는 성경 내용을 언급하는 등 신앙적인 말로 서연 씨를 세뇌했다. 서연 씨는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교회에서 늘 '목사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목사의 요구에 응하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낯설고 힘들어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권 목사가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마치 하나님께서 저한테 하시는 말씀 같았어요. 목사를 하나님처럼 생각했으니까, 전혀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권 목사도 '이게 진정한 다바크다', '넌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른 청년들과 레벨이 달라졌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라', '목사님의 수제자가 돼서 많은 영혼을 먹여 살려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건 성경에서 말하는 음란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라고 했죠."

서연 씨는 교회에 새로 온 D와 이야기를 하다 자신이 영적 체험을 했다면서 권 목사와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충격을 받은 D는 서연 씨에게 그건 영적 체험이 아니라 성폭력이라고 했고, 그제서야 서연 씨는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길을 걷다 권 목사를 마주칠 것 같은 공포심에 주저앉을 정도로 서연 씨의 일상은 무너졌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다행히 서연 씨 곁에는 조력자들이 있었다. D와 교회 언니 E가 서연 씨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용기를 낸 서연 씨는 2020년 5월경 교회 청년부에서 권 목사의 범행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진실을 알리면서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교회에 알리면 D와 E처럼 제 말을 믿어 줄 것 같았죠. 사건 녹음 파일까지 들려줬어요. 근데 다음 날 사람들이 모여서 이건 조작한 거라고, 저와 D·E가 이상한 사람이고 교회를 와해하려고 음모를 꾸민 거라고 하더라고요. 중·고등부 때부터 선생님이었던 한 안수집사는 단순한 스킨십이라고, 제가 '상상임신' 한 거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가해 목사 편에 선 교회
"교회를 위해 참아라"

교인들은 서연 씨의 요청을 외면했다. 단순히 등만 돌린 게 아니었다. 서연 씨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을 꾸몄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 틈을 타 권 목사는 서연 씨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갔다. 처음에는 범행이 없었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자신이 유혹당한 거라고 주장했다.

교회는 권 목사를 변호하며 2차 가해를 저질렀다. 특히 권 목사의 부인 고 아무개 목사는 2020년 6월 9일, 서연 씨와 서연 씨의 부모가 동석한 자리에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서연 씨가 권 목사의 공개 사과를 원한다고 하자, 고 목사는 "그거야말로 완전 사람 죽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너도 인생 끝난다"고 했다. 권 목사가 자신을 세뇌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에는, "세뇌를 누가 시켰느냐. 아무도 세뇌시킨 사람 없다", "이성이 있는 여자가 그런 변명을 하느냐"고 몰아세웠다. 권 목사는 이 자리에서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 기도해 주겠다"며 기도하기도 했다.

권 목사는 서연 씨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신의 자녀들을 서연 씨 집으로 데리고 가 회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몇몇 교역자는 서연 씨가 혼자 있는 집으로 찾아가 "지금 네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아느냐"며 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서연 씨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한 교인은 '나도 어렸을 때 다른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서 '네가 좀 참아라'라고 했어요. 다른 교인은 '교회가 지금 어렵다', '목사님이 아프다' 이런 식으로 포장하더라고요. 권 목사가 자살하면 어떡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권 목사가 20여 년간 시무하던 구기동○○교회. 권 아무개 목사는 사건 이후 구기동○○교회를 하나님의교회에 매각하고, 경기도 고양시에 새로운○○교회를 세웠다. 네이버 로드뷰
권 목사가 20여 년간 시무하던 구기동○○교회. 권 목사는 사건 이후 구기동○○교회를 하나님의교회에 매각하고, 경기도 고양시에 새로운○○교회를 세웠다. 네이버 로드뷰

서연 씨는 2020년 9월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교인들은 끝끝내 권 목사의 범행을 믿지 않았다. 서연 씨와 함께 사건을 알리기 위해 나선 D·E를 집까지 미행하기도 했다. 다니던 학교에 전단지를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교인들도 있었다. 심지어 20년 넘게 교회를 다닌 서연 씨와 D·E를 이단으로 몰고 출교 처분까지 내렸다. 지속적인 모함에 시달린 D·E는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서연 씨는 피해에 공감하고 지지해 줄 거라고 믿었던 교인들이 사실을 부인하고, 자신과 가족·친구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권 목사는 서연 씨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정작 법정에서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탓했다. 일흔에 가까운 자신에게 20대 여성 교인이 잘 보이기 위해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 탓을 하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고인의 범죄 수법을 고려할 때 죄질이 심히 불량한 점, 피고인은 목사임에도 성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신도인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점,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점, 피해자가 피고인의 범행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점 등을 고려해 주문과 같이 형(징역 3년)을 정한다."

권 목사는 즉각 항소했다. 1심에서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을 선임했던 권 목사는 이번에는 대형 로펌을 고용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12월 중순 열린다.

서연 씨는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해리 증상을 동반한 외상후스트레스 진단을 받았고,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몸무게가 10kg 줄어드는 등 건강에도 이상이 생겼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함께한 교회 친구들의 외면이 큰 상처로 남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서연 씨가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기로 한 이유가 있다. 교회가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 목회자의 편에 서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피해자를 외면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권 목사가 다시 목회 활동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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