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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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하철 역 지하상가에서 목격한 일이다.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로 보였다. 아빠 엄마 애들 모두가 짐을 등에 지고 또는 손에 들고 어딘가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필자는 그 때 그 상점에서 뭔가 눈에 띄는 물건이 있기에 잠시 눈길을 주고 별 생각 없이 서 있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져 ‘이게 뭐지’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봤다. 가게 주인과 조금 전에 본 그 가족 일행과 언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좀 친절하게 일러주면 어디가 덧나냐. 왜 그렇게 불친절하냐”는 것이 조금 전 본 여행객들의 불만이었고 가게 주인 왈 “물어도 너무 묻는다.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찾을 생각을 안 하고 왜 그렇게 물어보는 지 아주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물어보는 입장에서 그리 처음부터 기분 나쁘게 물어보지는 않았을 터임은 분명하고 문제는 도대체 하루에도 수십 차례 “화장실이 어디에요”하고 묻는 통에 죽겠다는 하소연인데… 그렇게 퉁명스럽게 알려주면 정말 나라도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사실 요즘은 길을 몰라 묻는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긴 하다. 스마트 폰의 길 찾기 앱을 켜면 자신이 있는 위치가 나오고 가려고 하는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면 될 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네이버의 길 찾기 앱을 곧잘 이용하곤 하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자세히 길 안내를 해주기에 여간 편한 것이 아니다. 가르쳐 주는 방향대로 가다보면 아파트가 나오고 약국이 나오고 빵집이 있고 거기에서 길을 건너고 골목길을 돌아 목적지로 안내해주는 식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어디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 지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겠지만 예전에는 초행길을 찾아 가야 하는 경우 옆자리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주요 임무는 지도책을 펴들고 이정표를 확인함과 동시에 여차하면 재빨리 창문을 내려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워 ‘어디 어디 가려면 이 길로 가는 게 맞는가요’ 하고 확인하거나 ‘어디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나요’ 하고 묻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한 밤 중이나 새벽에는 마땅히 길거리 행인에게 물을 수도 없으니 기름 넣을 일이 없어도 주유소에 잠시 들러 길을 묻거나 확인하곤 했던 것이었다. 

젊어서 미국 중부 캔자스 주립대학교에서 성곡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방문 교수(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1년 정도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물론 지금처럼 내비게이션 자체가 선을 보이지 않았을 때여서 많이도 묻고 다녔던 것 같다. 

아는 곳도 지나는 사람에게 한번 말 붙이고 물어보면 어떻게 어떻게 가라고 설명해주는 데 어찌 보면 그것이 생생한 영어 리스닝 공부가 되기도 해서 자주 써먹은 나만의 수법(?)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남녀 간에 길을 설명해 줄 때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동으로 몇 마일 가다가 인터체인지가 나오면 남서로 몇 마일 달리면 된다’ 이런 식으로 방향으로 이야기하는 데 비해, 여자들은 ‘이리로 쭉 가면 약국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 데 왼쪽은 가다보면 길이 끊어지니 무시하고 오른 쪽 빵집 쪽으로 우회전해서 조금 달리다 보면 왼쪽 편에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쪽 출구로 나와서 쭉 달리다 보면…’ 

지리에 천부적으로 그리 밝지 않은 방향 치에다 길치인 나로서는 오히려 여성한테 길을 묻는 것이 더 리스닝 연습도 되고 더 효과적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이후 별로 길을 잘 묻지 않게 된 것은 내비게이션이나 길 찾기 앱 같은 문명의 이기 탓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느끼는 불쾌감 때문에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아예 길을 물어보려는 엄두조차를 잘 내지 않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가는 여자에게 무얼 물어보려고 해 보았자 세상이 험해져서 그런지 뭔가 무시하고 피해가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귀에다 뭔가를 꽂고 있어서 아예 못 듣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어 혼자 머쓱해 질 때가 있다. 

어떤 젊은이는 물어 보아도 분명히 듣고도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경우까지 당하고 나면 으이그 안 묻고 말지 어떻게든 내 힘으로 찾고 말테다 하는 오기가 생기면서 어쩌다가 “아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대답이라도 듣게 되면 그래도 모르겠다고 답이라도 해주니 정말 고맙군요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도 옛말이고 어느새 이렇게 길안내마저도 인색한 세상이 됐는지 세월 따라 변해가는 인심이 두렵기 만하다.

한상덕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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