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가리기 시작…믿을 수 있는 암호화폐만 남을 때 새시대 열릴 것"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의 폭락으로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위기다. 치솟는 불신이 시장을 덮치고 있다. 투매가 잇따르면서 "암호화폐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란 지적까지 나온다.
2008년 글로벌 4위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멈췄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다.
"진정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성화와 금융전문가 참여를 통해 믿을 수 있는 암호화폐만 남으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지급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무너진 신뢰…쏟아지는 패닉성 투매
글로벌 가상화폐 정보사이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12일 오후 5시경 루나의 개당 가격은 12센트로 24시간 전 대비 97.8% 폭락했다. 테라도 23센트까지 무너졌다.
13일에도 하락세는 지속됐다. 이날 오후 4시경 루나는 1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불과 이틀 만에 가치의 99.99%가 사라졌다.
시장을 더 경악케 한 것은 테라가 스테이블코인이며, 루나는 테라의 가치를 보증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이ㅏㄷ.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이 심한 여타 암호화폐와 달리 그 가치가 달러화 등 법정화폐에 페깅(고정)돼 있는 게 특징이다.
일례로 가장 유명한 스테이블코인인 테더는 투자자가 발행사 테더 리미티드에 1달러를 예치하면, 테더 하나를 발행해주는 식으로 가치를 고정시킨다. 테더의 가치를 보증하기 위해 채권, 어음 등을 담보자산으로 제공한다.
스테이블코인 투자자는 매매차익보다 이자로 수입을 올리도록 설계돼 있다. 테더 등 스테이블코인을 해당 암호화폐 발행사가 관리하는 디파이(탈중앙화 거래소)에 유치할 경우 매년 일정액의 이자를 지급한다. 금리는 연 10% 수준으로, 은행보다 훨씬 높다. 발행사는 투자자가 예치한 달러화 등을 타 금융시장에 투자해 이자 지급 재원을 마련한다.
테라폼랩스는 테라 가치를 1달러에 고정시키기 위해 테라를 1달러 가치의 루나와 교환해주는 걸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테라는 루나를 통해서만 매매할 수 있는데, 테라 가격이 1달러가 넘으면 테라를 팔고 루나를 사들여 가격을 떨어뜨리고, 테라가 1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루나로 테라를 삼으로써 가격을 올리는 식이다.
테라폼랩스의 디파이 앵커프로토콜은 테라를 유치한 투자자들에게 연 20%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했다. 게다가 루나를 통해 매매차익까지 노릴 수 있어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올해 4월 한 때 루나의 가격은 119달러를 넘어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 8위(약 410억 달러)까지 올랐다.
테라와 루나의 인기는 5월 들어 테라 가치가 1달러를 회복하지 못하자 금세 무너졌다.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테라와 루나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12일 테라 가격이 60센트 이하로 내려가자 패닉성 투매가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붕괴했다. 투자자들의 재산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의 담보를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로 설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를 만든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문영배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디지털금융연구소장)도 "알고리즘에 리스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암호화폐 발행과 거래를 관리하는데 정보기술(IT) 전문가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금융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테라와 루나 폭락에 대해 "죽음의 소용돌이"라고 평했다. 루나 폭락은 다른 스테이블코인, 나아가 암호화폐 전체와 암호화폐 관련주들에도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이 12일 한 때 2만5000달러대로 주저앉았으며, 암호화폐 시총은 2000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리서치업체 펀드스트랫은 "테라와 루나의 극적인 가격 하락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증발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테더 리미티드 등은 자사의 스테이블코인은 테라와 구조가 달라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심쩍어 한다. 투명하게 모든 걸 드러내 검증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나단 다마패런 이커런시 최고경영자(CEO)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위험을 늘 관리한다고 말하지만, 잘 관리되는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도 자신들이 만든 규칙이 적절한지 아닌지 잘 모를 것"이라고 비꼬았다.
투자회사 파이퍼샌들러는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테라와 루나의 상황에 겁먹었다"고 판단했다.
블룸버그는 "시장은 루나 폭락을 리먼 사태와 비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투자자들이 신뢰를 잃었다"며 "이번 사태가 '리먼 모멘텀'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뢰할 수 있는 암호화폐만 남았을 때 새로운 시대 열린다"
시장 붕괴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암호화폐 시장은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세다. 비트코인은 13일 오후 3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12일 오후 한 때 0.950달러로 내려갔던 테더는 13일 오후 0.997달러로, 1달러 가까운 가치를 회복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과거 인터넷 시대가 도래할 때 거품이 끼는 등 성장통을 겪었던 것과 비교한다.
박 센터장은 "암호화폐도 옥석 가리기와 검증을 거치는 것"이라며 "결국 암호화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소장도 "진정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셰러드 브라운 상원 은행위원장 등은 규제를 말하지만, 문 소장은 "규제보다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소장은 암호화폐가 본래 지급결제 수단으로 만들어졌음에도 그 역할을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모든 투자자산은 매매차익 외에도 보유하는 것만으로 나름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 부동산에는 거주의 이점이 있으며, 주식은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암호화폐에는 보유의 가치가 없다. 단지 누가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줄 때만 의미를 가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태로는 단지 투기자산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문 소장은 암호화폐가 지급결제 수단으로 통용되기 위한 조건으로 양성화와 옥석 가리기를 꼽았다.
우선 양성화가 돼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암호화폐로 거래할 수 있다. 박 센터장도 "양성화가 안 돼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문 소장은 또 "옥석 가리기를 진행하면서 금융전문가가 다수 참여해 믿을 수 있는 암호화폐 발행 및 거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암호화폐만 남았을 때, 지급결제 수단으로 널리 통용되면서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KPI뉴스 / 안재성·강혜영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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