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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 진여의 이치를 실상으로 봄)

기자명 진우 스님

인연 따라 화합된 모습이 참 모습 아님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형상 있는 모든 것 변하지 않는 것 없어…생각과 감정 또한 허망
하늘‧구름 다 상으로 보지 않아야 그것이 참 하늘이며 진공묘유본래 자기 것이란 없으니 집착 말고 들고 나는 것에 자유로워야

인연따라 생겨난 모습은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닌 것을 알면 여래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법보신문DB] 
인연따라 생겨난 모습은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닌 것을 알면 여래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법보신문DB]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佛告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기를, 인연 따라 화합된 모든 모습은 모두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습을 그 모습이 아닌 것으로 알면 바로 여래의 참모습 볼 수 있으리.

이 구절은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 첫 번째 사구게이다. 부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보리에게 묻고 또 물으신 다음, 여리실견분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모두 사라지고 만다. 허망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이다. 모든 형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변한다는 것은 자기의 본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따져봐야 남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다만 착각하고 있는 나의 상념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바로 현재 나의 생각과 감정 역시 변하고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다.

문제는 감정덩어리다. 좋고 싫고 좋지도 싫지도 않는 세 가지 감정 즉, 삼수(三受)작용만 윤회(輪廻)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 역시 더 좋거나 더 싫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 생기는 즉시 싫고 나쁜 감정 역시 똑같이 생기므로, 이 또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수고로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좋은 것만을 취하려 하니, 어리석음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모든 대상을 나의 고정된 생각에서 보려고 하는 버릇이 있다. 이를 숙업(宿業)이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시고, 고정된 생각을 버려야 편치 않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하신다. 즉 고정된 생각을 없애야 곧 진실 된 여래(如來)를 본다는 말씀이다. 어떤 것을 보고 ‘좋다’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머물러 집착한다면, 곧 좋지 않은 것이 생기게 된다. ‘예쁘다’라고 하는 것에 마음이 머물러 집착한다면 곧 예쁘지 않은 것,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좋은 것이나, 예쁜 것이나 결국 허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말씀이다.

만약 돈에 대하여 ‘가지고 싶다’거나, ‘아깝다’거나, ‘좋다’거나, ‘뺏고 싶다’거나, ‘감추고 싶다’거나 등등의 집착을 하게 된다면, 그 과보(果報)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는 것에 대해 애를 쓰게 되고 화가 나며, 여러 가지 상념으로 인하여 마음이 불편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나와 돈의 관계는 끊어지고 말 것이다. 결국 돈의 상(相)은 없는 것이 된다. 모든 것은 인연 연기(緣起)따라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고정된 생각에 치우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집착을 하게 되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착각이 실망으로 이어져서 괴로워하게 된다.

젊은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으로 인해, 늙음으로 변하는 것에 애탐과 슬픔이 오고, 건강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병으로 변하는 것에 괴로움이 찾아오고, 얻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잃게 되는 변화에 고통을 느끼게 됨이니, 젊다느니, 건강하다느니, 얻음이니 하는 상(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상(相)을 진짜라고 믿지 말고 상(相) 아닌 비상(非相)으로 보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부처님께서는 한마디로 모든 상(相)은 절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니, 이를 진짜로 알고 집착하게 되면 실망에 의한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게 되므로, 그 어떤 상(相)이라도 집착하지 말고 진짜로 보지 않아야 제대로 된 마음의 상(相) 즉, 여래(如來)를 볼 것이라고 하신다.

만약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믿는다면, 억울한 상(相)을 억울한 상(相)으로 보지 말라는 뜻이다. 억울한 것을 억울하다고 보는데 이를 억울하게 보지 말라는 것은 무슨 궤변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이렇게 의심하는 생각의 상(相)까지도 갖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과 상(相)이란 결국 허망한 것이어서 집착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다. 구름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며 변하고 또 변한다. 구름에 집착하게 되면 하늘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흘러가는 구름의 변화에 집착하지 않으면 항상 하늘은 그대로다. 우리의 삶에 있어 일상의 모든 움직임은 구름과 같다. 구름을 진실 된 상(相)으로 보고 집착하게 되면 하늘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구름을 진실 된 상(相)으로 보지 않으면 비상(非相)의 하늘이 열린다. 그러나 하늘은 그 무엇도 없다. 그러므로 구름과 하늘을 모두 상(相)으로 보지 않으면 결국 참 하늘 즉,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된다. 구름 없는 하늘이 없고 하늘 없는 구름이 없는 까닭이다.

이것이라는 상(相)에 머물면 저것이라는 상(相)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相)은 진실 된 상(相)이 아니다. ‘태어났다’라는 상(相)이 생기면 ‘죽는다’라는 상(相)이 따라 생긴다. ‘얻었다’라는 상(相)이 생기면 ‘잃는다’하는 상(相)이 저절로 생긴다. 이것이라는 상(相)이나, 태어난다는 상(相), 얻는다는 상(相)을, 상(相) 아님으로 보면, 저것이다, 죽는다, 잃는다라는 상(相)도 생기지 않으니, 이것이 곧 여래(如來)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상(相)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그대로를 모두 받아들이고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머물지 않으며, 모든 상(相)을 비상(非相)으로 보는 훈련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허깨비 업(業)에 매일 속아서 마음에 멍이 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래의 ‘금강경’ 4구게를 다시 한 번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佛告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기를, “인연 따라 화합된 모든 모습은 모두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습을 그 모습이 아닌 것으로 알면 바로 여래의 참모습 볼 수 있으리.”

사람들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저렇게 하면 더 좋았을 걸. 그리고 때로는 후회를 넘어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몸서리치며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를 못살게 굴기도 한다. 이러한 후회에 따른 후유증이 생기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는 자기 업(業)에 묶이어 지금보다 더 잘되기 위한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떤 기준을 만들어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못하게 된다는 예측을 미리 함으로서 스스로 좌절과 상실감을 가져오게 되는 상(相)이 또 생기게 된다. 바로 ‘금강경’에서 말한 상(相)이라는 모양에 마음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잘된다는 상(相), 잘 못된다는 상, 잘되어야 한다는 상, 자신이 세운 어떤 기준에 대한 상, 좋다는 상, 후회라는 상, 등등. 스스로 상을 만들어서 스스로 갇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상을 자신의 생각이 소유하기 때문이다. 바로 범소유상(凡所有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상이야 말로 모두 허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고 하셨다.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다. 이렇게 허망한 상에 머물지 않는 비상이 된다면 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는 의미이다.

가끔 생각지 못하게 돈이나 물건이 나가거나 잃을 때가 있다. 아까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소치다. 심한 경우에는 좌절을 넘어 타락을 하기도 한다. 바로 상에 마음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에 머물지 않는 마음을 갖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번에는 업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업 또한 스스로 만든 자업( 自業)의 그물인데도 말이다. 일단 자기 것, 내 것이라는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야 한다. 참으로 건방지고 아둔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본래 자기 것이란 없을 뿐더러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붙잡을수록 놓치게 된다. 따라서 나갈 것은 나가게 되어 있고, 들어올 것은 반드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인과 인연에 맡기고 마음이 머물지 않아야 걱정 근심의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 아상(我相)을 버려라. 들고 나는 것에 쿨 하게 마음 머물지 말라. 그리하여 영혼을 자유롭게 하라.

진우 스님 조계종 교육원장 sansng@hanmail.net

[1632호 / 2022년 5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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