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연안 터키 최대 茶 생산지
대부분 300평 안팎 소규모 재배

터키 최대 차 생산지 리제와 흑해.  ⓒGettyimagesBank
터키 최대 차 생산지 리제와 흑해.  ⓒGettyimagesBank

“터키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 여행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만큼 터키, 즉 아나톨리아 반도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 땅이었고 로마가 번성한 지역이라는 역사적 배경만으로도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터키를 수식하는 말도 많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땅, 동서 문명의 교차로, 문명의 용광로……. 하지만 나는 누가 터키에 대해 물으면 ‘차(茶)의 나라’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말 그대로 터키는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다. 터키 사람들이 마시는 ‘차이(çay)’는 녹차를 발효시킨 차의 한 종류다. 쉽게 터키식 홍차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맑은 적갈색으로 맛도 홍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보통 각설탕을 넣어 마신다. 중국의 차가 비단길을 따라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가서 차이가 됐으리라 짐작한다.

리제의 차 농장은 주로 상속되는데 대부분 1,000m²(3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다.
리제의 차 농장은 주로 상속되는데 대부분 1,000m²(3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다.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

통계에 따르면 터키 국민은 1인당 연평균 1,000잔의 차를 소비한다. 언뜻 계산해 보면 하루에 3잔 정도 마시는 셈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20~30잔까지 마신다. 영국·중국을 제치고 1인당 차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 이유다. 터키에 가면 어디서든 차 마시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택시기사들이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은 채 손에 차이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차이하네’ 같은 전문찻집은 늘 손님으로 붐빈다. 주말이면 차를 마시며 밤새워 놀기도 한다. “술도 없이 무슨 재미로 밤을 새우지?”라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차이만 있으면 충분하다.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다가 어느 작은 조선소에 구경 삼아 들른 적이 있는데, 무조건 끌어앉히더니 차이부터 내왔다. 낯선 사람에게 차이를 대접하는 것은 그들의 자부심이자 환대의 표현이다. 말리티아 살구마을의 어느 골짜기에 있는 동굴집에 찾아갔을 때도, 크루드지역 반(Van)의 한 농가를 방문했을 때도 차이부터 내왔다.

그렇게 차이를 얻어 마시고 다니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차이의 원료인 차는 대체 어디서 생산할까? 내가 다닌 지역에는 차밭이 거의 없었다. 온 나라에서 소비하는 차의 양으로 볼 때 엄청나게 많이 생산해야 할 텐데, 차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그 궁금증은 흑해 연안을 여행하면서 풀렸다.

흑해에서 가장 큰 도시 트라브존에서 머물다가 조지아(옛 그루지야)와 가까운 리제로 가는 길이었다. 트라브존에서 리제까지는 약 75km로 우리나라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7번 국도를 연상시키는 길이다. 길을 가는 내내 푸른 차밭이 펼쳐져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차밭이 끝없이 따라오고 왼쪽으로는 흑해의 검푸른 물이 출렁거리는 길을 한참 달렸다. 그리고 해안가의 작은 도시 리제(Rize)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차밭 속에 풍덩 빠진 기분이었다.

리제의 산비탈에 들어선 차밭과 집들. ⓒGettyimagesBank
리제의 산비탈에 들어선 차밭과 집들. ⓒGettyimagesBank

차의 주산지 리제

리제는 리제주의 주도(洲都)지만 거주 인구가 10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다. 화려해 보이지도 않고 자랑할 만한 관광지나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잘 정비된 거리와 집, 밝은 표정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여행자에게 상큼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도시야말로 차로 시작해서 차로 끝난다. 오로지 차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리제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 한 명은 “리제인에게 차는 삶의 근본”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리제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손꼽히는 차 생산지로, 터키 전체 차 생산량 중에 65%를 생산한다.

리제는 터키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인데도 기후가 무척 온화하다. 도착하는 순간 냉탕을 돌아다니다 느닷없이 온탕에 들어섰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 기후가 차의 주산지로 자리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차의 도시다운 차 문화였다. 거리 곳곳에 간이의자를 놓은 찻집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은 어김없이 ‘쪼그리고 앉아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차를 많이 생산하기도 하지만 많이 마시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 모습에 시내 관광보다는 차밭이 더 궁금해졌다. 리제 여행은 차밭에서 시작해서 차밭에서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해안까지 급하게 달려 내려온 산이 온통 차밭이었지만 막상 그곳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얼마나 높은지, ‘리제’라는 이름을 왜 ‘산기슭’을 뜻하는 그리스어 ‘리자(Riza)’에서 따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한참 올라간 뒤에야 차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리제에는 차밭도 많지만 차를 가공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곳도 많다. 올라가는 길에 낯선 건물이 있길래 들어가 봤더니 마침 차를 가공하는 회사였다. 홍보담당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야외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리제의 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곳은 차를 만드는 회사지만 연구소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차를 직접 재배하기도 하고 찻집도 운영했다.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위치 때문인지 차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홍보담당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부터 리제에서 차를 생산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리제가 차의 주산지가 되는 데는 터키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그루지야’였던 조지아에서 1937년부터 차나무 종자를 들여와 리제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조지아는 아래로 터키, 위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국가다. 터키, 특히 리제는 ‘한 동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자연스럽게 차가 유입된 배경일 것이다. 차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작은 해안도시였던 리제는 유명한 차 산지로 부상했고,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전국적으로 소비량도 급증했다.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터키 내 차 소비량은 무려 3배나 증가했다. 리제는 평지는 거의 없고 경사가 워낙 심해서 옥수수나 심을 정도로 척박한 곳이었다. 그래서 차를 심어본 것인데 궁합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연평균 1,788mm에 달하는 터키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도 차나무가 잘 자라는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리제에서 생산되는 차 중 55%는 국가에서 수매한다. 나머지는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판매한다. 리제를 비롯한 흑해 연안에서 차 농사를 짓는 사람은 20만 명이 조금 넘는데, 이들이 생산하는 양은 연간 23만t 정도다. 5~6월, 7~8월, 9~10월 등 1년에 세 차례 수확한다. 10월 이후 겨울에는 아무 일도 안 하고, 3월부터 다시 농사 준비를 한다. 차 농장은 주로 상속되는데 1,000m²(300평) 정도의 작은 규모가 대부분이다. 차밭 수입만으로 1년을 먹고 살 수 있는 농가는 얼마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 흑해에서 고기를 잡거나 공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계속 차이를 따라주는 홍보담당 직원에게 녹차도 맛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금방 가져왔다. 우리나라 녹차와는 맛이 무척 달랐다. 노란색을 품은 연녹색을 띠었는데 맛은 허브차에 가까웠다. 차 제조과정을 견학하고 싶었지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길래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80도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지에도 빈틈없이 차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이호준〉
80도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지에도 빈틈없이 차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이호준〉

80도 경사지에서 짓는 차농사

차밭을 보기 위해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말이 언덕이지 꽤 높은 산이었다. 그 산을 철저하게 벗겨내고 차나무를 심어놓았다. 옛날에는 옥수수를 심었던 곳이라고 했다. 언뜻 봐도 경사가 80도에 가까운 곳이 많았다. 과장 좀 보태서 차밭에서 일하다가 자칫 삐끗하면 한없이 굴러서 바닷가쯤 닿을 것 같았다. 그 가파른 언덕에 도로를 내고 집을 짓고 차를 재배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리제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산, 릴레이 하듯 끝없이 펼쳐진 파란 차밭, 그 사이사이에 낮은 자세로 엎드린 집, 그리고 저 멀리 암청색으로 빛나는 바다, 그 위를 하얀 포말을 남기며 질주하는 배. 이런 모습은 한 그림에 넣기에는 너무 벅찬 풍경이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상승 본능’이었다. 차밭이 높은 지역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주거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곳까지 올라가 있었다. 낮은 지대에도 땅이 없는 건 아닐 텐데, 왜 저렇게 꼭대기에 집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은 내내 풀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믿는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전쟁을 피해서? 경치를 즐기려고? 사실 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게 이유일 수도 있고 모든 게 본질에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곳 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의 높은 비탈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마치 큰 나무의 우듬지(꼭대기 줄기)에 집을 짓는 새와 같았다. 산꼭대기에는 집들이 촘촘히 박혀 있고, 또 그 집들이 있어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모스크(이슬람 사원)나 찻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산정은 오싹할 정도로 추웠다.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카페의 뒤쪽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사내가 쟁반에 차이를 들고 나왔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차이를 시킨 적이 없는데 왜?’ 그가 환하게 웃으며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는데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권했다. 동시에 카페 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조차 다정하게 끌어 안아주는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터키 사람들, 특히 리제 사람들에게 차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였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오래된 차나무를 베어서 태우는 할머니를 만났다. 좀 이른 것 같은데 벌써 봄 농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도 아니고 할머니 혼자 비탈진 차밭을 가꾸다니.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사는 우리나라의 농촌 사정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짠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식이 일곱인데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남편도 몸이 아파서 혼자 일을 한다고 한숨지었다. 그래도 차 농사를 멈출 수는 없다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차나무는 4년이 지나면 잘라줘야 한단다. 그래야 새순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니쾨이 마을에서 만난 한 남성이 찻잎을 따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방인을 망설임 없이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해주었다.
예니쾨이 마을에서 만난 한 남성이 찻잎을 따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방인을 망설임 없이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해주었다.

차 재배 농가의 환대

다음날 더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가 봤다. 어디를 가든 산꼭대기까지 차밭이 줄달음쳐 올라가는 풍경이 이어졌다. 한 동네를 지나다 조금 조악하게 보이는 구름다리를 만났다. 큰길과 마을을 잇는 다리였다. 언덕 꼭대기 차밭에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다가가 보니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나무 집을 철거 중이고, 부부로 보이는 노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메르하바!” 내 인사를 두 노인이 밝은 표정으로 받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동갑으로 올해 80세. 할머니는 55년 전에 아랫마을에서 이 언덕마을로 시집을 왔단다. 부부는 이곳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다. 평지를 두고 꼭대기까지 와서 사는 이유를 물었더니 “아래는 물이 넘치고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을 이름을 물었더니 ‘예니쾨이’라고 알려줬다. ‘예니’는 ‘새것’이라는 뜻이고, ‘쾨이’가 ‘마을’이니 우리 말로 하면 ‘새마을’이다.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 집에서 젊은 부인이 나오더니 손짓을 했다. 들어와서 차이를 마시라는 손짓이었다. 그럼 그렇지. 낯선 이방인을 모른 척 할 사람들이 아니다. 부인을 따라 응접실로 들어가니 할머니 몇 분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른 자리를 비켜줬다. 조금 있으니 이 집의 어른인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하얀 모자와 풍성한 수염, 그리고 세상의 풍진을 이겨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의연하고 온화한 표정이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송구스럽다.”고 인사를 하니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손님을 대접하는 건 신이 기뻐하시는 일이지요. 느닷없이 찾아오신 손님이야말로 정말 귀한 손님입니다.”

목소리에도 기품이 그득했다. 어른은 올해 86세. 하지만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해 보였다. 곧 찻상이 차려졌다. 과자와 빵을 곁들인 차이가 나왔다. 느닷없는 뜨내기에게 과분한 대접이었다. 차를 마신 뒤 일가족과 함께 나와 차밭을 둘러보았다. 노인의 아들이 찻잎 따는 시범을 보여줬다. 차를 수확하는 시기는 아니지만 손님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한 그들만의 대접이었다. 찻잎 따는 도구는 보기보다 효율적이었다. 큰 가위 옆에 바구니를 달아놓은 도구였는데 두 손으로 가위질을 하면 찻잎이 고스란히 바구니로 들어갔다. 국내에서도 그런 도구를 쓰는지 모르겠지만(손으로 따는 걸 주로 봤다.)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할 뿐이었다.

모든 가족이 나와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뒤로 한 채 언덕을 내려왔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뿌듯한 것은 봄볕이 좋아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차나무에 코를 대보니 알싸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차나무는 땅속에 부지런히 뿌리를 내려 물을 길어 올리고 새 찻잎 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향기 속에는 낯선 손님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를 내어주는 리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들어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느닷없이 들른 마을에서 담아가는 평화로운 기운이 좋은 차를 마셨을 때 오랫동안 입안에 맴도는 향기처럼 긴 여운으로 남았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서울신문에 ‘이호준의 시간여행’, 문화일보에 ‘나를 치유하는 여행’, 머니투데이에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등을 연재했으며 EBS 세계테마기행 터키 편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시집으로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가 있으며 기행산문집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문명의 고향 티그리스강을 걷다〉·〈나를 치유하는 여행〉·〈세상의 끝, 오로라〉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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