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앱 미터기 확산, “택배·퀵·배달 가능성 열려있다”

택시 기본요금 인상 소식이 들려오면 승객만큼이나 긴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택시 기사다. 부산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지난해 12월 부산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으로 500원 인상되면서 미터기 조정에 애를 먹었다”라며 “직접 기관 등으로 검정을 받으러 가는 게 번거로웠고, 검정 전에는 승객에게 일일이 500원씩 추가로 받아야 해 불편했다”라고 말했다. 택시 미터기가 여전히 아날로그로 남겨져 있어 발생한 일이다.

아날로그 택시 미터기

택시 미터기는 원래 ‘꺾는다’라는 표현과 붙어 다녔다. 1960년대 도입된 구식 미터기는 승객의 탑승과 함께 미터기에 달린 레버를 옆으로 꺾어 출발을 알렸다. 요금 책정 방식은 택시 바퀴의 회전수를 따랐다. 표준적 타이어 둘레를 기준으로 주행 거리를 잡아 요금을 표시했다. 이는 즉 타이어 둘레가 짧을수록 요금이 많이 책정된다는 의미다. 옛 사건·사고 기사에서 ‘일부러 헌 타이어 끼우는 택시’, ‘눈 오는 빙판길에도 체인을 안 끼우는 택시’ 등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1960년대 택시 미터기. ‘빈차’ 표시가 붙어있는 레버를 꺾으면 요금이 책정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전자 말’이 도입된다. 찰칵찰칵 숫자 버튼이 돌아가는 대신 ‘전기식 미터기’는 디지털 화면을 통해 달리는 말 아이콘과 요금 현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요금 책정 방식은 그대로다. 여전히 바퀴 회전수 기반이다. 대신 빈차, 주행, 할증 등 택시 운행에 필요한 버튼 추가 함께 최근에는 카드나 티머니 결제 기능이 추가되는 등 편의를 중심으로 진화해왔다.

택시 미터기는 제조사도 다양하다. 금호, 한국엠티에스, 광신GPS통신, 중앙산전 등 택시운수회사나 개인택시마다 서로 다른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택시 기본요금이 오르거나, 요금 책정 방식에 변화가 생기면 일일이 미터기 검정을 받으러 찾아가야 하는 이유다. 각 기기별 업데이트가 필수며, 택시마다 일일이 미터기를 떼어낸 후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실제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택시 기본요금 인상에 따른 미터기 조정 완료 기간을 1개월로 잡았으며, 지난 25일 강원도 택시 기본요금 인상 당시 춘천시에서는 택시 기사들이 기본 2시간 이상 대기한 후 조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알려졌다.

‘앱 미터기’ 도입 본격화

대안으로 등장한 ‘앱 미터기’는 스마트폰과 결제 단말기에 설치해서 사용할 수 있는 미터기다. 요금 책정은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차량 위치와 이동 거리, 운행 시간 등을 계산해 산출하는 방식이다. 기본요금이나 요금 책정에 변화가 생기면 앱 업데이트를 통해 일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편리하다. 또 유료도로 비용, 야간 할증, 시계외 할증 등을 자동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쟁을 줄일 수 있다.

티머니 앱 미터기를 도입한 모습. 전기식 미터기를 별도로 부착할 필요 없다.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는 택시 앱 미터기를 제도화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자동차 검사 시행요령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행정예고 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과 함께 앱 미터기가 제도권 내로 들어왔다. 현행법상 전기식 미터기만 허용하던 것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동안 앱 미터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샌드박스를 통해 임시허가 승인을 받아 운영해왔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와 티머니는 오는 7월을 목표로 서울시 전체의 택시 요금산정 방식을 앱 미터기로 전환하기 위해 택시 조합과 논의 중이다. 그동안 시범사업 형태로 7000대의 택시에만 적용한 앱 미터기를 서울 택시 7만1000여대 모두에 탑재하겠다는 계획이다. 설치비는 택시 1대당 3~4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모빌리티도 일찍이 앱 미터기를 도입했다. 카카오T블루는 2020년 7월 중형택시로는 최초로 앱 미터기를 현장 도입했다. 이를 바탕으로 카카오T 앱과 연동하여 탄력요금제, 사전확정요금제 등 다양한 요금제 적용에 활용했다.

또 27일 공개한 기아의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니로 플러스’는 택시 전용 모델을 출시하며 앱 미터기를 자체 기능으로 선보였다. 법인·개인 2가지 모델로 구성된 니로 플러스는 택시용 올인원 디스플레이에 앱 미터기, 빈차등·갓등·비상등 점멸 연동, 경찰서와 화장실 등 시설 안내 기능을 모아 제공한다. 목적형 모빌리티로 출시된 만큼 추가 기기 설치 없이 앱 미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아가 공개한 PBV ‘니로 플러스’ 택시 전용 모델은 앱 미터기를 내장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통한 융합 산업 기대한다”

앱 미터기는 투명한 요금 책정 방식과 함께 다양한 요금 체계를 손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택시가 다양한 여객·생활물류 서비스와 융합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모 법인택시회사 관계자는 “택시 합승이 부활했으나 특정 서비스 앱을 설치해야만 제공·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만약 앱 미터기를 기반으로 통합 서비스 운영이 가능하다면 보다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업계는 합승 외에 택배나 퀵, 배달 서비스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다. 현재 택시의 배달·배송 서비스 진출은 국토부 등의 반대로 불가능하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노선 사업자’인 고속버스 등과 달리 ‘구역 사업자’인 택시는 소화물을 나를 수 있다 없다 판단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딜리버리티’가 택시 소화물 배송 서비스를 출시했을 때 서울 내 2000여명의 택시 기사가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규제 통과가 여의치 않은 이유다.

관련해 모 택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암암리에 택시 배송 서비스는 이뤄지고 있다. 이를 앱 미터기를 기반으로 투명화하면 어떨까 한다. 운행 현황, 요금 책정, 정산, 세금 납부 모두 투명하게 관리하면서 이용객들에게도 효용을 줄 수 있다면 정식 서비스화 가능성은 커질 것으로 본다. 최근 택시 기사 수가 꾸준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가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꼭 마련해줘야 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미 카카오T 앱을 통해 택배, 퀵서비스 등 각종 생활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앱 미터기를 기반으로 한다면 관련 서비스를 택시와도 충분히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서울시는 티머니의 1대 주주로서 최근 앱 미터기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동시에 자체 ‘공동배송센터’를 구축해 배송난지역 등 도심 물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때 택시는 추가적인 차량·인력 충원 없이 관련 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미터기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짐으로써 택시 업계의 생활물류산업 진출 가능성도 커지는 모습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신승윤 기자> yoo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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