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3.25. (월)

내국세

AI·빅데이터로 국세행정 효율 획기적 개선됐지만…탈(脫)세무대리인화 가속

국세청이 디지털에 기반한 납세환경 구축에 박차를 가하면서 납세자의 신고납부 편의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납세자의 탈(脫)세무대리인화가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납세자들이 어려워하는 주요 세금을 대신 신고해 주고 세법조항을 쉽게 해석해 줄 뿐만 아니라 성실납세를 유도하는 매개체로서 세무사와 회계사가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국세행정이 납세자와 직·간접 접촉을 늘리고 납세자의 세무사항 신고에 직접 개입을 늘림에 따라 ‘납세자 호민관’으로 불리던 세무대리인의 설자리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 등 첨단기술이다.

 

 

국세청 올해도 '디지털 중심 국세행정 재설계' 강력 추진

 

김대지 국세청장은 올해 1월 개최한 2022년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국세행정 과제 첫 머리로 “올해도 핵심은 결국 디지털 중심 (국세행정)재설계”라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지난해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납세서비스를 디지털 기반으로 재설계해 세금신고·납부의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킨 점”이라고 짚은 뒤 “홈택스 2.0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해 납세자가 세무서를 방문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세금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납세자가 세금신고를 위해 세무서를 방문하지 않는다는 말은 중간단계인 세무대리인의 조력 없이도 국세청의 홈택스·손택스 등 온라인 신고지원체계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납세자가 중심이 되는 서비스세정 고도화’를 올해 가장 핵심적인 추진과제로 선정했으며, “성실신고 지원 확대, 디지털 기반 납세환경 구축으로 보다 수준 높은 납세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신고 때마다 사전 신고안내자료 제공 늘려 신고오류 사전 차단

납세자⋅세무대리인, 신고반영사항 명쾌해졌지만 심적 부담 점점 커져

 

국세청의 납세서비스 고도화는 ‘신고전(前) 안내 강화’와 ‘신고자동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 세목의 신고를 하기 전에 다양한 안내자료를 납세자에게 제공해 잘못 신고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하는 한편, 다양한 안내자료를 통해 성실신고 유도를 꾀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월 진행된 2021년 제2기 부가세 확정신고 때에는 100만명의 사업자에게 개별도움자료를 제공했다. 개별도움자료는 홈택스 신고도움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데 빅데이터, 외부기관자료, 적격증빙 등을 분석해 업종별 특성을 담은 안내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달 진행된 12월말 결산법인의 법인세 신고 때에도 법인사업자의 성실신고를 지원하기 위해 홈택스 신고도움서비스를 통해 납세자별 특성에 맞은 다양한 안내자료를 제공했으며, 법인 28만여곳에는 빅데이터⋅과세인프라를 활용해 정밀 분석한 유형별⋅업종별 개별분석자료를 제공했다.

 

종합소득세 신고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업자에게 수입금액, 과거 신고상황 분석자료 등을 제공하고, 취약 분야 사업자는 별도로 분석한 자료를 제공한다.

 

국세청은 성실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신고안내자료를 제공한다고 표면상 밝히고 있지만, 납세자와 세무대리인 입장에서는 신고 때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업자 본인에 대해 세세하게 국세청이 분석해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고안내자료가 납세자와 세무대리인의 신고성실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국세청이 납세자의 신고내용과 방향에 대해 깊숙이 개입하고 그 방향대로 신고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으로, 매년 각 신고 때마다 사전신고안내 인원을 늘리고 있다.

 

모두채움⋅ARS신고, 내비게이션 서비스 등 '신고자동화' 박차

납세자⋅세무대리인 신고납부 편의성 획기적 개선…'나 홀로 신고' 머지않아

징세비 감소 등 국세행정 효율성 높아지고 납세협력비용도 절감

 

‘신고자동화’ 추진은 AI⋅빅데이터와 맞물려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납세자나 세무대리인이 작성해야 하는 신고서를 국세청이 홈택스를 통해 대신 작성(모두채움)해 주거나, 일부 항목을 작성해 주고 나머지 항목은 납세자가 채우는(미리채움)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ARS 간편신고서비스도 납세자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고안내자료 확인부터 신고서 작성, 세금납부까지 신고납부 전 단계를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따라가면 신고를 마칠 수 있는 서비스까지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부가세 신고의 경우 모든 업종의 일반사업자가 모바일로 신고를 할 수 있고, 부동산 임대업자와 매출⋅매입이 없는 무실적 사업자는 ARS로 신고를 마칠 수 있다. 2021년 2기 부가세 신고 때는 홈택스에서 신고서 주요 항목을 바로 조회해 채울 수 있는 미리채움 서비스를 결제대행자료(오픈마켓 판매자료)까지 추가해 제공했다.

 

소득세 신고의 경우, 신고안내를 받은 납세자들 중 상당수가 국세청이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모두채움신고서를 받고 있다.

 

간편장부대상자 가운데 장부 없이 신고하는 경우 단순경비율을 적용받는 사업자들과 주택임대사업자 중 분리과세를 선택한 사업자 등은 모두채움신고서로 간단하게 신고를 마칠 수 있다. 특히 안내문 조회부터 납부까지 단계를 맞춤형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인기다.

 

법인세 신고와 관련해서는 매출액이 없고 세무조정을 할 사항이 없는 법인에 대해 간편전자신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납세자가 스스로 신고오류 사항을 자동 검증할 수 있는 오류검증서비스도 제공한다.

 

부가세,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 세목의 신고와 관련해 납세자와 세무대리인들의 손이 덜 가게, 온라인 상에서 간편하게 신고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국세청이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미리채움서비스, 모두채움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세청 디지털 세정의 양축인 홈택스와 손택스(모바일 홈택스)의 발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국세청은 지능형 서비스로 홈택스의 발전적 진화를 추진하는 등 ‘홈택스 2.0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납세자가 신고에서 납부까지 간편하게 마칠 수 있는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신청·자료제출 분야까지 확대하고 음성안내 서비스도 추가했다.

 

특히 AI·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납세자의 신고·납부 전 과정을 자동화하기 위한 AI 세금비서(가칭)를 일부 세목에 시범 도입하고 단계적으로 전 세목으로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언제·어디서나 이용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지닌 손택스도 홈택스 수준으로까지 서비스를 확충시켜 나가고 있으며, 별도 웹 설치 없이도 이용이 가능한 손택스 웹서비스가 개시되고 있다.

 

또한 사업자등록·사실증명 발급 등 민원 접수·처리 진행상황과 환급금 통지서 반송사실, 고지서 발송 등을 모바일로 납세자에게 실시간 안내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학원 강사와 배달라이더 등 특수형태 고용근로자들의 세금환급을 국세청이 자동으로 계산해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외에도 근로자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연말정산 신고는 국세청이 각종 공제자료를 직접 회사에 제공하고, 근로자는 이를 확인만 하면 되는 정도로 간소화됐다.

 

국세행정의 이같은 진화는 납세자의 신고납부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납세자의 납세협력비용을 줄이는데 한몫 하고 있다.

 

환급대행⋅비교견적 플랫폼 등장으로 세무환경 급변

금융권의 무료 세금신고서비스도 급격히 증가…납세자 각광

 

국세청 외부의 IT환경 변화도 납세자의 신고납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천만명 이상이 가입한 세금환급 대행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세무 비교 견적 플랫폼도 등장했다. 주요 고객을 대상으로 종합소득 및 금융소득, 주식 양도소득을 자체에서 신고해 주는 금융기관의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IT기술 발달에 따른 국세청의 신고자동화, 과세관청의 정밀한 신고안내, 신고납부 지원 플랫폼, 금융기관 세무서비스 등 세무환경이 급변하면서 최일선에서 세수조달과 성실신고 유도라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는 세무대리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세무사⋅회계사 등 세무대리인들은 납세자들의 성실신고 유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세행정 고도화?…세무대리인들은 설 자리 점점 잃어

'세무사사무소 잡일 계속 증가' 노골적 불만

국세청의 과도한 납세정보 요구가 문제

"조세제도 간결하게 운용…납세협력비용 공제 늘려야"

 

최근 들어 세무사들의 불만 목소리가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각종 신고관련 간담회에서는 국세청이 빅데이터를 통해 다량의 과세자료를 수집하면서 정작 세무사에게는 데이터 제공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국세행정의 고도화 이면에는 세무대리인들의 세무부담 증가가 자리하고 있는데, 과세당국이 이를 외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에 따라 소득파악을 위해 지난해부터 지급명세서 매월 제출이 시행되면서 세무대리인들의 부담은 계속 늘어나는데 그에 따른 지원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대조적이다.

 

국세청의 징세행정이 점점 간소화⋅자동화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세무사사무소의 잡일(?)만 더욱 늘어날 뿐이라는 비난도 서슴없이 나온다.

 

국세청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무행정서비스를 선진화할수록 세무대리인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세무법인 소속 모 세무사는 “과세당국이 납세자 보다는 세무대리인을 통해 성실신고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더 효과적인데, 국세청은 세무대리인에게 의무부담만 더 지우고 신고납부 업무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어 세무대리인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납세자를 대변하는 한국납세자연합회장인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과세당국의 확대되는 납세서비스 지원에 앞서 조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홍 교수는 “세법을 너무 복잡하게 설계하고, 이 과정에서 납세자에게 과도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더 나아가 획득한 과세정보를 다시금 납세자에게 활용하고 있기에 납세자와 세무대리인 모두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세제도를 지금보다 더욱 간결하게 운용하되, 당장 개편이 어렵다면 납세자가 지불한 납세협력비용에 대해서는 감면·공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며, “세금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불한 납세협력비용에 대해 공제혜택을 늘리면 납세자와 세무대리인, 나아가 과세관청 또한 갈등의 소지가 줄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법과 세무행정을 복잡하게 설계한 후 납세자가 의무를 다하도록 세무지원을 하는 것은 후행적인 방식이라는 지적과 함께, 조세제도 자체를 간결하게 재편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납세자와 세무대리인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납세협력비용 공제 혜택을 늘릴 것을 주문한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