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선 읽기록
▲읽기록(서자선 | 지우 | 208쪽 | 12,000원).
읽기:록

서자선 | 지우 | 208쪽 | 12,000원

저자를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페북 인연으로는 7년이 된 것 같다. 페북 밖에서도 두 번 만나서 교제를 나눈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온라인으로만 연결됐지, 서로의 마음과 삶을 깊이 나누는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저자와 친한 분들도 여럿 있기에, 굳이 나까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었고, 만남과 관계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저자는 항상 책의 선생님이셨고 어른이셨다. 비록 내가 목사지만 책과 읽기와 나눔과 배려에 있어서는 훨씬 크신 분이셨고, 여러 삶의 과정을 헤치고 이겨 오신 선배님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자를 보면서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집안 돌봄과 살림과 교회와 구역과 자녀 교육은 뒷전이고, 오직 자신의 읽기에만 골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읽기만 파고드니, 이게 자신을 떠벌리고 과시하는 것이라 오해할 수도 있다.

역시 책을 보니 저자의 그러한 아픈 사연과 오해들도 적혀 있었다. 필자도 전에 그런 내용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충분히 저자의 독서력을 보면 제3자들은 쉽게 그렇게 평가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누가 함부로 그러한 독서와 내공과 헌신과 노력과 눈물과 기도와 삶의 과정과 결과를 판단할 수 있으랴. 책을 보니 하나님께서 저자를 어떻게 키우셨고 인도하셨는지 그녀의 스토리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독서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지적 만족과 성장을 위해, 삶의 어려움과 역경을 회피하기 위해, 시간을 때우거나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 과제를 위해 등.

저자는 자신의 신앙의 방황을 끝내고, 더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갈망으로부터 독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목사님을 통해 저자와 책을 소개받아 신앙의 부흥을 경험하고, 교리를 접하며 신앙의 체계를 세우고 이어 독서의 세계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게 된다.

저자의 읽기가 복되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읽기의 시간으로 독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으로 확장되고 전도의 도구가 되며 하나님을 높이는 자리까지 간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도까지 가는 읽기의 삶이 감동이다. 저자는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이 읽고 성장하며 하나님 앞에 모두 온전해져 가기를 진실로 소망한다.

서자선 읽기록
▲자신의 서재에서 강의 영상을 촬영중인 저자 서자선 집사. ⓒ지우
책의 제목은 ‘읽기:록’이다. 그녀의 읽기는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성숙해 가는 읽기이고,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한 읽기이며 세상을 하나님의 목적대로 회복시키기 위한 읽기이다.

저자는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강요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책을 읽은 감동을 따라 나누고 서로 복된 존재가 되기 위한 모임이다. 책을 도구로 하여 여러 기쁨과 슬픔과 행복과 감동을 이렇게 나누는 삶이 참된 공동체 같다.

책읽기에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리지 않고 우스워보이며, 책을 멀리 하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읽기는 설교를 더 소중히 여기고 목사를 존귀하게 대하며, 구역의 모임과 성도를 나보다 더 낫게 여긴다.

읽기를 통해 교만해지고 우쭐대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성도를 위해 더 낮아지고 사랑하는 저자의 모습은 우리의 읽기를 성찰하게 만든다. 나의 읽기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인지 아닌지는, 그것의 열매를 보면 알 것이다.

이 세상은 매우 바쁘고 감각적이고 쾌락적이다. 야근을 당연히 여기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세상의 가치관이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과 시련이 언제나 현대인을 장악하고 철장으로 묶어놓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그 정신을 새겨 그 가치관대로 살아야 성공할 것 같다. 세상의 읽기가 세속의 기록으로 남겨지는 곳에서, 세상의 읽기를 거룩의 기록으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

저자 또한 매우 바쁘고 분주한 삶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읽고 고치고 함께 성장하고 섬기는 삶을 위해 불필요한 시간을 제거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그러한 노력과 수정과 설정이 있었기에 자신을 위한 시간낭비 없이 타인을 위해 거룩한 낭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읽기와 기록은 그냥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향한 엄격한 잣대와 기준으로 뜯어 고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참 바쁘다. 핑계 대는 것이 자연스럽고 수많은 변명과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를 계속해서 세상의 생각대로 읽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얼마나 무엇을 읽고 해석해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고 있는가. 오늘도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내 생각과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핑계를 대는 부끄러움 보다 읽기를 통해 다가오는 부끄러움이 더 많아야 꿈틀거리고 성장할 수 있다.

끝으로 필자가 볼 때, 인간은 자기를 고치고 변화시켜 가는 독서를 힘겨워하고 멀리 한다. 인간의 죄성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읽기 거부’에 있지 않을까.

6천 원짜리 커피를 매일 한 잔씩 아무 가책 없이 사서 마실 수는 있어도, 한 달에 한 권씩 1만 5천 원짜리 책은 마음에 무슨 가책인지 선뜻 사지를 못한다. 우리는 무엇을 읽을 때 생각하고 자극받는데, 무엇을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그 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필자는 저자의 읽기록을 추천한다. 저자의 독서와 삶의 과정이 우리에게 충분한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배와 성경 읽기라는 곳까지 본질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웃 사랑과 기도까지 섬김의 향기가 퍼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읽기를 통해 자신을 뽐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이웃에게 연결하는 자가 된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살기 위함이고 살리기 위함이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하는 시작점이고 복된 소식이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부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