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아트 러버' 7인의 인생 아트북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가장 손쉽게 소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트북을 사는 행위가 아닐까. 7명의 아트 러버가 자신의 인생 아트북을 이야기한다.

프로필 by BAZAAR 2022.03.10
 
이에스더  Lee Esther
공간과 이미지 안에서 과감하고 제한된 컬러의 사용과 반복적 형태에 관심이 있는 프리랜스 디자이너. 디자인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시각예술의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담하고 강렬한 원색의 마찰에서 시각적 환상을 꿈꾸며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은 국제한국어재단과 함께 해외 한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당신의 아트북에 대해 소개해달라.
브루노 무나리의 <읽을 수 없는 책(Libro Illeggibile, 1949-1995)> 시리즈 중 하나로, 표지에 쓰인 저자의 이름과 제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흰색 외에 6장의 색지로만 구성되어 있다. 브루노 무나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어떤 언어도 포함하지 않는 모든 시각적 의사소통 옵션과 인쇄 기술을 시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1907년생인 작가의 세련된 감각과 기발한 시도에 늘 감탄하게 된다. 그의 작업과 책 곳곳에는 유연함, 위트, 따스함, 권위를 강요하지 않으며 무겁지 않은 유쾌함이 스며들어 있다. <쓸모없는 기계(Macchina Inutile)> <읽을 수 없는 책> 등 그의 작품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무나리의 작업들은 때때로 농담처럼 다가와 미소 짓게 한다.
이 아트북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요소는 무엇인가?
브루노 무나리의 <읽을 수 없는 책>은 내지의 흰색을 제외한 6가지 색지(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하늘색, 분홍색, 주홍색)로 구성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수많은 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무나리의 재치와 명민함 덕분이다. 색지는 6장뿐이지만 여러 가지 방식과 형태로 절개해 책을 넘기다 보면 마치 움직이는 순수예술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보고 있는 듯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극을 받게 된다. 모서리 혹은 화면을 과감하게 가로지르는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커팅해 색지가 한 페이지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아름답게 보이도록 구성했다. ‘읽는다’는 책의 기본 기능을 제거한 채 빈 공간을 무한히 변화하는 색 조각으로 채운 작가의 재치 덕분에 우리는 단순히 읽는 것 이상의 상상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왜 당신의 ‘인생 아트북’이 되었나?
2006년부터 코라이니(Corraini)사와의 인연으로 엽서 제작, 워크숍, 전시 참여, 웹 로고 작업 등 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코라이니사가 발간하는 잡지 <Un Sedicesimo>의 첫 번째 이슈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간 발간한 잡지를 아카이빙한 웹사이트 오픈 기념으로 내게 깜짝 선물을 보내왔다. 그때 받았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아트북이다. 브루노 무나리의 책들을 다 사랑하지만 이 아트북을 딱히 구매할 기회가 없었는데, 무나리의 책 출판을 담당한 코라이니사를 통해 선물받아 더 의미가 깊다.
평소 집 어디에 보관해두고 있나?
식사하는 테이블 뒤쪽 책장 앞 무나리의 다른 책들 앞에 세워놓는다. 마치 작은 조각작품 같아 언제 보아도 즐겁다.
인생 아트북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
오래도록 열정을 잃지 않고 작업을 하는 지속성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의 책과 삶, 작품을 통틀어 곳곳에서 발견되는 천성적 따스함과 장난스러움, 나이가 들어도 잃지 않는 천진난만함을 닮고 싶다.
아트북을 구매하는 기준은?
색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색상의 조화와 색들이 부딪힐 때 나오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아트북에 마음이 끌린다.
앞으로의 작업 목표는?
작업이 종이 인쇄나 이미지에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공간과 오브제 안에서 보여질 때 흥미롭게 느낀다. 무나리가 그랬듯 가능하면 오래도록, 가능하면 많은 작업을, 가능하면 유쾌하게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변치 않는 열정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늘 질문하며 어린아이 같은 신선한 시각을 가진 무나리의 유머와 유연함도 배우고 싶다.
 
김미재  Kim Mi Jae
누군가에게 은은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좋은 공간과 디자인을 통해 조금 더 아름다운 삶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꿈이었다. 아트먼트뎁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며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브랜드나 공간의 A-Z를 아우르는 아트 디렉팅을 메인 업무로 한국 로컬 티를 소개하는 티 컬렉티브를 총괄하고 있다. 매일 차를 마시고 바쁘게 일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마티스의 타이포그래피가 담긴 이 책은 어떻게 당신의 ‘인생 아트북’이 되었나?
이 책은 1947년에 발행됐다. 작가의 생각을 수반하는 다채로운 낱장 용지 콜라주로 구성된 한정판 아트북으로 마티스 특유의 손글씨로 그의 철학과 감정을 담은 것이다. 파리 출장 중 퐁피두센터의 서점에서 샀다. 워낙 마티스의 팬이기도 해 웬만한 페인팅 서적은 갖고 있지만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이 아트북은 정말 특별했다. 거대한 사이즈, 모두 낱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의 형태 등 모든 면이 흥분되게 좋았다.
인생 아트북의 감상 포인트는?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이 아직도 성에 안 차 중요한 로고나 심벌 디자인은 항상 손으로 자연스러운 선과 텍스처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책에 실린 마티스의 손글씨는 그동안 봐온 어떤 글씨보다도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특별하다.
평소 어디에 보관해두고 있나
사무실 서재 중 가장 눈에 잘 띄는 칸에 아트피스처럼 보이게 두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디자인팀 직원들이 자리 뒤편 창가에 늘 두고 있더라.(웃음)
나의 인생 아트북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책 네이밍처럼 ‘JAZZ’! 재즈와 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집과 사무실 곳곳에 프레임해 붙여놓기도 했다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곳곳에 붙였다. 예상컨대 마티스는 많은 것을 계획하고 써 내려갔다기보다는 재즈처럼 물 흐르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글씨체의 힘이 실린 정도나 미세한 떨림, 연결선 등에서 감정이 느껴질 정도니까.
아트북을 활용해 아티스틱한 집을 만드는 방법은?
나의 취향에 맞다면 작은 그림 또는 여러 장의 페이지도 과감히 뜯어 곱게 재단한 다음 너무 부담되지 않는 프레임을 구입해 보고 싶은 구도의 벽이나 테이블, 창가에 두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아트워크를 찾아보는 과정 자체를 즐겨보길 권한다.
인생 아트북이 나에게 주는 영감은?
모든 내용을 번역해보진 못했지만 마티스의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천재 화가인 그도 고뇌했고 불만도 있었고 소리 내서 말하고도 싶었던 것이다. 그런 인간적인 부분을 이렇게 아름다운 서체와 형태로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감이 된다.
주로 어떤 아트북들을 소장하고 있나?
가장 그 작가다운 책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소개글이나 평론이 빼곡한 도록보다는 작품이 정직하게 담긴 아트북에 매력을 느낀다.
 
임지선 Lim Ji Sun
현대미술 큐레이터이자 브랜드 디렉터로 예술, 브랜드, 사람을 엮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시기획 외에도 현대미술과 브랜드를 연결지어 주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F&B, 코스메틱, 스테이, 테마파크 같은 유형의 브랜드부터 퍼스널 브랜딩 같은 무형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까지 텍스트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왜 당신의 ‘인생 아트북’이 되었나?
20대 후반 뉴욕 여행을 갔을 때 이사무 노구치가 참여한 전시를 하고 있던 모마 아트숍에 들러 샀다. 여행 중 무거운 책을 구매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때는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 디자이너로만 널리 알려져 있던 노구치의 근원이자 영감의 원천을 잘 훑어볼 수 있는 계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름 동안의 뉴욕 여행을 이 책과 같이 하게 되었고 벌써 표지가 해질 정도로 읽고 들춰보는 책이 되었다.
이사무 노구치와 나의 연결 고리는?
이사무 노구치는 누군가에겐 가구 디자이너로, 누군가에겐 조각가로, 또 누군가에겐 건축가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작가와 일본인 시인 사이에서 태어난 노구치는 나무, 돌, 금속을 매개로 유기체적 형태를 탐구한다. 프랑스에 건너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조수로 일하며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형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물리적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주어진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고민하고 몰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아름답다’의 정의를 매번 새롭게 내릴 뿐이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 실재하는 형태를 들여다본다면 노구치의 조각과 같을 거란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아트북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요소는?
‘A Sculptor's World’라는 제목처럼 조각가로서의 노구치를 조명하기 위해 만든 책이니만큼 표지부터 조형적 요소가 돋보인다. 또한 그의 작업과 조각에 대한 시각적 자료 역시 풍부하다. 브랑쿠시의 조수로 일했던 만큼 그의 조각은 아름답고도 서정적이다. 일본의 젠(Zen) 요소까지 덧붙여져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순함과 절제미, 슬픈 아름다움이 묻어나온다. 그의 아틀리에를 매번 방문하는 기분으로 책을 열어보곤 한다.
아직 아트북의 매력을 모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아트북은 가격도 비싸고 무겁다. E북을 읽는 세대에게 아트북을 본다는 건 효율적이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장 한 장 눌러 담은 예술적 가치, 실제를 옮겨 담으려는 그 섬세한 노력이 느껴진다. 텍스트와 이미지 모두 우리를 만족시킨다.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작가의 아트북을 한 권쯤 소장하길 권한다. 예술가의 눈과 입과 손을 빌려와 내 책장에 두는 기분이 들 것이다.
 
주용균  Zoo Yong Gyun
서울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 수많은 패션 매거진과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오며 매 순간 작품을 탄생시킨다. 손때 묻은 오래된 아트북부터 집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호크니의 ‘빅 북’까지 곳곳에 놓아둔 아트북에서 인생의 행복을 느낀다.
 
이 책은 왜 당신의 ‘인생 아트북’이 되었나?
사라 문의 작품집으로 태어나 처음 구입한 아트북이다. 이후 지금까지 구입한 아트북들을 보면 책을 살 당시 나의 취향과 관심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20년 전 신입생 시절의 나는 사라 문의 사진 같은 작품들을 좋아했다. 그 기억이 나 지금 열어봐도 좋고 그때를 떠올릴 수 있어 반갑다.
수많은 아트북을 소장하고 있다. 이 아트북에 특히 마음이 가는 요소는 무엇인가?
역시 ‘처음’이라는 것. 처음 내가 산 아트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값지다. 처음이라는 건 항상 있고 처음 했던 것들은 그 가치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되기도 한다. 지금과는 다른 열정과 순수함이 있던 시절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인생 아트북의 감상 포인트는?
프랑스 파리를 좋아한다. 프랑스적인 몽롱함과 그 안의 모호함이 특히 매력적이다.
어떨 때 꺼내 보나?
집 계단 쪽 책장에 아트북만 모아 놓은 구역이 있다. 사실 이 책은 언제 꺼내본 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다른 책들 사이에 고이 묻혀 있다가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고맙다.(웃음)
인생 아트북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사실 아트북이나 작가가 내 삶에 드라마틱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아트북은 사서 몇 번 보고 버리는 것이 아닌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집에 두고 한 번씩 꺼내 봐도 좋고 짐 정리를 하더라도 버리지 않는 물건에 속한다.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주로 어떤 아트북을 소장하고 있나?
사진집, 회화집, 건축 인테리어 등 종류는 다양하다. 아무래도 사진가이다 보니 사진집이 특히 많다.
아트북을 구매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눈으로 봤지만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닌, 눈으로 봤지만 또 보고 싶을 때 꺼내 볼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아트북을 구매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담은 아트북은 세상에 몇 안 되는 가성비 최고의 물건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아트북을 만든다면?
故 전몽각 선생님의 사진집 <윤미네 집>을 무척 좋아한다.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딸의 모습을 26년 동안 담은 것이다. 언젠가 <서진이네 집>을 만들고 싶다. 출판은 60년 뒤가 될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이선율  Yie Sun Yuul
아티스틱한 구두를 만들어내는 슈즈 디자이너로 율이에(Yuul Yie)를 이끌고 있다. 최근 2022 A/W 시즌 준비 막바지라 캠페인 룩북 촬영을 마무리했고 다가올 파리 패션위크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거의 2년 만에 떠나는 파리 출장이다.
 
‘인생 아트북’은 어디서 구입했나?
뉴욕에 가면 항상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는데 그곳에 있는 북스토어에서 구입했다. 해외에서는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빈티지 서점에 들러 아트북을 구매하기도 한다. 가지고 싶으면 사는 편이다.
이 책은 왜 당신의 아트북이 되었나?
슈즈나 백을 다루는 아트북이 보이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특히 빈티지나 오래된 제품을 아카이빙한 아트북 중 소장하고 싶은 책들은 꼭 구입한다. 제품을 전부 구하거나 실제로 볼 수가 없으니 책으로 컬렉팅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도 빈티지 백을 수집하는 느낌으로 구매했다. 동시대 패션 업계의 디자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흥이 생기기 때문에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가질 수 없고 실제 볼 수 없는 예전 제품들을 사진으로나마 감상하는 재미와 감흥이 있다.
인생 아트북은 평소 어디에 보관해두고 있나?
집 작업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리프레시하고 싶거나 내가 진짜 좋아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리마인드하고 싶을 때 본다.
인생 아트북은 일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과거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생각들을 좇는 혼자만의 재미가 나에게 영감을 준다.
율이에 론칭 10주년을 맞아 리졸리 출판사와 함께 아트북을 선보인 적 있다.
리졸리 북 관계자가 밀라노에 있는 리나센테 백화점에서 율이에의 슈즈를 보고 매우 아름다운 조각품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유럽 디자이너의 제품일 거라 여겼는데 이후 다른 해외 사이트에서도 율이에 제품을 많이 보게 되면서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리졸리 팀에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예상과 달리 아시아, 한국 디자이너의 브랜드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호기심을 느꼈다고 하더라. 이후 오랫동안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리서치하고 나에 대한 인터뷰를 읽으며 스터디를 한 이후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고 싶어 아트북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슈즈 디자이너로 일하며 수많은 조형물에 영감을 받을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나의 ‘인생 작품’은?
오랜 기간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다. 게롤트 밀러(Gerold Miller)의 작품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다음 차례 소장하고 싶은 0순위 작가다.
나의 로망을 한껏 담아 만들고 싶은 아트북은?
율이에 20주년에 맞춰 더 감도 있는 브랜드 아트북을 만들고 싶다.
 
정예슬  Jung Ye Seul
O!Oi COLLECTION, 5252 by oioi, APOC 등을 이끌고 있는 파인드폼의 대표로 지난해에는 여성 컨템퍼러리 브랜드 솔티페블(Salty Pebble)을 론칭했다. 조지 몰튼 클락, 테일러 안톤 화이트, 다니엘 아샴, 장콸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영 컬렉터이기도 하다.
 
당신의 ‘인생 아트북’을 소개해 달라.
<HERMÈS POP-UP>은 2018년 테마였던 ‘Let’s Play’를 기념해 실크 스카프 패턴을 팝업 형태로 구현한 아트북이다. 에르메스의 무드와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으면서 페이지마다 입체적인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 기발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소장하고 있는 20여 권의 아트북 중에서 유일하게 조형미가 돋보이는 책으로 파리의 중고 서점에서 구매했다.
아트북은 주로 어떨 때 꺼내 보나?
집에서 와인 한 잔 마시며 볼 때가 많다. 책을 세워 놓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눕혀서 아티스틱하게 꾸밀 수 있는 책장을 가지고 있다. 책장을 채울 겸 구매한 책도 있다. 책 배치를 입체적으로 해두는 편이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아트북은?
여행이나 패션, 가구를 테마로 한 아트북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빈티지 서적도 많이 보는 편. 특히 1970년대, 80년대 패션을 볼 수 있는 아트북을 좋아한다.
보물 같은 아트북을 발견할 수 있는 서점을 추천해달라.
베를린 ‘부 스토어(VOO Store)’.
최근 마음을 빼앗긴 작품은?
얼마 전 지갤러리에 갔다 우국원 작가의 <I Hate Morning> 시리즈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색감이나 터치, 질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컬렉팅한 작품을 따로 두는 공간도 있나?
아직은 개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림을 바꾸게 되면 몇 개는 사무실에 가져다 둘 생각이다. 올해 안에 크기가 큰 그림을 집에 들일 계획이 있다. 그때 집 안의 그림 배치를 전체적으로 바꿔볼까 생각하고 있다.
눈여겨보고 있는 작품이 있나?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 젊은 작가, 신진 작가 위주였는데 이제는 연륜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보고 있다. 특히 영국 작가 캐서린 보나드의 작품을 주시하고 있다. 구하기가 어려워 컬렉팅 가능한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에디 마르티네즈의 작품도 언젠가 꼭 소장하고 싶다.
로망을 가득 담아 아트북을 만든다면?
오아이오아이가 대중을 바라보는 브랜드이다 보니 약간은 데일리한 룩들도 있다. 스타일링이나 콘셉트를 독특하게 잡고 촬영해 <토일렛 페이퍼> 같은 팝한 느낌의 아트북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다.
 
이현화  Lee Hyun Hwa
오랫동안 출판 편집자로 일하다 1936년 지어진 오래된 한옥을 만나 그곳에 출판사를 차렸다. 주소에서 이름을 딴 ‘혜화1117’의 대표로 인문 교양, 문화 예술 분야의 책을 펴내고 있다.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을 썼다.
 
당신의 ‘인생 아트북’을 소개해 달라.
월북작가 이쾌대 화가의 생애와 예술을 담은 책이다. 2016년 광복 70주년 기념전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만들었다. 두 권은 각각 정본과 압축본이라고 부른다. 이쾌대라는 화가에 대한 정보를 잘 담은 정본을 만들면서 작품을 새롭게 보여줄 방법을 찾다 압축본도 만들었다. 일반 단행본의 틀을 넘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인생 아트북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완성 전까지는 압축본의 형태를 떠올리지 못해 줄곧 ‘아코디언 북’이라고 불렀다.
직접 만든 아트북이라 더 각별할 테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더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의 포인트는 의외성이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도 그림을 펼쳐가며 볼 수 있다는 뜻밖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물성의 재미를 극대화하도록 고민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성 과정이 특히 마음에 남아있다.
주로 어떨 때 꺼내 보나?
새 책에서 실험적인 부분을 고민할 때 가끔 꺼내어 살핀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니 아트‘북’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예전에는 아름답거나 독특한 아트북을 보면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요즘은 ‘시대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책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연대감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아트북은 내게 책이라는 물성의 의미를 귀하게 여기는 존재들을 확인하게 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옥에서의 삶 속 예술은 어떤 영감을 주나?
삶에서 효율과 편리함이 최고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편하지만 그로 인해 누리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생각은 책을 만들 때도 영향을 미친다. 편리함을 뛰어넘어 책을 통한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당신에게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 다녀왔다. 김창열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점에 계신 분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하인두, 김창열, 박서보 세 분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았다. 예전에 하인두 작가에 관한 책을 만들 때 본 적 있는 사진이었다. 하인두 선생은 오래전, 김창열 선생은 얼마 전 돌아가셨다. 박서보 선생은 여전히 맹활약 중이다. 오늘의 한국 현대미술의 씨앗이자 출발점인 세 분이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니 공간 자체가 어쩐지 엄숙하게 느껴졌고 전시장 작품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제주에 간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 프리랜스 에디터 김희성은 L.A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다양한 체형의 여성들의 몸이 그려진 아트북을 구매했다. 인생에서 처음 구입한 아트북으로, 손 닿는 곳에 두고 ‘아름다움’의 실체가 궁금할 때마다 펼쳐 본다.
 

Credit

  • 김희성
  • 사진이현석
  • 디지털 디자인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