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 · 장기투자 철학으로
M&A 예견한 듯 미리 주식 매입 
누군가 손해 볼 때 재조명받아

워런 버핏이 돌아왔다. 언제나 누군가 손해를 볼 때면, 워런 버핏은 재조명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세계 IT업계 최대 규모의 M&A를 예견이라도 한 듯, 딜 몇 달 전에 지분을 매입하면서 화제가 됐다. 셰일오일 회사 주식을 처음 샀는데, 때마침 고유가 사태가 벌어졌다. 2년 전 실패한 투자라고 비난받았던 일본 상사 지분 매입은, 고유가로 이 회사들이 52주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내다본 투자가 됐다.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라는 잣대로 투자한다는 버핏, 앞으로 그는 몇 번이나 더 돌아오게 될까.

워런 버핏은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라는 잣대로 투자한다.[사진=연합뉴스]
워런 버핏은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라는 잣대로 투자한다.[사진=연합뉴스]

2022년 3월 마지막 주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투자자는 누구일까. 창업자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로 변신한 서른일곱의 라이언 코헨은 어떨까. 코헨은 스물여섯이던 2011년 반려동물 용품업체 ‘추이’를 창업하고, 7년 후 약 4조원에 회사를 매각했다. 그다음 RC벤처스라는 벤처캐피털을 만들어 행동주의 투자자로 변신한다. 

그의 업적은 온라인 게임 유통회사이자 밈주식(개인투자자들의 입소문으로 주가 등락을 하는 주식)이 된 ‘게임스톱’에 투자한 거다. 코헨은 2020년 게임스톱에 첫 투자를 진행한 후 월스트리트 공매도 세력과 정면충돌했는데, 주가를 하루에 200% 가까이 띄우고 떨어뜨리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버텨냈다.

최근에도 코헨은 자신이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한 이 게임스톱 지분을 매입하면서 불과 열흘 만에 주가를 두배로 띄운다. 그리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한마디를 남긴다. “I put my money where my mouth is(나는 말로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게임스톱이라는 한물간 회사를 오직 기대감만으로 트렌디한 회사로 키워낸 코헨은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지금 주목하는 두번째 투자자일 것이다. 30대 성공한 기업가가 회사를 판 돈 4조원으로 월스트리트 권력자들과 드라마 같은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는데도 가장 ‘핫한’ 투자자 자리를 놓쳤다면…, 그럼 주인공은 회사를 5조원에 판 20대 초반 청년 투자자일까.

아니다. 주인공은 올해 91세가 된 워런 버핏이다. 정작 워런 버핏은 ‘해오던 일을 계속했을 뿐인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로 ‘핫한’ 투자자 워런 버핏이 재등장한 건 올해 1월이다. 

올해 1월 25일 미국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면서 기술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미국 주요 매체들은 워런 버핏이 테슬라 투자자로 유명한 캐시 우드를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캐시 우드의 아크인베스트먼트는 테슬라·코인베이스 등에 투자하면서 유명해졌고, 2020년 수익률 156%를 기록한 기술주 투자 펀드다.

하지만 아크인베스트먼트의 이노베이션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은 1월에 이미 -24%를 기록했다. 2020년 이후 누적 수익률도 40%대로 급락했다. 반면 워런 버핏의 버크셔는 2020년 이후 누적 수익률 30%대를 기록했다.

2월 15일, 워런 버핏이 CEO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게임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 주식을 마이크로소프트(MS)가 그 주식을 인수하기 직전인 지난해 4분기에 이미 매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버크셔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분 매입 공시에 따르면 매입 규모는 141만6000주다. 

MS가 올해 1월 18일 687억 달러에 인수한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콜 오브 듀티·오버워치 등 유명 게임 타이틀을 다수 보유한 회사다. MS는 지난 2월 14일 액티비전 블리자드 종가 65.39달러에 45% 프리미엄을 더해 인수가를 결정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지난해 12월 1일 57.28달러에 거래됐다. 12월 중순에는 60달러대로 올라섰고, MS의 인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1월 18일 25.88% 오른 82.31달러에 거래됐다. 워런 버핏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매입가는 50~60달러대로 추정된다.

워런 버핏이 액티비전 블리자드 지분 매입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추정은 가능하다. 먼저 버핏이 직접 밝힌 투자철학을 들어보자. 워런 버핏은 2020년 8월 30일 자신의 90세 생일을 맞아 월스트리트저널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버핏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투자철학을 소개한다. 요약하자면 ‘시간을 내 곁에 두라’, 이를테면 장기투자다. 

버핏은 “복리의 마법이 나에게 현재 가진 자산 가운데 90%를 65세 이후에 벌게 해줬다”며 “나는 오랫동안 ‘므두셀라 기법’을 권유해왔고, 그것이 투자에 가장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969년을 살았다는 인물이다. 

워런 버핏은 MS가 투자하기 전 이미 블리자드 주식을 매수했다.[사진=뉴시스]
워런 버핏은 MS가 투자하기 전 이미 블리자드 주식을 매수했다.[사진=뉴시스]

버핏은 복리의 마법도 얘기해왔다. 그는 1000달러가 연 복리 10%를 적용하면 5년 뒤에는 1600달러, 10년 뒤에는 2600달러, 50년 뒤에는 11만7400달러로 불어난다는 걸 알게 된 후 “이런 게 돈 버는 길”이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버핏의 전기 제목도 ‘눈덩이(The Snowball)’다. 

지난 2월 워런 버핏은 지난해 4분기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이 담긴 연례서한에서 현재 투자업계 상황과 자신의 투자철학을 공유했다. 그는 “금리가 기업의 가치(valua tions)보다 중요하다”고 평소의 소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워런 버핏은 서한에서 보험, 애플, 에너지 회사 BHE, 철도회사 BNSF가 자신들의 빅4 회사라고 소개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투자 전문회사가 아니라 실제로 경영권을 인수해서 보험사 등을 직접 경영하고 있다. 버크셔가 경영권을 가진 회사들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내부 기회를 늘리거나 인수하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단순 지분투자에 대해서는 장기금리가 여전히 낮아 주식·부동산 등 모든 상품의 가치가 너무 높아지면서 자신들을 설레게 하는 주식이 적어졌다고 밝혔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버크셔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도 자산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버크셔는 지난해 약 270억 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그 결과, 버크셔 주가는 역대 최고가를 경신해 한 주에 50만 달러를 넘긴 세계 최고가 주식이 됐다. 이런 투자철학들을 감안했을 때, 워런 버핏이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지분을 매입한 이유는 ‘장기’와 ‘가치’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어쨌거나 워런 버핏의 소식은 3월에도 끊이지 않았다. 3월 7일 워런 버핏이 올해 처음으로 새로 지분을 매입한 회사가 셰일오일 기업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매입 사실은 버크셔가 최근 SEC에 보고한 공시 문서를 통해서 알려졌다. 

 

버크셔는 올해 처음으로 옥시덴털 주식을 사기 시작했고, 3월에만 6100만주를 매입했다. 전체 매입 규모는 9100만주로 이 회사 보통주의 약 9%다. 옥시덴털 주가는 이 사실이 알려진 지난 3월 4일 17.6% 급등했다. 3월 8일에는 워런 버핏이 세계 부자순위에서 넉달 만에 6계단이나 상승해 5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워런 버핏 재산은 올 들어 17% 증가한 1167억 달러였다. 

심지어 워런 버핏의 2년 전 실패한 투자도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버크셔는 지난 2020년 8월 일본 5대 상사인 이토추상사, 미쓰비시, 스미토모상사, 미쓰이물산 지분을 각각 5% 이상 매입했다.

당시에는 이미 한물간 사업모델로 평가받는 일본 상사들에 투자를 했다며 비난을 받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3월 7일이다. 이날 일본 상사주들은 대거 52주 최고가를 기록했다. 버크셔가 지분을 보유한 이토추, 미쓰비시, 스미토모도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3월 15일은 워런 버핏의 재평가가 정점을 찍은 날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처음으로 주당 50만 달러를 넘겼기 때문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클래스A 주식은 3월 14일(현지시간) 장중인 오전 11시 50만22.84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날 버크셔 A는 전 거래일보다 0.81% 상승한 49만3785.00달러로 장을 마쳤다. 3월 3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버크셔 주가는 52만9245달러를 기록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 랠리는 실적이 그만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해 4분기 버크셔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5% 늘어난 72억8500만 달러로 10조원에 육박했다. 2021년 전체 영업이익은 25.2% 증가한 247억5500만 달러로 30조원을 넘겼다. 버크셔는 시가총액 기준 미국 6위 기업이다. 

워런 버핏은 고유가 시대를 예상하기라도 했듯 지금까지 투자하지 않았던 셰일오일 기업을 새롭게 편입했다.[사진=뉴시스]
워런 버핏은 고유가 시대를 예상하기라도 했듯 지금까지 투자하지 않았던 셰일오일 기업을 새롭게 편입했다.[사진=뉴시스]

워런 버핏이 재조명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국제 유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랠리를 거듭한 데 있다. 셰일오일 회사, 석유회사, 일본 상사들은 모두 고유가 수혜주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워런 버핏이 올해 첫 선택한 기업 옥시덴털 페트롤리엄도 좋은 예다. 버핏은 지금까지 전혀 투자하지 않았던 셰일오일 기업을 새롭게 편입했고, 고유가 시대가 오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옥시덴털 페트롤리엄 주가는 3월 30일(현지시간) 올해 들어서 무려 87.41% 폭등한 58.18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워런 버핏이 지난해 4분기 점찍은 종목 중엔 석유회사 셰브론도 있다. 다시 버크셔는 셰브론 주식 940만주를 추가로 매입해 총 38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셰브론도 유가 폭등의 영향으로 올 들어서만 주가가 37.51% 급등했다. 지난 6개월간 주가 상승률은 61.66%다. 

3월 17일에는 버크셔가 옥시덴털 페트롤리엄 주식 1810만주를 추가로 매수해 지분을 14%로 끌어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버크셔는 주당 60달러 미만으로 옥시덴털 주식 8400만주를 추가 매수할 수 있는 옵션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행사할 경우 지분율이 22%를 넘길 것으로 알려졌다.  

아흔하나의 나이가 무색하게 워런 버핏은 올해 정말 쉬지 않고 움직였다. 3월 22일 워런 버핏이 6년 만에 M&A에 나선 사실이 알려졌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보험회사인 앨러게이니를 116억 달러에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

인수 금액은 엘러게이니의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에 1.26배, 지난 3월 18일 기준 앨러게이니 종가에 25.3%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해 결정됐다. 지난 2016년 항공기 부품업체 ‘프리시전 캐스트파츠’를 37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6년 만이다. 

버크셔는 이미 가이코·제너럴리 등 보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앨러게이니는 1990년대 초반부터 보험업 비중을 점차 줄이고, 산업용 미네랄 등 다른 사업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온 버크셔 해서웨이의 닮은꼴 회사다. 

심지어 앨러게이니 CEO인 조셉 브랜든은 한때 워런 버핏의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 2001~2008년 버크셔의 보험 자회사인 제너럴리 경영을 맡은 바 있다. 워런 버핏이 이사회에서 차기 CEO로 거론하던 후보 중 하나였다. 버핏은 지난 2001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에서도 조셉 브랜든 CEO를 잭 웰치 당시 GE CEO와 비교하기도 했다. 

고유가, 금리인상기, 인플레이션 등이 워런 버핏이 재조명되는 데 한몫한 건 사실이다. 다만, 그 배경에는 워런 버핏이 늘 주장하는 ‘가치투자’라는 철학이 있다. 버핏이 게임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MS가 인수하기 전에 이미 점찍어둔 것은 당시 이 회사는 사내 성차별 및 성추행으로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워런 버핏의 ‘경쟁자’인 라이언 코헨으로 돌아가보자. 행동주의 투자자인 라이언 코헨은 자신이 한번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라며 게임스톱 주식을 추가 매수해 주가를 단시간에 두 배로 끌어올렸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끄는 워런 버핏도 자신의 투자철학을 공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버핏은 올 2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아서 물건이든 주식이든 가격이 안 오른 게 없다”고 투덜거리며 한마디를 남긴다. “Today, though, we find little that excites us(요즘 재미볼 만한 주식 찾기가 너무 어렵군).”

서한을 보낸 날짜는 2월 26일. 미국 주요 매체들이 워런 버핏의 버크셔가 MS가 인수하기 직전인 지난해 말 게임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 주식을 대거 매입했다며 자신을 다시 재조명하기 시작한 지 불과 열흘 후였다. 워런 버핏이 흥미를 느끼려면 애플 정도의 신화는 써야 하는 걸까. 

한정연 더스쿠프 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Investing.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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