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사고에 노조 “휴게시간 보장 안 해”…회사 “휴식 요청해 연차 승인”
코로나19 내규 변경, 노조 “협의 없어” 회사는 “노조도 동의” 옥신각신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CSC 내부에서 상담사들의 건강권 문제를 놓고 사측과 노동조합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CSC는 고객의 폭언 문제에 대한 대응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관련 회사 내규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전CSC는 한전과 계약을 통해 한전 123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1000여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한전CSC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서울지사에서 한 상담사가 전화상담 도중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듣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노조와 해당 상담사는 한전CSC 차원의 법적대응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상담사는 폭언 사건이 일어난 당일, 지사장 등 책임자들에게 사건을 보고한 뒤 업무를 계속하기 힘들다며 연차를 내고 자택에 귀가했다. 이를 두고 노조는 회사가 상담사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데 소홀한 면이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전화상담 업무 중에 악성상담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악성상담으로 문제가 되면 해당 업무에서 격리하고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인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니 지사장은 ‘상담사가 쉬고 싶어 일부러 시비를 걸어 사고가 발생해도 휴가를 줘야 하느냐’며 거부했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그럴 수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를 보면 ‘사업주는 고객 등 제3자의 폭언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제41조는 사업주가 취해야할 필요한 조치로 ▲업무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의 연장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그리고 ▲고소, 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건강장해가 발생할 현저한 우려’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에서 만든 감정노동자 보호지침을 보면 업무 중지, 휴게시간 제공 등을 현장책임자(지사장)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라며 “지사장이 계속 근무하라고 하면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관계자는 “법적대응에 관련해서도 본사는 ‘법적자문을 받아본 결과, 형사적 고소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면피하고 있다”면서 “분명 회사업무를 보다가 피해를 입었는데 지금 상황은 오롯이 노동자 혼자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전CSC는 정신건강 지원을 목적으로 한 EAP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나 업무시간 외에 활용하도록 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월급에 감정노동수당 15만원이 나온다. 그것도 연차를 의무적으로 소진하게 되면서 남은 재원과 조직성과급 6만원을 합쳐서 만든 것”이라며 “상담업무를 하며 폭언 등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한전CSC가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한 내규를 변경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한전CSC는 동일일자, 동일공간을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인원의 10%를 초과하면 3일간 고객센터를 폐쇄하기로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한전CSC 경기지사 고객센터는 확진자가 전체 인원의 10%를 넘으며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폐쇄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회사는 확진자 10% 초과 기준을 15% 초과로 변경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노동자 건강권 보호조치가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노동자의 건강권에 관계된 중요한 안건이지만 노조와는 협의를 하지 않는다”라며 “하루에 수십만명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장 상담사들이 불안해 하는데 걱정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객센터 등은 코로나19 집단감염에 전형적으로 취약한 사업장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산안법상 코로나19 감염은 중대재해의 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아 대책이 미비한 상황이다.

한전CSC는 노조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전CSC 관계자는 “폭언사건은 현장에서 전달받은 바로는 고객이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해당 상담사가 통화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라며 “상담사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연차를 승인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부 법률 자문을 받았는데 회사 차원의 고소는 어렵다고 했다”라며 “고객이 통화시간이 길어지다보니 기분이 언짢아졌는데 상담사도 응대가 잘 안됐다”고 덧붙였다.

한전CSC 관계자는 감정노동자 보호지침에 지사장 재량을 대폭 보장한 점에 대해 “지사장은 현장 대리인으로서 본사가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은 지사장 판단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다”라고 해명했다. EAP 프로그램을 근무시간 외에 지원하는 문제는 “정신건강은 업무뿐 아니라 업무 외적인 부분도 있어 우선 업무시간 외에 상담하도록 하고 필요하면 각 지사에서 판단하도록 기준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EAP 프로그램을 근무시간에도 직원들이 자유롭게 지원받도록 노조와 협의하려 했는데 노조가 반대했다. 왜 반대하는지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관련 폐쇄 기준을 인원 10% 초과에서 15% 초과로 변경한 것은 정부에서도 방역을 완화하는 상황 아니냐”라며 “현재 코로나19가 아주 위험한 상태라 판단하기 어려워 노조와 협의해 기준을 변경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노조가 동의했다는 합의서 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합의를 해도 서명을 안 한다. 얼굴을 보고 얘기하면 진행하라고 했으면서 나중에는 우리가 언제 합의했냐고 한다”고 항변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