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고차시장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2013년에 중고차 시장이 대기업의 참여를 불허하는,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됐다.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한번 지정되면 3년간 유예한데 2번 연속 지정 받아 2019년까지 6년간 유지해왔다. 이에 중고차업계는 2019년에 중소기업적합업종 재지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중소벤처기업부와 동반성장위원회, 을지로 위원회 등에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못 내렸다.

결국 지난 17일 중기부는 중고차를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기업의 진출이 마침내 허용된 것이다.

소비자 권리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 허용의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불만과 기존 중고차 시장의 불투명성 및 각종 혼탁한 사항들이 원인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소비자 불만 상담건수 중 5위가 중고차 관련 상담으로 조사됐다. 또 한국경제연구원의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76.4%가 ‘중고차시장은 불투명하며 혼탁하고 낙후되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대기업 신규 진입에 대해서는 51.6%가 ‘긍정적’이라는 대답했다.

결국 중고차를 팔거나 구매하는 주체는 소비자이며, 이러한 소비자의 의견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각종 위원회에서는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못할 분위기였으면, 기존의 영세 중고매매업과 대기업의 밥그릇 싸움으로 3년을 소비한 것이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정보 비대칭성이 매우 심하다. 매년 허위매물 등의 관련사기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보도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적합 지정 이후에 자정노력이나 선진화 시스템 도입 등의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의 중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완성차 “전체거래율 10% 넘지 않을 것”

대기업의 시장 진출은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중고차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했고 사업 조정기간에 두 달여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하반기부터 늦어도 올해 안에는 현대자동차의 인증중고차를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차가 진출을 선언했고, 나머지 제작사들도 점진적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기존 중고차시장 업자들과의 상생을 위해서 아직은 제한적으로 거래가 이뤄질 예정이다. 영세중고차업체는 3년을 유예해 달라고 의견을 제시했으나, 국내 완성차 5개사가 2022년에는 전체 시장의 5%, 2023년은 7%, 2024년은 10%를 넘지 않겠다는 합의안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시장 점유율 부문 연차별로 2.5%, 3.6% 및 5.1% 미만 즉, 전체 제한적 참여율의 절반 정도만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전체 중고차거래 총량에 대한 논의가 한동안 논란이 됐었는데, 기존 중고차업계에서는 개인 간 거래를 제외하고 상사를 통한 거래만을 차량 총량에 포함하자고 했고, 현대자동차는 전체 물량을 기준으로 하자고 했다. 분모에서 2배까지 차이가 나는 첨예한 상황이었는데, 결국은 188만대를 기준으로 합의한 것이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장 [사진=연합뉴스]
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장 [사진=연합뉴스]

‘믿고 구매할 수 있다’ 맹목적 신뢰는 글쎄?

소비자의 편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앞으로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직접 판매하는 중고차를 구입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장점이 회자되고 있다.

우선 믿고 구매할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대기업이 설마 품질을 속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맹목적인 신뢰는 반대되는 우려를 양산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내부에서도 중고차 시장진출을 우려하는 의견이 생기게 된 것이다. 현재 아무 문제가 없는 신차를 만들어 팔아도, 품질문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소비자들이 “흉기차~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런데 신차와 비교해서 품질이 다소 떨어질게 뻔하고 차량의 기본적인 안전성능에는 아무 문제도 없으나, 진동 및 소음 등의 주관적인 불만이 있을 수 있는 중고차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각종 품질 이슈가 표면에 떠오를 게 뻔한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장점만 있을 수는 없다. 현대자동차는 일반인들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가격 상승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하며,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다고 장담한다. 그렇다면 모든 소비자들이 좋아할까 고민해 보자. 구매자는 좋아할 것이 당연하지만, 판매자는 어떨가? 중고차를 판매하는 사람도 소비자다. 현대자동차 중고차 사업부에서 차량 가격을 후려쳐서 낮게 구매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결국 현대차에서 중고차의 품질을 보증하고, 정확한 성능점검을 위해 인력과 시스템을 투입하고 AS에 대해 일정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진다고 한다면, 당연히 시스템 운영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이는 중고차 가격의 상승을 유발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럴 경우 중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것이고, 만약 현대자동차의 장담대로 차량 가격이 오히려 낮아진다면, 판매하는 소비자가 손해를 몰 것이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연차별로 시장 점유율은 제한하는 부분도 그 숫자 그대로 믿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감춰진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기존 중고차업계 입장에서 연식 5년 미만에 10만km 이하 차량만을 취급한다는 현대자동차의 설명에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상품성이 좋고 수익이 큰 상품들로, 품질에 대해 큰 문제가 없는 차량들만 취급하겠다는 이기주의로 보이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이지만 전체 중고차 매매 가격으로 비교한다면 30%가 넘을 수도 있는 수치이다. 그만큼 가격대가 좋게 형성되는 제품만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당장은 점유율 제한으로 버틴다고 하지만, 3년 이후에는 대기업 쪽으로 매물이 몰릴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가 신차 판매 시 중고차 판매도 신차영업사원을 통하도록 하는 등의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 플랫폼 등 채널 다양화

앞으로는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도 속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중고차 브랜드인 ‘SK엔카’를 살펴보면, 딜러와 소비자들을 중개해주는 방식의 다른 중고차업계와 달리, 판매자가 중고차를 직접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상장의 성공 여부를 떠나 구매·판매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시장 내 전반적인 문제로 지적되면서 성장의 한계성을 넘어보려는 노력이 돋보이고 있다.

체카는 회사가 품질을 보증한 중고차를 모바일 앱을 통해 쇼핑한 뒤, 신개념주차타워에서 ‘중고차자판기’라고 부르고 있는 시스템에서 바로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의 개입 없이 완전 자동화로 이뤄질 예정이라서 중고차 유통마진 등 거품이 빠질 수 있다.

앞으로는 외국처럼 판매 채널이 매우 다양해지길 기대해 본다. 신차하고 중고차를 모두 판매를 하는 완성차업체, 중고차만 판매를 하는 독립된 딜러, 중고차 중심의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는 업체, 중고차 매매를 알선하는 업체, 중고차 경매장 및 대량 매각을 알선하는 업체 등 굉장히 다양한 채널로 중고차를 판매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쟁 체제가 시장의 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 선보이기에는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장 [사진=연합뉴스]
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장 [사진=연합뉴스]

‘소비자 권익 위해 진출’ 우리는 현대차를 믿고 싶다

이번 결정으로 중고차시장마저 대기업의 독과점 형태로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다. 필자도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적극 찬성한 사람이지만, 그 배경에는 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기존의 영세매매업계는 앞으로 3년이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야 한다. 자정노력을 거치고, 대기업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노력이 있다면 분명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번 결정을 바탕으로 정부의 역할은 끝난 것인지 묻고 싶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소비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이번 결정이 진행되었는데,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을 고려한다면, 실은 현대자동차가 상생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윈윈할 수 있는 묘수가 있다.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독립적인 매매센터를 구축하고자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결정과 기존 영세업체의 생계를 고려한다면, 기존에 이미 준비되어 있는 지역별 대형 중고차 매매센터 일부 공간을, 현대자동차가 임대해 인증중고차 판매를 시작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결국 재래시장 바로 옆에 이마트를 만들자는 뜻이다. 집객 효과가 있고 소비자들은 한번 방문으로 인증중고차와 기존 소상공인들의 보다 저렴한 중고차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품질과 가격의 선택폭이 넓어질 수 있다.

필자는 진정으로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는 현대자동차의 주장을 믿고 싶다. 만약 그 주장이 진실이라면 상생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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