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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낡은 성경을 제본하고 / 김주후

김주후 요한보스코,제1대리구 동백성마리아본당
입력일 2022-03-16 수정일 2022-03-16 발행일 2022-03-20 제 328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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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긴 세월을 나와 함께해 온 성경을 제본하였다.

젊은 시절 구입하여 사용해온 공동번역 성경인데, 해군에서 배를 타던 시절은 물론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을 거쳐 지금도 매일 들여다보는 바로 그 성경이다. 생활이 힘들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시기는 물론 더 큰 꿈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던 시기에도 나와 함께해 준 오랜 친구이자 지혜의 보고이다.

그런 성경이 이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인지 겉표지는 색이 바래고 책의 일부분이 갈라지면서 더 이상 편하게 읽기가 어려워졌다. 이러다간 다 망가져서 37년간 다져온 우정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생겼다. 그래서 북 아트를 전문으로 하는 분을 섭외하여 다시 제본을 하게 되었다. 성경의 표지는 검은색 가죽으로 감싸고, 뜯겨 나가던 부분은 잘 붙잡아 준 작업이다.

사실, 요즘은 성경을 컴퓨터로 읽을 때도 많다. 이미 성경 홈페이지까지 마련되어 있기에 온라인 성경 읽기가 더 쉽게 다가오기도 한다. 실제로 출장을 가거나 외부 일정 때문에 성경을 손으로 넘기면서 읽기 어려운 날은 스마트폰으로 읽기도 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이 종이든 컴퓨터 화면이든 무슨 상관일까?

그런데 역시나 나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은 매일 아침 나의 손때가 묻어 있는 이 성경으로 그날의 복음을 읽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넘기면서 읽어 나가다 보면 성경 읽기를 통해 성장한 신앙의 여정이 지도처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오래전 더 뜨거운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 놓은 구절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더해 지금은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의 작은 글씨로 써 놓은 메모마저 발견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랜 기간 나와 함께해 준 이 성경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목이 터져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던 때, 그리고 마음이 불안하여 안정을 취할 수 없었던 시간까지 함께해 준 나의 ‘반려 서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시간을 내 곁에서 지켜주느라 힘을 쓰다보니 그렇게 겉표지가 다 헤어져 버렸나 싶기도 하다.

깔끔하게 정리하여 돌아온 성경을 집어 들면서 이런 말을 되뇌었다.

“그래 그동안 나랑 함께하느라 수고했어. 그런데 이제부터 더 긴 시간 동안 나랑 함께해 줘. 나도 매일 손가락 끝을 통해 인연을 계속 이어가줄게.”

그리고 이런 다짐도 해본다. 이제부턴 머리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성경를 읽어 가야지!

잠깐, 야고보서가 히브리서 다음이었던가? 아니면 히브리서보다 먼저였던가? 팔락 팔락 손가락으로 집어 넘기며 다시 찾으러 가야지.

김주후 요한보스코,제1대리구 동백성마리아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