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게임기에서야 GBA니 DS니 잘나가던 닌텐도였습니다만, 슈퍼패미콤 이후로 거치 콘솔을 만나기란 국내에선 쉽지 않았습니다. 닌텐도64, 게임 큐브를 실물 영접한 것도 출시 5년은 넘어서였죠.

친구들 모두가 플돌이, 엑박전사로의 삶을 보내던 때 한 녀석이 이놈 저놈 불러다 앉혀놓고, 아니 세워놓고 보여준 Wii는 확실히 기존 게임기와는 달랐습니다. 서드파티 부재에 할 게임 없다고 많은 불만 나왔지만, 어쨌든 친구들 불러놓고 즐기기에는 이거만 한 게임기가 없었으니까요.


얼큰하게 취한 친구들이 좁은 친구 자취방에 몰려 Wii 스포츠 켜고 테니스 한다고 이리저리 팔 휘두르다 Wii 리모컨 여기저기 찧어간 건 10년이 더 지나서도 잊히지 않은 추억으로 남았죠. Wii의 국내 정식 출시 게임은 적었지만, 연예인 광고에 멀티방 등의 유행으로 게임에 관심 없던 이들에게도 Wii는 기억에 남을 콘솔이기도 하고요.


# 스포츠로 추억을 되살리는 닌텐도


그래서 최근 공개된 닌텐도 스위치 스포츠의 플레이는 과거의 기억들과 함께 더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테스터 참여 정책상 플레이 영상이나 상세한 소개 등은 할 수 없지만, 앞선 주말 온라인 테스트를 통해 선보인 조이콘을 이용한 게임플레이는 확실히 예전 Wii 스포츠의 기본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재미를 온라인으로 제대로 확장한 모습이었고요.

Wii 스포츠의 핵심인 모션 컨트롤은 조이콘을 통해 한층 강화된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휴대용과 거치형을 오가는 닌텐도 스위치의 플레이 가변성. 그리고 온라인 강화는 그나마 있던 플레이 가능 공간의 제약을 확실히 깨부술 수 있죠.

하지만 게임의 핵심은 몸을 움직이며 플레이한다는 재미만큼이나 예전에 즐겼던 그 추억을 되살린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억을 공유하는 건 국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Wii 스포츠 보급된 해외 지역에서 더 많을 거고요.

▲ 상세한 부분은 설명해 드릴 수 없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합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기본 패키지에 포함돼 콘솔 자체의 판매까지 견인하며 문화적인 현상으로까지 이어진 북미에서의 Wii 스포츠와 그 게임기인 Wii 인기. 그걸 생각하면 이 추억에 기댄 신작의 성공은 사실 게임 완성본의 결과와 관계없이 예견되어 있는 셈입니다. 물론 게임 자체의 재미도 있었지만요.

닌텐도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거기서 나오는 '추억'. 닌텐도는 다른 어떤 기업보다 이 추억을 장사에 잘 이용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게임&워치 슈퍼 마리오 리뷰에서도 소개했듯, 별것 아닌 고전 기기 하나라도 불편한 점은 편리하게 가다듬으면서도 원작의 패키지 구성을 되살리고 원래 감성은 남겨 말 그대로 팬이라면 사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만들죠.

또 닌텐도 온라인 서비스 대상자에게 판매하는 패미컴, 슈퍼패미콤, 세가 메가드라이브, 닌텐도64 컨트롤러 역시 원본 그대로를 파는 게 아니라 기존의 조작 감각은 유지하면서 무선 기능과 분리 가능한 USB C타입 충전 케이블 형태로 사용성을 높였고요.


그리고 이런 원판 감성 유지와 함께하는 진화는 게임에서도 그 결을 이어가고 있죠. 길게는 30주년을 넘긴 닌텐도의 여러 시리즈가 그 핵심 플레이 요소를 변치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천지개벽의 시스템적인 진화를 이루긴 하지만, 2D 플랫포머 마리오는 초창기 시스템을 유지한 작품도 꾸준히 출시되고 변화가 이루어진 새로운 갈래의 작품도 그걸 기준으로 진화한 작품이 다시 선보이고 있고요.

물론 때로는 이런 비슷비슷한 변화는 비판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비슷한 체계를 유지하며 사랑받을 수 있는 것도 단순한 자가 복제를 넘어 기존 플레이어들이 좋아할 것과 새로운 것을 한 솥에 적절히 섞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뭐 이건 원판이 워낙 잘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즉, 닌텐도는 어떻게 해야 자신들이 상품이 잘 팔릴 줄 아는 회사라는 거죠. 또 그게 개발자 이탈이나 몇 번의 신작 실패로 회사의 존망이 뒤바뀌는 게임사에서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고, 그 역사를 이어나가는 닌텐도의 힘이 되겠고요.

하지만 닌텐도가 추억을 드높이는 건 그게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때뿐인 것 모습을 더러 보여주기도 합니다.


# e숍 종료로 과거를 단절시킨 닌텐도


이틀에 걸쳐 45분씩 총 5차례만 진행된 닌텐도 스위치 스포츠의 플레이 이후. 그 추억을 닌텐도 Wii로 이어가고 싶다면 어떨까요? 직접 구매한 Wii를 서랍장에서 꺼내면 될 겁니다. 기기가 남아있다면 과거의 추억은 언제든 오늘의 기억, 지금의 즐거움이 되겠죠.

하지만 이건 패키지로 출시된 게임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DL판, 디지털을 통해 게임을 구매했다면 그걸 다시 즐기고 싶을 때는 해당 서버에서 게임을 다시 받아야겠죠. 문제는 그 서버가 운영되지 않았을 때고요.

앞서 닌텐도는 닌텐도 3DS e숍과 닌텐도 Wii U e숍의 종료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오는 8월 계정에 잔고 추가가 중단되고 3월에 e숍 폐쇄 이후에는 소프트웨어나 게임 내 아이템, DLC 등의 판매도 중단됩니다. 당장은 이미 구매한 게임의 다운로드는 가능하지만, 이것도 최종적으로는 불가능해진다는 게 공지로 확정됐죠.

소니가 성능이나 인기만큼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PS VITA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철회하며 사실상 8세대 콘솔 중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건 3DS와 Wii U가 유일하게 됐습니다. 출시 10주년을 넘기며 서비스가 완전히 끝나는 셈이죠.


사실 온라인을 통한 다운로드판(DL) 구매의 문제점은 패키지가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부터 이어졌습니다. 중고 판매나 덤핑 판매와 같은 물리적 유통망에서만 가능한 요소 외에도 서비스가 끝나면 게임 수명 역시 종료될 수 있다는 우려였죠.

다만, 적어도 지금 서비스가 종료된 콘솔의 경우 이 DL 구매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았죠. 하지만 8세대 콘솔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2010년대 중반부터는 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서비스의 중심은 콘솔과 게임 판매에서 플랫폼 서비스와 디지털 콘텐츠로 그 중심이 옮겨갔거든요.

쉽게 예를 들어 테이크투, EA, 유비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의 최근 분기 순판매 중 디지털 판매 비중은 보통 70%에서 80%에 육박합니다. 그만큼 온라인 서비스, 디지털 콘텐츠의 중요성은 높아졌고 그 변화의 중심에 있던 게 8세대 게임기, 그러니까 3DS와 Wii U의 세대였다는 거죠.

서비스 종료로 게임 못하게 되는 상상이 그전까지는 우려였다면,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겁니다.

사실 구세대 플랫폼의 다운로드 서버를 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큰 재정적 손실을 보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열어준다고 해도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는다면 손실이 될 수도 있겠죠. 스팀을 포함해 디지털 게임의 경우 패키지 게임과 달리 소프트웨어를 양도하지 않는 대여의 개념이기에 법적 책임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요.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와 게임의 관계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추억'이 아니라 '영영 만날 수 없는 단절된 추억'이 되어버립니다. 정 만나고 싶으면 게임 구매자라도 게임사가 리메이크든 리마스터든, 혹은 비슷한 후속작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요.

닌텐도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스위치 온라인 서비스에 가입하면 제공되는 패미컴, 슈퍼패미컴, 메가 드라이브, 그리고 닌텐도64로 꾸준히 과거의 게임을 추가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태도 말이죠. 하지만 최신 콘솔인 닌텐도 스위치 하위호환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Wii, Wii U, 그리고 3DS는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고요.

▲ 이제 닌텐도64 지원하는 클래식 게임. 과연 e숍 종료 전까지 Wii U, 3DS 추가가 될까?

이런 행보 중에 눈에 띄는 건 역시나 MS일 겁니다. MS의 최신 콘솔인 Xbox 시리즈 X|S는 하위 호환을 통해 Xbox One은 물론 Xbox 360, 여기에 오리지널 Xbox까지 구동가능한 에뮬레이션을 구축했죠. 단순히 기존 게임을 구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한 개선을 통해 원작보다 더 나은 그래픽 효과와 프레임, 텍스처 향상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러한 MS의 행보는 단순히 게임의 가치를 상품으로만 보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게임의 디지털 보존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게임 역시 콘텐츠의 하나로 다른 여러 콘텐츠처럼 영구히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죠. 패키지로 판매되는 게임의 경우 패키지와 콘솔 모두 잘 보존한다면 그 기록은 남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DL로만 출시된 게임은 어떨까요? 또 플레이 가능한 카트리지나 디스크를 남기지 못한다면요?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합법적인 단계에서의 에뮬레이션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요.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저작권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원작자의 참여이고 그걸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 홀더. 그러니까 MS나 소니, 닌텐도 같은 게임사의 참여가 적극 필요한 상황입니다. 필 스펜서도 합법적인 에뮬레이션을 업계 모두가 함께 개발해 최신 하드웨어에서 어떤 게임이든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촉구하기도 했죠.

그래서 구작의 작품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걸 상업적으로 잘 활용하는 닌텐도의 e숍 종료는 단순히 3DS DL판을 가진 게이머 한 명을 넘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과거의 기억을 오늘날로 새롭게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거를 온전히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게임의 역사와 가치를 이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그저 팬들만 아는 데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