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촌 현장뿐만 아니라 국내 최대 공영농수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는 한숨이 곳곳에서 새어나온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일손 부족은 성수기 등 특정 시기마다 있었던 일이었는데, 코로나 국면과 맞물린 최근 2~3년 전부터는 이전과 달리 상시·장기화되는 국면으로 보다 심화된 것 같다는 얘기가 많다.

가락시장 내 인력 채용공고를 올릴 수 있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홈페이지에는 지난해부터 구인 공고가 쇄도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를 구한다는 글에서부터 중도매인 점포 배달 및 매장 관리 업무, 시장 내 배달 업무 등을 맡을 직원을 찾는다는 게시글이 최근에도 하루 10건 이상씩 등장하고 있다. 설 대목이었던 지난 1월에는 한 달간 356건이 게시됐고, 이달에도 21일 현재 263건의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다.

서울시공사 구인공고 게시판
지난해 글 5000건 이상 등록
전년대비 80% 가까이 급증
구인 포털에서도 사람 구해


▲지난해부터 구인공고 급증, 인력난 심각=기간을 1년 단위로 넓혀 비교해보면 인력난 추이를 조금 가늠할 수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구인 게시물은 5000여건이 넘는다. 2020년 2800여건에 비해 80% 가까이(79%) 급증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3300여건, 2018년 3700여건 등과 비교해 봐도 각각 50%, 35%씩 많아졌다.

게시물의 대부분이 인력 수혈이 시급한 중도매인 등과 관련돼 있다. 즉, 법인 및 하역노조 인력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인력난 문제는 표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여기에 잡코리아, 알바몬 등 국내 주요 구인 포털사이트에서도 가락시장 인력 채용공고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인력 확보가 유통 종사자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번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사실 가락시장 인력난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예전에도 명절 대목 시기마다 인력 수급에 애를 먹는 일이 많았다. 이는 장시간 야간작업 위주의 불규칙하고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 탓이 컸다. 이런 가운데 최근 1~2년 전부터 코로나 상황까지 더해져 이런 현상들이 더욱 심화됐다는 것이 시장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부 중도매인들의 문제, 또는 단기적인 사안으로 치부됐던 인력 수급 문제가 시장 전반의 주요 현안으로 증폭됐다는 인식이 많다. 시장 종사자들은 ‘최악’, ‘위기’, ‘절정’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와 함께 인력난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야간 위주 장시간 열악한 근무
주2회 코로나 검사 피로감 커
배달, 조선족 인력 끊겨 비상


▲코로나로 증폭, 최대 현안으로 부상=이달 초 구인 공고를 올린 중도매인(과일 취급) A씨는 “코로나 여파로 현장 농민들이 인력 문제가 심각한데, 가락시장 구인난도 마찬가지다. 채소 취급 점포는 배달 비중이 70~80%를 차지하는데 배달 업무를 했던 조선족 인력들이 많았다. 코로나 발생 이후 인력 유입이 끊기다보니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채소 점포들이 시장 내 인력을 끌어가면서 과일 점포도 인력이 부족해지는 등 연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올해가 체감상 구인난이 가장 힘든 ‘역대급’ 상황인 것 같다”고 했다.

채소를 취급하는 중도매인 B씨는 “인력난 원인 중 하나는 코로나 영향이다. 가락시장 방역지침이 강화돼 코로나 검사를 일주일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받아왔고, 코로나 감염 노출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종사자들의 피로도가 커져 가락시장 근무를 기피하는 요인이 됐다”면서 “중도매인 점포에서는 최소 1명, 규모가 큰 점포는 7~8명 인력을 운영하는데, 지금은 직원을 힘들게 구해도 금방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상황이라 지인을 추천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채용 공고만 반복해서 올리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도매인 C씨는 “점포 직원들의 연령대가 40~50대가 많은데, 가락시장 내 코로나 확진이 발생하니 직원의 가족들 건강을 우려해 결근을 하거나 근무를 기피한다. 20~30대는 많지는 않지만, 시장 내 야간업무 등 격무에 시달리는 것보다 2022년 최저임금(시급)이 9160원으로 오른(전년 대비 5% 인상) 영향으로 배달라이더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낫겠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하역인력 수급도 "총체적인 위기 상황"=가락시장 내 물류 흐름과 관련이 있는 하역인력 수급도 심각한 실정이다.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가락시장 내 확진자가 발생, 하역 업무 종사자들의 자가격리 및 결근 사태가 속출했고, 이 여파로 한 도매법인의 과일 하역 업무가 차질을 빚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인력난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해덕 서울경기항운노조 위원장은 “하역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너무 심각하다. 하역의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청과동과 수산동을 합하면 하역인력 TO가 1300명 정도 되는데, 젊은 층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고 할 정도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 2~3년 전부터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결근자들이 많아 업무 및 교대근무 등 지장이 크다”며 “코로나 영향이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가락시장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가락시장 속살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체감상 차이는 있지만 속을 끓이는 것은 도매법인도 예외가 아니다. 인력난 상황에서 신입직원, 경매사들의 채용 유지율이 떨어지는 추세여서 업무 전문성·연속성 측면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한 도매법인 관계자는 “주6일 근무, 격주휴무, 야간작업 등이 많은 시장의 구조적인 근무여건 문제와 함께 코로나 등 감염 위험으로 경매사와 신규 직원들의 채용 유지율이 굉장히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인력난 해소 방안의 물꼬를 터야 할 시점이라는 인식은 가락시장 내부에서 커지고 있지만, 출구를 찾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의 한 종사자는 “시장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데, 장기적인 안목과 의지를 갖고 논의를 주도해 나갈 주체가 보이지 않는 데다 출하농가, 법인, 중도매인, 하역 등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쉽지 않은 문제”라고 봤다.

한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2021년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가락시장에는 3600여 업체 1만3000여명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매시장법인 9개사, 중도매인 1735명, 매매참가인 177명, 직판·임대 775명 등으로 인력 구성이 이뤄져 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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