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같은 심각한 사건이 드러났을 때 대중의 관심은 가해자에게 집중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가해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가해자에게 어떤 수위의 처벌이 내려지는지 등등. 사법 체계 자체가 가해자의 범죄를 특정하고 그에 알맞은 형벌을 내리는 과정이고, 언론 보도 또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징벌을 받은 것이, 혹은 받지 않은 것이 이슈가 되고 그 일이 지나가면 사건은 잊힌다. 물론 가해자가 적절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뉴스앤조이>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해, 교회 혹은 신학교에서 목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자신이 입은 피해를 공론화한 후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난 현재, 이들은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 그들이 원하는 '피해 회복'이란 무엇이며, 그 회복이 삶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지, 회복에 도움이 혹은 방해가 된 것은 무엇이었는지 들어 봤다. 이들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꺼이 다시 끄집어낸 이유 중 하나는 '교회를 위해서'다. 이들이 교회를 향해 던지는 말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 기자 주
*'교회 성폭력 생존자의 오늘' 전편 보기(클릭)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교회 성폭력은 목사와 신자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성폭력의 본질이 '폭력'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권력관계가 형성된 사람 간에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가장 극명한 권력관계는 남성 담임목사와 나이 어린 여성 신자고, 실제로 이 관계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사가 아닌 교회학교 교사나 선교 단체 선배 등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례도 종종 드러난다. 권력관계가 눈에 보이지 않을수록 성폭력을 규명하고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정수연 씨(34·가명)가 겪은 일이 그렇다.

수연 씨는 2013년 2월, ㅇ 씨가 가이드하는 공정 여행에 참가했다. 1년에 한두 차례 비정기적으로 진행됐던 이 여행은, 당시 복음주의 사회 선교나 공동체 생활 등 대안적인 삶을 찾으려는 기독 청년들 사이에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ㅇ 씨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종종 선교 단체나 기독교 대안 학교 등에서 대안적인 삶에 대해 강의했다. 다른 삶을 꿈꾸는 기독 청년들에게 ㅇ 씨는 선배이자 멘토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여행 참가자를 모집했고, 대학교 졸업 즈음 뭔가 다른 삶을 고민하던 수연 씨는 이를 보고 여행에 참가했다.

사건은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일어났다. 여행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홀수라는 이유로 여성 참가자 1명이 돌아가면서 가이드 ㅇ 씨와 방을 같이 썼다. 수연 씨와 ㅇ 씨가 같은 방을 쓰던 날 밤이었다. 잠에 들기 전 각자 침대에 누워 이야기하던 중 ㅇ 씨가 강압적으로 수연 씨에게 성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ㅇ 씨는 자녀들도 있는 유부남이었다. 수연 씨는 전혀 원하지도, 상상해 보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이후 ㅇ 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연 씨를 대했고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당시 수연 씨는 자기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름 붙이지 못했다. 혼란스러웠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가끔 ㅇ 씨와 연락하거나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2015년에는 ㅇ 씨가 가이드하는 여행에 한 번 더 참가했다. 수연 씨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과 '#OO계_성폭력' 고발 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성 인지 감수성이 높아졌고, 물밀듯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증언 속에서 수연 씨도 비로소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평소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그 사건에 빠져 있지는 않았지만 기억은 불쑥불쑥 수연 씨를 괴롭혔다. ㅇ 씨에게 연락해 사과를 요구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ㅇ 씨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ㅇ 씨는 여전히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기독 청년들의 좋은 선배·멘토로 살고 있었다. 수연 씨는 사건을 공론화하기로 마음먹고 올해 초 기독교반성폭력센터를 통해 ㅇ 씨에게 공개 사과 등을 요구했다. ㅇ 씨는 처음에는 수연 씨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했다가, 합의문에 서명하는 당일 새벽 입장을 바꿨다. 합의는 성사되지 않았고 사건은 <뉴스앤조이>를 통해 보도됐다.

언론을 통해 공론화까지 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ㅇ 씨는 공개 사과만 아니라면 합의에 응하겠다고 했으나, 공개 사과가 빠진 합의문은 수연 씨에게 의미가 없었다. 수연 씨는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자 올해 6월 ㅇ 씨를 강제 추행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10월 말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됐다. 현재 검찰에 이의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수연 씨에게 올해는 자신에게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 어느 때보다 노력한 시기였지만, 한 해가 끝나 가는 지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사건을 해결하고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반성폭력 단체와 언론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공론화했지만 수연 씨는 또 다른 답답함을 느꼈다.  
반성폭력 단체와 언론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공론화했지만 수연 씨는 또 다른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은 성폭력이었다

사건은 2013년 2월 일어났는데, 제가 이걸 '성폭력 사건'으로 인지한 건 2016년쯤이었어요. 그때 강남역 사건이랑 트위터에 '#OO계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잖아요. 그 사연들을 읽어 보니까 제가 겪은 일과 너무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깨닫게 됐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이게 성폭력 피해인지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죠. 다른 사람들의 사건과 그들이 해결해 가는 과정을 듣고 학습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저한테 있었던 일이 강제 추행이 아니고 첫 키스 같은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제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지속적이지는 않았지만 제가 한 1년 정도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더라고요, 가해자한테. 여행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가해자가 아직 그 나라에 있어서 국제전화를 걸었어요. 제가 맨 처음 질문한 게 "내가 어떤 여지를 줬나"였어요. 왜냐면 저는 유부남이 바람을 피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저도 그 가족들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난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했던 거죠. 제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 사람은 "내가 널 좋아해서 그랬다. 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1년 정도 띄엄띄엄 연락할 때마다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아주 초기에는 '이게 로맨틱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저한테는 가해자 말고는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가끔이지만 연락을 주고받고 1년에 한두 번씩 만났던 이유가, 어떻게 하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이 사람과 연락이 끊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연락이 끊기면 저는 이 일에 대해 얘기할 사람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2015년에 그 사람이 가이드하는 여행에 한 번 더 간 것도 그런 연장선상이었어요. 전에 여행했을 때처럼 또 가이드와 여성 참가자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방을 쓰는지, 여전히 가이드의 스킨십이 심한지, 이런 걸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요. 이런 것 때문에 가해자를 고소한 게 불송치된 것 같기는 한데….

2018년에 저에게 좀 충격인 일이 있었어요. 당시 다니고 있던 대학원에서 1학기 때 '성의 사회학'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요. 매주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어요. 읽어야 할 책 중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일다)이 있었어요. 그걸 읽고 강사님이랑 학생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거기에서 처음으로 그 사건을 말한 거예요. '그때 여행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는데, 그날 밤 잠을 못 자겠는 거예요. 수업 때는 괜찮았는데 집에 오니까 너무 큰일인 거죠. '이게 나한테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니구나'라는 걸 그때 다시 깨닫게 됐어요.

근데 가해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를 대하더라고요. 그해에도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가 왔어요. 본인이 새로 다니게 된 단체 소식지를 보내 준다면서 받을 주소를 알려 달라는 거예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더라고요. 대충 말하고 끊었는데… 멍해졌어요. 그리고 너무 화가 났어요. '이 사람은 왜 아무렇지도 않지?'

몇 달 후 제가 서울에서 한 달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어요. 딱 쉬는 날이 되자마자 했던 일이, 그때 사건 일지를 정리한 거였어요. 사실 그동안은 그걸 정리할 생각도 시간도 없었는데, 좀 여유가 생기니까 이것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한테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썼어요. 그렇게 정리한 걸 가해자에게 보내고 사과를 요구했어요. 그랬더니 "당연히 사과한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안 만났어요. 그 사람은 말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고, 만나면 자기가 잘못했다고 바로 사과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걸로는, 그냥 제가 미안하다는 말 듣고 끝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어쨌든 당시에도 제 요구 중에는 같이 여행 갔던 사람들한테도 이 일을 공유하라는 게 있었어요. 그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당시에는 어디에 얘기해야 할지, 뭘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든 일을 해결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이런 게 다 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든요. 가해자는 그때 자기가 만나자고 했는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제가 안 만났다고 얘기하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해결된 게 아니구나…

그렇다고 제가 평소에도 이 일에 엄청 사로잡힌 채 살지는 않았어요. 저도 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성폭력 사건이 떠오르면, 특히 '교계에서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더라' 하는 기사가 뜨면 '이 사람도 그런데', '이 사람도 그런 거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 다시 사건에 집중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뭔가 떠오르는 방법이… 다시 연락해서 '사과해 달라'고 하는 방법밖에는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중간 제가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받고 했지만, 그 이상 발전적이지는 않았어요.

제가 방어, 회피, 감정 차단 이런 게 진짜 심하거든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 감정이 어떤지는 알아채지 않으려 해요.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무섭고 소름 끼쳐요. 자책도 많이 하고요. 왜 소리도 지르지 못했지? 왜 그때 같이 여행 갔던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지? 물론 다들 그 여행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건데, 자꾸 이런 식으로 자책하게 되는 거예요. 이후 가해자와 연락한 거, 다시 여행에 참가한 거, 이런 후회되는 부분들이 계속 떠오르는 거죠. 그걸 건드리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게 무너질 것 같으니까 일부러 건드리지 않고 살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 상황도 복잡하고 하루하루가 급박하게 돌아가서, 저를 돌보는 일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도 했어요. 사건을 생각하면 무섭고 원망스럽고 화도 났지만, 계속 아무것도 아니라고, 별일 아니라고, 없었던 일처럼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저를 돌볼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항상 그 일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계속해서 저한테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거죠. 근데 또 제가 겁이 많아서 똑바로 제 자신을 보지는 못했어요. 약간 스스로를 방치하는 듯한 상태로 뒀다고 해야 하나? 그랬던 것 같아요.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 연락한 건 2020년이었어요. 그때도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해 8월에 페이스북 친구 한 명이 가해자가 나오는 사진을 올린 거예요. 저와는 다른 기수에 가해자가 가이드하는 여행을 다녀온 것 같더라고요. 그 여행이 그립다는 식의 글과 사진을 올렸어요. 그걸 보는데 제 마음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그분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나도 그 여행에 간 적이 있는데 사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사람 사진을 보는 게 힘이 드니 게시물을 좀 내려 달라"고요. 근데 그분이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하면서, 게시물이 불편하면 친구를 끊으라고 하더라고요.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 제가 운전을 하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주체가 안 되더라고요. 화가 나고, 부끄럽기도 하고요. 사건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고, 가해자와 연락하지 않은 지도 2년이 돼 가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어디서 그 사람 사진을 본다든지 어떻게든 소식을 듣게 된다든지 했을 때 제 반응이 상당히 안 좋게 올라오더라고요. '해결된 게 아니구나' 싶었죠. 주변 친구들도 제가 가끔 상태가 안 좋아지니까 뭔가 해결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 페친 반응을 보면서 '이렇게 알려서는 안 되겠구나' 다짐했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지만, '왜 내가 다녀온 여행을 망치려 하느냐'는 뉘앙스가 느껴졌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사람이 이랬다'고 얘기하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근데 저도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생각난 사람이 <뉴스앤조이> 기자님이었어요. 계속 교회 성폭력에 대한 기사를 써 오셨고, 개인적으로도 안면이 있었거든요. 제보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가해자가 과거 <뉴스앤조이> 편집국장도 했기 때문에 <뉴스앤조이> 구성원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자님이 기독교반성폭력센터를 알려 주신 거예요.

여전히 안 가르치지 않나요? 폭력에 대해

어쨌든 기독교계 안에서 이야기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한창 기독교적으로 대안적인 삶을 고민했을 때 가해자를 만났으니까요. 그때도 교회 청년들이 배울 사람이나 갈 데가 별로 없었는데, 그는 그때부터 대안적인 삶·가정·공동체 이런 것들로 개신교 청년들이 우러러보는, 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여행에서도 가해자를 교회 선배, 선교 단체 선배로 알게 돼 참여한 사람이 많았어요. 그랬기에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도 이 사건은 기독교계에서 이야기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통 20대 초반 개신교인 여성들이 성에 대해 무지하잖아요. 성적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고, 경험이 있든 없든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폭력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워해요. 성적인 접촉을 '사건'으로 처음 경험하는 여성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추억인지 폭력인지 모르게, 혼란스럽게 겪는 일이 많고, 불쾌한 경험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요새는 교회에서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이런 건 전혀 안 가르치지 않나요? 성에 대해서, 폭력에 대해서.

그런 상태에서, 대학 시절 나름 개신교인으로서 뭔가 해 보려고 했던 그 시기에, 먼저 대안적인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을 본 거예요. 그런 사람이 여행지에서 섹스나 생리 같은 얘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한 거죠. 자기는 공동체 생활을 오래 해 왔고 미혼 여성들과도 같이 살아 봤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얘기 한 번도 입 밖으로 안 내뱉어 봤는데, 오히려 그렇게 주저하는 게 이상한 것처럼 인식하게 했어요. 자연스럽게 껴안거나 스킨십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요.

또 당황스러웠던 건 남성·여성이 홀수여서 여성이 1명씩 가이드와 방을 써야 한다는 걸 여행 당일 숙소 가서 듣게 된 거예요. 저희가 여행 준비로 사전 모임을 서너 번 했거든요. 그때는 얘기가 전혀 없다가, 숙소 도착하니까 같이 써야 한대요. 약간 '응?' 했지만 '그럴 수 있는 건가? 이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건가?' 이렇게 된 거죠. 불편했는데 말을 못 했어요. 여행을 망치는 것 같았거든요. '공정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갔고, 그래서 숙소비 아끼겠다는데 뭐라고 해요. 황당했던 건 우리가 여행 끝나고 돈을 얼마씩 돌려받았다는 거예요, 돈이 남아서.

그리고 저만 두 번 가해자와 방을 쓰게 됐는데, 그 이유가 그날 원래 쓰기로 했던 친구가 조용히 못 쓰겠다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여성 참가자들은 사실 되게 찝찝했던 거죠. 근데 여행을 망칠까 봐,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말을 못 한 거예요. 이런 얘기를 제 사건이 공론화하고 나서야 서로 할 수 있게 됐어요. 가해자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여행을 잘하려고 그런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서로 잘 모르는 우리가 스스로를 계속 자책하게 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이끌었다는 것에도 화가 나더라고요.

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제가 공론화하기 전까지 가해자는 여전히 대안적인 삶을 사는 이미지였어요. 여행도 계속 추진했고요. 다른 삶을 고민하는 기독 청년들에게 여전히 좋은 선배, 좋은 멘토더라고요. 가해자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가 그동안 해 왔던 말들과 끼쳐 왔던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랜 기간 제 발목을 잡은 생각이 있어요. 그의 커리어를 무너뜨리면, 그 사람을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더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죠. 이 사건이 알려지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오히려 제가 쉬쉬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계 안에서도 추행들이 많이 드러났잖아요. 교계에서 신뢰받던 사람들이 성폭력이나 불륜 등으로 문제가 됐죠. 그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서서히 '이 사건도 드러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성폭력이라고 인지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한 달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 수연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건 일지 정리였다.
성폭력이라고 인지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한 달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 수연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건 일지 정리였다.
가해자의 고통이 들려오는 상황에서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 연락한 건 2020년 여름인데, 당시 제가 석사 학위논문을 써야 해서 바로 진행을 못 했어요. 논문을 다 쓰고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되게 순식간에 일이 진행됐어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몇 번이나 인정한 거라 왈가왈부할 게 없었어요. 하루하루 핑퐁 하면서 합의문을 작성하는 과정이었죠. 제가 요구한 건 저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라는 것, 같이 여행 갔던 사람들과 속했던 공동체에 이 사건을 알리라는 것, 페이스북을 통해 여행 참가자를 모았으니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게재하라는 것이었어요. 이건 2018년 처음 사건 일지와 요구 사항을 썼을 때랑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가해자가 처음에는 제 요구에 다 응하겠다고 하더니 갈수록 말을 바꿨어요. 합의문 문구 다 조율하고 도장 찍기로 한 당일 가해자가 못 하겠다고 했다더라고요. 자기는 이미 가족과 공동체에 알렸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권고사직까지 당했다면서, 이만하면 충분히 괴롭다는 입장이 들려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사과문을 올리는 건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한테는 그게 중요했거든요. 여행 참가자를 몇 번이나 페이스북으로 모았다는 건, 거기에 이 사람을 신뢰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는 거였으니까요. 그 사람들도 이 사건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해자 요구 사항을 반영한 합의 내용은,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1000만 원을 받고, 주변에 말하지 말고, 서로 연락하지 말고, 민형사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건 그냥 합의금 받고 조용히 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겠더라고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페이스북 공개 사과잖아요. 그게 빠진 상황에서는 더 할 얘기가 없었어요. 결국 합의는 어그러졌죠. 그리고 바로 <뉴스앤조이> 기사가 나왔어요.

기사가 나온 후에도 직접은 아니지만 한 다리 건너서 계속 합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어요. 저와 가해자를 모두 아는 K 간사가 중간에서 합의를 이어 가 보려고 한 거예요. 근데 K 간사가 그쪽에서 듣고 저한테 전달하는 말들이 사실과 많이 다른 거예요. 제가 그걸 교정하기 위한 자료들을 K 간사에게 계속 보냈어요. 그렇게 사실을 바로잡는 데만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결국 그 합의도 제대로 되지 않았죠.

그런 과정 속에서 계속 가해자 측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이미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자기 행동에 비해 과한 일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냐", "피해자에게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온갖 소문이 들리는 거예요. 제 요구 사항 중 하나가 가해자 가족과 공동체에 이 사건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가해자가 알리니까 가족과 공동체가 그의 편이 되더라고요. 가해자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정작 그가 저지른 일에 피해를 당한 고통은 얘기되지 않는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답답하더라고요. 어쨌든 기사도 나오고 공론화를 하기는 했는데… 제 주변에서도 별 반응이 없었어요. 기사가 익명으로 나가서 그런지, 그냥 '기독교계에서 누가 또 성폭력을 저질렀구나' 하는 정도? 지인들도 기사만 보고서는 피해자가 저라는 걸 잘 알아차리지 못하더라고요. 가해자도 조금 특정이 되기는 했지만 제 주변에서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가해자·피해자가 누구인지, 피해 사실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은 채 기사가 나갔을 때, 사람들은 그걸 너무 궁금해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피해자가 누구고, 어떤 일을 당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걸 보고 판단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피해 사실이 자극적이거나 피해자가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거나 하면 훨씬 이입이 쉽겠죠. 근데 이 기사가 그렇지 않으니 별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피해자가 나라고 공개해 버릴까 많이 생각했는데…. 그랬을 때 저에게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씌워질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어요. '성폭력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도 생각이 왔다 갔다 해요. 그냥 공개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과 피해자로만 인식될 것 같다는 생각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가해자 이름을 밝히자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제 페이스북에 공유하거나 지인들에게 알릴 때도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오히려 기사가 나온 다음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데, 어떤 방향에서든 가해자의 고통은 들려오는 게 참 힘들었어요. 가해자는 자기 편이 된 공동체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가해자의 괴로움 못지않게 피해자도 괴롭다는 거, 난 여전히 뭔가 고장 난 상태처럼 지내고 있다는 건 어디에 말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이 사건이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답답해요. 가해자가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굉장히 어렵다는 입장을 표한 것 같더라고요. 가해자는 그렇게 자신을 두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저는 이야기할 수가 없잖아요. 이 사건이 제대로 이야기되려면 제가 나설 수밖에 없는데, 피해자가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진짜 답답해요. 피해를 당했는데도 피해를 당했다고 쉽게 얘기할 수 없는, 피해를 당했다고 말할 때도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시간이 지났다고 없던 일이 되나요

공론화를 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어떻게든 해결해 보고 싶어서 올해 6월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했어요. 고소하기 전 그냥 합의하고 끝낼까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그럴 수는 없겠더라고요.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또 지난해 제가 아는 아이가 어린이집 운전기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어요. 경찰에서 피해 진술까지 했는데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이 종결된 거예요. 시간이 지나자 기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복직됐고요. 오히려 그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겼죠.

여성들은 왜 어린 시절부터 성폭력에 노출될까, 왜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을까, 왜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 화가 많이 났어요. 제가 고소를 결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해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사건으로 고소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저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10월 말, 경찰에서 무혐의 처리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제 입장에서는 정말 경찰이 무능하고 무관심하고 열정 없이 조사했다고 느꼈죠. 물론 사건 당시 증거는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가해자도 여러 번 인정했거든요. 제가 조사받을 때 경찰이 거짓말탐지기로 진위를 가릴 것처럼 얘기했어요. 근데 결국 그것도 안 했어요. 저는 가해자가 있는 지역 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받았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의자가 잘 조사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지역에 가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그래도 그렇게 했어요. 대체 경찰 조사라는 게 자꾸 누구를 위해 주는 건지…. 피해자가 지쳐서 그만두게 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경찰은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겠죠. 왜 그때 바로 강제 추행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는지, 왜 둘이 방을 같이 썼는지, 왜 사건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고 여행에 또 갔는지…. 이런 세세한 부분이 궁금하겠지만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왜 그랬는지. 제가 그 일을 겪고 '이렇게 저렇게 준비해야지' 하면서 살아온 게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건들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이게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됐고 이후 공론화하고 고소한 것이기 때문에, 그전에 했던 행동들이 딱딱 들어맞지 않는 거예요.

저도 이런 점 때문에 더욱 남한테 얘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가해자 말고 처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게 피해를 당하고 5년 뒤니까요. 그간 '나한테 이 일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까'라고 저 스스로도 의심했어요. 경찰도 저에게 시간이 오래 지난 일을 왜 지금 얘기하느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때 그날 밤 있었던 일이 지금도 굉장히 생생하거든요. 이게 그냥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을까…. 오래 고민했지만 결과는 '아니다. 너무 많이 아니다'였죠. 그랬을 때 뭔가 그때의 저를 비난하기보다는, 제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소까지 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나는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것뿐인데, 과연 그 '해결'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제가 그 사람을 매장시키려고 이러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어쨌든 그 사람이 진행한 여행, 우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추앙을 받던 여행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거기 참여한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래서 단둘이 해결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처음 생각대로 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온 거죠.

지금 검찰에 이의신청을 해 놓은 상태예요. 그것마저 안 되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진짜 가해자가 사는 지역에 가서 항의라도 해야 하나 싶어요. 단체를 통해서도 안 되고 법적으로도 안 되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저는 거기 가고 싶지도 않고, 사실 만나고 싶지도 않고,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데….

2016년 5월 강남역 사건 당시 사건 장소와 가장 가까웠던 강남역 10번 출구는 애도와 연대의 메시지로 뒤덮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2016년 5월 강남역 사건 당시 사건 장소와 가장 가까웠던 강남역 10번 출구는 애도와 연대의 메시지로 뒤덮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건 해결 안 되니 회복도 요원

사건 진행하면서 반가운 소식은 딱 하나 있었어요. 가해자가 속했던 공동체들에 이 사건을 알렸을 때, 가해자가 관계했던 대안 학교에서 이 사건을 공론화한 거예요. 학교 차원에서 자신들이 계속 관계해 온 사람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거기에 대해 사과하고, 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까지 신고하라고 공지를 했어요. 조사 기간이 짧은 감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사람을 잘못 쓴 일에 대해, 한 사람이 계속 검증되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일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에 대해 반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저에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는 책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요. <김지은입니다>(봄알람)를 읽으니까, 공론화를 하면 무슨 얘기를 들을지 미리 좀 알겠더라고요. 관심이 없다든지 혹은 역으로 저를 비난한다든지, 그런 반응들에 대해서 한 번쯤 마음먹게 된 책이었어요. <보통의 경험>(이매진)은 성폭력 대처 가이드 같은 책인데, 사건 해결을 위해 어떤 과정을 밟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대학원 수업 때 읽은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도 큰 도움이 됐죠. 공감되는 부분을 정리해 두기도 했어요.

"낯선 사람에 의한 피해를 입었을 때와 달리 가해자가 아는 사람일 경우는, 그와 단순히 가볍게 아는 정도라 하더라도 자신이 당한 게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신이 경험한 게 강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는 동시에 상대방이 얼마나 크게 자신의 믿음을 배신했는지, 또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는 힘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모두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58쪽)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치유되고 회복되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피해 여성 각자에 따라, 또 그녀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따라 다양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않고 마음속에 묻어 두는 방식이야말로 치유의 여정에 가장 위험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수십만 명의 피해 여성들이 그런 방식을 선택해 왔고,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직면하고 그에 이름 붙이기를 회피하고 있다." (같은 책, 196쪽)

저는 솔직히 제가 회복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은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가해자에게 요구했던 것들이 충족된다면 이후 생기는 감정들은 제가 처리할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여행비와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 그리고 공개적인 사과와 같이 여행 갔던 사람들에게 사과. 가해자한테 그 이상은 요구할 수 없다고, 그 이후 발생하는 감정들은 내가 처리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이게 안 되니까 계속 이 얘기만 하는 거예요. 얘기를 계속하니까 가해자는 이미 자기는 노출이 심하고 피해를 받고 있다고 말하는 거죠. 제 입장에서는 하나도 된 게 없는데…. 저는 이게 해결돼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제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거, 그게 제 회복의 시작이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때가 있었어요. 내 안에서도 이게 어떤 일인지, 사건인지 아니면 이벤트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있던 때에, 너도나도 입을 보태 주니까 좀 더 확신이 섰죠. 비슷한 사례들을 얘기해 준다든지, 가해자나 이 과정에 대해 같이 화를 내 준다든지, 이런 것들이 제가 일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근데 주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해도, 정작 제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사건 진행 상황을 공유하면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그래 주는데… 결국 진전이 없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그들에게 미안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제 상태는 뭔가 달라진 게 없어요. 어떤 때는 괜찮은데 어떤 때는… 특히 기독교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보면 굉장히 화가 나요. 그냥 교회들이 다 그렇고 그런 것 같아요. 분노가 한번 확 올라오면 추스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지난번에도 경찰에서 가해자가 무혐의 처리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화가 엄청 나더라고요. 분노로 몸이 잘 조절되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해요. 제가 그걸 가라앉히려고, 평온해지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거든요. 웃긴 것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일부러 이렇게 애를 쓰는 시간이 아깝죠.

사실 이 일을 겪고 나서 결혼에 대한 불신도 생겼어요. 가해자가 유부남이었고 아이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이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의심한 적 없었기 때문에 가해자와 방을 같이 쓴 거고, 가해자가 제 연애 경험 같은 걸 물어볼 때도 '저 사람은 공동체 생활 하면서 미혼 여성들이랑도 지내 봐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던 거예요. 부부·가족에 대한 신뢰가 깨진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다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제가 자기 회피를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제 상태를 잘 알아차리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사건 공론화하면서 상담을 5회 정도 받기는 했는데, 상담 선생님도 그러시더라고요. 무슨 일을 당한 건지는 배워서 혹은 훈련받아서 잘 설명하는데, 자기 상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요. 그걸 풀어 나가는 데 좀 시간이 많이 걸렸고, 사실 제대로 하지도 못했어요. 제 인생이 뭔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이 사건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받는 게 좋기도 했는데 그 시간을 따로 내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일상을 지내 오다가 잠깐 1시간 동안 그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 영향이 너무 크더라고요. 하기 전에도 긴장되고, 하면서도 어렵고, 하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아서요. 저는 어쨌든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그런 밸런스 조절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을 좀 꺼리게 되더라고요. 어쨌든 제 마음 상태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지난번처럼 한 달 정도 여유가 생기면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생각은 일단 이 상황들에 뭔가 진전이 있어야 제 마음도 나아질 수 있겠다 싶어요.

※ 사실 확인 후 기사를 일부 수정했음을 알립니다. (2021년 12월 24일 16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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