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탐구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 기사승인 : 2021-12-07 00: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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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자연과학

공간은 실체적 존재인가?

택배를 기다려보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유치원생들까지도 주문한 장난감이 언제 도착할지 궁금해 부모에게 배송조회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생산지에서 우리 집까지 손꼽아 기다리는 그 상품은 이동과 이동을 거듭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동한다는 것은 위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며 위치의 변화는 곧 공간의 변화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 ‘공간’이라는 용어를 스스로 설명해 보려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앞서 택배 이야기에서 상품의 위치는 현재 그 상품 주변에 있는 다른 대상을 통해 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두동면 우체국에 있음’과 같이 말이다. 만약 주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의 위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공간이란 것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즉, ‘공간은 실체적 존재인가?’이다.


공간에 대한 정의적 질문은 과학과 철학의 경계선상에 있다. 공간은 물리적 대상으로서 과학의 영역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우리의 경험적 이해만으로는 그것의 본질을 제대로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간의 공(空)은 비어있음, 구멍, 하늘, 틈 등의 의미를 가지며 간(間)은 사이, 틈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공간은 비어있는 사이 또는 틈이 된다.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광활한 비어있음과 같이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有之以爲利(유지이위리),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 곧,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한다.’는 구절이 있다. 동양사상에 있어 공간이란 비어있기에 가치롭고 소중한 것으로 인식된다.

뉴턴의 실체론과 라이프니츠의 관계론

서양철학의 인식론에 기반한 과학적 의미에 중점을 둔 공간은 크게 2가지 설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관계주의, 관계론이며 나머지는 절대주의, 실체론이다. 뉴턴은 실체론을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운동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도출된 것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상상해 보자. 바닥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사과가 운동 중이지만 사과를 기준으로 보면 바닥이 사과를 향해 운동 중이다. 이것은 기준이 되는 대상에 따라 위치 변화가 다르게 이해되는 ‘상대운동’이다. 그렇다면 떨어지는 사과의 예에서 어느 쪽이 진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뉴턴은 동일한 기준으로 작동하는 ‘절대운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절대운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절대공간’이라 하였다. 


이에 반해 라이프니츠는 관계론을 주장했는데 물체의 위치를 결정짓는 것은 물체 상호 간의 관계이며 공간은 이러한 관계의 질서라는 것이다. ‘책상 위의 볼펜이 있다.’는 문장에서 책상과 볼펜은 서로의 위치를 결정짓는 상호 위치적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공간은 물체가 없다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뉴턴의 절대공간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증거로 다음의 사고 실험을 예로 들었다. 두 개의 우주가 존재할 때, 한쪽에서는 물체들이 각자 자신의 절대운동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동일한 물체들이 동일하게 절대운동을 하되 모두 북쪽으로 10m/s 속도가 더해진다면, 두 개의 우주 속 물체들의 상대운동은 동일하므로 어떤 관찰자도 자신이 어느 우주에 있는지 식별하지 못한다. 따라서 두 개의 우주는 동일한 우주이며 그러므로 그는 절대공간 개념을 공허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뉴턴은 양동이 사고 실험을 제시하며 절대공간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물이 든 양동이를 끈에 매달아 정지상태로 두면 양동이도 그 안의 든 물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끈을 한쪽으로 꼬았다가 놓으면 양동이가 회전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양동이만 돌고 그 안의 물은 돌지 않지만 곧 물도 가장자리로 쏠리면서 양동이와 같이 회전하게 된다. 물이 가장자리로 쏠리면 수면이 오목하게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수면이 오목하게 변한 이유는 물이 회전했기 때문이고 물의 회전은 양동이의 회전에 기인한다. 양동이와 물이 함께 회전하면 양동이와 물은 서로에 대해 정지상태이므로 물의 회전운동은 양동이를 기준으로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이 회전운동은 절대공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파악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시간과 공간

현대에 이르러 공간은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특수,일반)과 양자역학으로 설명된다. 상대성이론은 우주공간에서 물체들이 서로 상대운동을 하며 공간은 이러한 상대운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본다. 다만 이때의 공간은 실재하지만 절대좌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절대좌표계란 공간 자체에 정해진 위치값을 의미하며 따라서 다른 물체와의 상대적 관계 없이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좌표계를 말한다. 상대성이론은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진다고 주장함으로 실체론의 절대공간은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공간에서 시공간의 변화는 일정한 데 반해,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의 변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원자보다 작은 입자 또는 소립자라 불리는 대상들이 상호작용하는 미시세계에 대한 물리역학이다. 양자역학의 시간은 모든 물질에 동일한 절대시간으로 간주하며 이 시간의 동일성으로부터 공간은 절대공간으로 상정된다. 추가로 상대성이론은 시공을 상호 연관되며 연속된 것으로 보는 데 반해 양자역학은 시공은 상호 독립적이며 분리된 것으로 본다. 흥미롭게도 현대물리학의 양대 축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바라보는 공간은 다르다. 현재 현대물리학의 목표는 이 두 축을 통합하는 것에 있다.


공간에 대한 논쟁과 탐구는 현대에 이르러 일반인이 쉽게 이해에 도달하기 어려운 구체성과 다기성 그리고 형이상학성을 가진다. 축적된 과학적 사실의 양도 방대하고 이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된 수학적 표현들도 여러 배경지식이 없이는 한 줄 읽어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공간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생기는 것은 공간이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우주)의 기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에서 태어나 공간에서 사라진다.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일상 이상의 통찰과 선택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실체적 자아로서의 내가 과연 나의 경험적 인식과 합치하는지, 곧 외면적 형상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투영해 내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와, 보다 본질적인 나로 존재하고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짓게 한다.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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