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출처=엔씨소프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출처=엔씨소프트

[이코노믹리뷰=민단비 기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하나의 게임 지식재산권(IP)을 20년 넘게 끌고 온, 국내 게임 및 ICT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해당 IP는 리니지다. PC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계승한 모바일 게임 '리니지M'과 '리니지2M'은 지금까지도 국내 게임 매출 순위 5위 안에 들며 식지않는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위기다. 올해 들어 리니지식 수익구조(BM)에 대한 반감이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관된 BM을 적용한 신작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며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엔씨가 변화를 약속하고 실천하며 위기에 재빠르게 대처하고 있으나 아직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리니지 신화, 김택진 대표

김 대표는 한국 게임 시장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엔씨소프트 창립 전 1989년에는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 대학 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아래아한글’을 개발하고, 한메소프트를 세워 타자연습프로그램인 ‘한메타자교사’를 만들었다.

이후 현대전자에 입사해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서비스 아미넷(現 신비로)를 개발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개발한 아미넷을 두고 현대전자와 현대정보통신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며 사업이 표류하자 김 대표는 현대전자를 나와 1997년 3월 자본금 1억 원으로 현대전자에서 일하던 동료 16명과 함께 엔씨소프트를 설립했다.

김택진 대표는 창업 약 1년만인 1998년 9월 1세대 PC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출시했다. 당시 리니지는 정액제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한 달 이용료 2만9,700원이라는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창업 첫해 매출을 2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2003년 출시한 ‘리니지2’ 역시 전작 못지않은 흥행을 기록하며 엔씨의 대표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계속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리니지 성공의 기세를 몰아 2001년 북미에서 리니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10년간 고전하다 철수했다. 이후 거금을 들여 게임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을 영입해 그와 함께 2007년 MMORPG ‘타뷸라 라사’를 출시했지만 흥행에 참패하고 2년도 안 돼 서비스를 종료했다.

반복되는 실패에도 엔씨는 2008년 ‘아이온’, 2012년 ‘블레이드앤소울’ 등을 선보이며 RPG 명가로 거듭났다. 두 게임은 각각 출시되던 해에 국내 최대 게임 시상식인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게임성을 인정받았고, 아이온은 당시 160주간 PC방 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엔씨는 모바일 게임 개발에 돌입해 2017년 ‘리니지M’과 2019년 ‘리니지2M’을 출시하며 모바일 시장에서도 리니지의 저력을 입증했다. 엔씨소프트의 2020년 매출 2조4,162억 원에서 두 게임이 차지하는 몫은 각각 8,287억 원, 8,496억 원으로 절반 이상에 달한다.

리스크...김택진 인사이트 위력 발휘하나

리니지 IP로 잘나가던 엔씨는 올해 들어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2월에는 롤백 보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용자들이 리니지 불매운동과 트럭시위 등을 벌인 ‘문양 시스템 롤백 사태’를, 7월에는 리니지M이 4년 동안 놓치지 않았던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위 자리를 카카오게임즈의 ‘오딘’에 뺏겼다.

엔씨는 리니지에 이은 대표 IP인 ‘블레이드앤소울’을 계승한 야심작 블소2에 기대를 걸었다. 블소2가 사전예약에만 746만명이 몰리며 738만명이었던 리니지2M의 기록을 깨자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블소2가 리니지와 다를 바 없는 BM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용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블소2가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초반 성과를 거두자 엔씨 주가는 급락했다. 게임 출시 직전 80만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출시 후 50만원대까지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약 18조에서 13조원으로 떨어지며 5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주가가 흔들릴만큼 이용자들의 혹평이 쏟아지자 엔씨는 게임 출시 다음날 공식 사과문을 냈다. 엔씨는 “이용자분들게 심려를 끼친 점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논란이 된 BM인) 영기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비판을 반영해 이용자들이 과금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버프(강화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업계는 엔씨가 출시 직후 하루 만에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핵심 BM을 바꾸는 개편안을 내놓은 것은 김 대표의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블소2 출시 첫날 매출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곧장 직접 회의를 주재해 관련 대책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김 대표는 지난 9월 중순 사내 메일을 통해 직원들에게 최근 자사 게임을 둘러싼 각종 비판에 대해 반성하면서 변화를 약속했다. 그는 “CEO로서 엔씨가 직면한 현재 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엔씨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로, 고객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엔씨는 지난달 30일 이용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리니지W’의 두 번째 쇼케이스를 개최해 해당 게임의 BM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핵심 BM 중 하나였던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출시 시점뿐 아니라 서비스 종료 때까지 비슷한 시스템도 도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리니지W는 김 대표가 “마지막 리니지를 개발한다는 심정으로 준비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다. 실제 해당 게임은 엔씨의 깜짝 발표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준비한 콘텐츠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30일 열린 쇼케이스에서 이성구 리니지W 그룹장은 “2017년 리니지M 출시 준비 완료 시점부터 리니지2M 개발실과 함께 구성된 별도의 개발실에서 올해 말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4년간 개발한 타이틀”이라고 말했다.

2차 쇼케이스 직후 엔씨는 리니지M·2M에서도 대표 BM인 아인하사드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월정액 상품을 게임 내 재화로 구매할 수 있게 변경했다. 해당 월정액 상품은 판매를 중단하고, 이미 사용 중이거나 구매한 뒤 사용하지 않았어도 모두 전액 현금 환불할 것을 공지했다. 지난 2월 현금이 아닌 게임 재화로 피해보상을 하려 했던 대응과는 다른 조치다.

엔씨는 리니지W에서 리니지M·2M의 대표적 확률형 아이템인 '변신 카드'와 '마법인형'을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도록 하며 확률형 아이템의 비중을 낮추기도 했다. 김 대표의 쇄신 천명과 BM 개편 실천으로 엔씨가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한 현재 BM 수준을 얼마만큼 완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