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오케스트라, 그 속에 내포된 사회학(2) 

오케스트라와 관현악곡은 그것들이 만들어진 사회와 문화의 한 측면을 닮은 것 같다. 화려하고 우아한 음악을 들으면서 그것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오케스트라의 특성이 어떻게 사회와 문화를 닮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만화로 표현한 베를리오즈의 초상 / 사진:위키피디아
음악에서의 낭만주의는 베토벤이 열었다. 삐딱한 청년 고전주의 자로 출발했던 그가 교향곡 3번 [영웅]을 통해 낭만주의자로 변신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웅장하고 화려하며 격렬해 표현주의적이기까지 한 베토벤의 낭만주의적 관현악곡들은 고전적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단아한 고전적 교향곡을 연주하던 그 오케스트라다. [영웅 교향곡]보다 더 격렬한 [운명 교향곡]과 [합창 교향곡]도 목관악기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이 각각 2대씩인 2관 편성 기조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주의할 것이 있다. 오늘날, 베토벤의 웅장한 교향곡들을 연주하는 고전적 오케스트라의 2관이라는 기본 포맷은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그것과 같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현악기의 수는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그것보다 대체로 많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되돌아간다면, 기본 포맷을 비롯한 전체 연주자의 수도 대체로 같았다.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음악과 무척 다르다고 여겼다. [합창 교향곡] 4악장에는 말 그대로 합창이 들어가 있는데, 이 음악도 고전적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합창곡이나 오페라보다 웅장한 느낌이다. 베토벤은 선배들이 쓰던 조직을 그대로 가져와 그들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다뤘는데, 그 것이 그의 혁신이었다.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었을까. 조직을 구성하는 연주자 개인의 역할을 키웠다. 한 사람이 연주해야 할 음의 총수가 더 많아졌고, 음의 높고 낮은 대역은 넓혀졌으며, 음의 세기(강약)도 폭이 넓어졌다. 현악기, 그중에서도 제1바이올린이 주로 맡았던 중요한 역할을 다른 악기들도 같이 떠맡게 되었다. 그 결과, 이를테면 금관악기의 웅장한 팡파르가 더 많이 소환되었다. 음의 세기(강약)는 단순히 폭이 넓어진 것을 넘어, 음악의 극적 변화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예를 들어, [운명 교향곡] 3악장 후반부는 꽤 오랫동안 음의 세기가 아주 작아서 고요하기까지 한 피아니시모(pp)의 음향을 들려주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소리를 점진적으로 크게 하는 조치인 크레셴도에 따라 무척 웅장하고 큰(ff) 4악장의 세계로 이행하는데, 이러한 극적 이행을 통해 많은 청자가 충격과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다. 고전주의자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절제된 세계에서 들을 수 없었던 낭만주의적 격동과 자유로운 터뜨림의 세계로 초대된 것이다. 베토벤은 오케스트라라는 조직을 다루는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의 의미를 잘 보여준 첫 번째 작곡가였다. 베토벤과 함께 주어진 존재보다 그것을 다루는 방법이 더 중요해졌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가 『부정의 철학』에서 말했듯이 방법이 존재를 구성한다(C’est la méthode qui défini les êtres). 베토벤이 그런 세계를 보여주었다.

만약 내가 무척 게으른 호른 연주자라면, 트럼펫 연주자라면, 팀파니 연주자라면,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지휘자라면, 또 내가 내 동료들의 뜻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나와 내 동료들의 뜻이 교향악단의 운영자에게 거스르기 어려운 압력이 된다면, 나는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자들의 관현악곡 연주를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할 것이다. 같은 급료를 받는데 내가 더 힘들게 몸을 쓸 필요가 있을까.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인 [교향곡 40번]은 연주하는 데 대략 26분이 소요된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은 53분, 말러의 4관 편성인 [3번 교향곡]은 1시간 40분이 걸린다. 모차르트 교향곡 네 개를 연주해야 말러 [3번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대충 비슷하다. 모차르트 교향곡 네 개를 연주하는 음악회는 거의 없다. 1시간 40분이 소요되는 연주회도 많지 않다. 게으른 내가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면, 1시간쯤이면 끝나는 음악회에서 모차르트를 주로 연주하자고 할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 곡의 연주가 그 나름으로 어렵다는 연주자도 많다. 연주가 물리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민도 동반하는 것이기에, 모차르트 곡이 어렵다는 연주자들의 말은 타당하다.


▎1845년 한 파리 신문에 실린 베를리오즈의 만화. 그의 지휘로 연주되는 곡의 시끌벅적한 특성을 과장된 필치로 그렸다. / 사진 : 베를리오즈 웹사이트
베토벤 이후에도 한동안 많은 작곡가가 2관 편성의 틀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고전적 오케스트라라는 하드웨어를 베토벤보다 더 심하게 다루어 오케스트레이션에 대단한 혁신을 가져온 또 다른 이가 베를리오즈다. 그가 1830년에 작곡한 [환상 교향곡]은 변형된 고전 오케스트라로 연주된다. 목관과 금관의 어떤 악기들은 2개씩 있지만, 다른 악기들은 3개 혹은 4개가 되어, 2관 편성에서 3관 편성으로의 역사적 이행 과정의 과도기를 보여준다. 베토벤 [9번 교향곡]에서 이미 보인 이러한 과도적 조치들에 덧붙여, 다양한 타악기의 도입이 베를리오즈의 이 떠들썩한 교향곡에서 재확인되었다. 무려 4명이 연주하는 팀파니, 심벌즈, 북, 종(bell)이 고전적 오케스트라의 포맷을 무력화하며 새로운 음색의 길을 열어주었다. 베토벤도 [9번 교향곡]에서 트라이앵글과 심벌즈, 큰북이라는, 전에 없던 타악기 편성을 보여준 바 있다. 타악기가 아니라도[환상 교향곡]은 최고 수준의 전문적 오케스트레이션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주의 깊게 청취해야만 그 전문적 실체를 지각할 수 있다.

독일인 베토벤과 프랑스인 베를리오즈를 떠들썩한 난동의 세계로 밀어붙인 것은 무얼까. 프랑스대혁명이 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영웅 교향곡]에 관련된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대 로마의 집정관 같은 혁명 영웅으로 베토벤이 존경했던 나폴레옹이 1804년에 갑자기 황제가 되었다는 이유로 베토벤의 마음속에서 실망스러운 속물로 변화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일화에 따르면 베토벤이 최소한 [영웅 교향곡]을 작곡했던 1804년 초까지는 나폴레옹과 프랑스대혁명을 좋게 보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베토벤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영웅적 교향곡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베토벤이 이후 온전한 반혁명주의자가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나이를 먹은 그가 쓴 음악에서 드러난 내성적·관조적·자기성찰적 특성은 그가 떠들썩한 혁명에 대해 예전보다 관심이 줄어들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증거일 수 있다.

프랑스대혁명은 무수한 희생을 초래한 후 1799년에 일차적으로 종결되었지만,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통해 희한한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즉, 혁명적 프랑스는 시민혁명의 이념과 성과를 수출하기 위해 주변국과 전쟁을 벌이는데, 그 선봉에 나폴레옹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프랑스에 복고 왕정을 가져왔고, 열정적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830년에 다시 사고를 쳤다. 그해 7월, 시민들은 한편으로 혁명을 진압하려 했던 반혁명 복고 왕정의 공권력에 피해를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입헌 왕정을 들어서게 했다. 1837년, 새 정부의 내무장관은 베를리 오즈에게 7월혁명 기간에 죽은 군인들을 기리는 곡을 만들라고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인 [환상 교향곡]의 작곡가는 사상 최대 편성의 오케스트라로 연주될 [레퀴엠] 혹은 [죽음을 위한 대미사]를 작곡하는데, 이 곡에 쓰일 악기가 유례없이 많았다. 플루트 4대, 오보에 2대, 잉글리시 호른 2대, 클라리넷 4대, 바순 8대, 호른 12대, 코르넷(cornet) 4대, 튜바 4대, 팀파니 16대, 큰북 2대, 심벌즈 10쌍, 탐탐 4대가 동원된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100명이 넘는 현악기 연주자, 200명이 넘는 합창단이 추가되었다는 것도 그렇다. 압권은 청중을 둘러싼 동서남북 네 방향에 따로 배치될 금관 브라스 밴드가 있다는 점이다. 네 방향에서 따로 연주되는 금관악기의 오케스트라는 음원의 방향성(directionality)과 공간성(spatiality)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곡 ‘신의 분노(Dies Irae)’ 중후반부에 소개되는 ‘놀라운 나팔 소리’라는 뜻의 ‘튜바 미룸(Tuba mirum)’이 특히 그런 미학을 잘 보여주었다. 이 음악은 기존 오케스트라와 달리 청자의 앞에서만 들리지 않고 청자의 옆, 뒤쪽에서도 들리며 그것도 빙글빙글 도는 듯한 현란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소리의 회전(rotation)! 오늘날의 영화관 속 서라운딩 시스템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1837년에 창조된 것이다.


▎1954년 5월 1일, 베를리오즈의 [레퀴엠] 연주를 위해 테오도르 홀렌바흐가 미국 로체스터시의 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사실을 그린 그림. 지휘자 사진의 위쪽에 그려진 브라스 밴드가 인상적이다. / 사진 : 베를리오즈 웹사이트
베를리오즈가 참조할 만한 스승과 선배가 있었을까. 베토벤이 있었고,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작곡한 칼 마리아 폰 베버와 같은 작곡가도 있었다. 이와 별도로 지적해야 할 시대적 현상이 있었는데, 프랑스대혁명 기간 동안 파리의 각지에서 들을 수 있던 혁명적 군대 음악이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소품 ‘가보트’로 잘 알려진 프랑수아 고세크를 비롯한 혁명기 음악가들의 과장된 군대용 관현악은 음악사가들에게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베를리오즈처럼 떠들썩한 곡을 작곡한 이들에게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듯 당돌하고 거침없는 스타일로 앙팡 테리블로 여겨질 베를리오즈가 연 세계를 음악적 거대주의(gigant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훗날 바그너와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에 의해 다시금 꽃을 피울[레퀴엠]의 거대주의는 그것이 태어난 후 곧바로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여전히 작곡가들은 고전적 오케스트라의 관습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혁신은 외로운 법인가?

베토벤, 슈베르트, 베버, 슈만, 베를리오즈라는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죽거나 은퇴한 후에 프란츠 리스트와 리하르트 바그너 같은 중기의 낭만주의자들이 목관악기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이 각각 3대씩인 3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세상에 선보였다. 고전적 관현악단 혹은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3관의 낭만적 오케스트라와 현대적 오케스트라의 준거가 되었다. 낭만적 오케스트라는 고전 오케스트라를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연주자 수가 증가하고, 드물게 새로운 악기가 등장했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은 오케스트라의 음역을 위아래로 넓혔고, 음색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렇게 변신시킴으로써 작곡가는 낭만적 오케스트라를 강렬한 표현 수단으로 만들었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09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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