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당선과 낙선은 인과응보(因果應報)·제행무상(諸行無常)·자기할 탓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위해 자당(自黨)의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연이어 본선에서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하며 간절히 갈망하는 대선후보라면 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죽음이란 초청하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오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났다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 백년을 살다가 각자 자신이 왔던 본래의 그곳인 저 세상으로 가게 된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도 혼자서 태어나지만 역시 돌아갈 때에도 혼자서 간다. 결국 나 홀로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이승(已乘)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다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이 가야만하는 곳이 바로 저승(底乘)길이다. 사람이 죽어 자기 집 문지방을 넘어서 가는 곳이 저승인데 저승을 가는 길에도 반드시 정해진 수속절차가 있는 법이니 살아생전에도 법속에서 살고 죽어서 가는 길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가는 것이다.

죽은 이·망자(亡者)의 송장·시신(屍身)을 운반하는 운구차·상여(喪輿)가 화장터나 매장지로 향하는 발인(發靷)에는 통상적으로 3일장·5일장·7일장이 진행되고, 죽은 이의 저승길이 편하도록 자손들이 지내드리는 재(齋)의식으로는 77재·49재·천도(遷度)재 등이 이어지면서 망자가 영계로 잘 갈 수 있도록 수속절차를 밟아 도움을 드린다.

그런 연후에는 100일상·1년(소)상·3년(대)상 등으로 구분해 마무리를 짓고 돌아가신 기일(忌日)에 맞춰 1년에 한번 지내는 방안제사로 옮겨간다. 그러나 요즈음은 종교적인 이유나 사고방식 등의 다양화로 점점 간소화되고 있어 저 세상에 계시는 조상들에 대한 제사공양(祭祀供養)을 아예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져 우려되는 바가 많다.

죽음은 저 세상에로의 새로운 소풍·여행길이고 죽음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상징적인 길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말이다. 제행무상은 만물은 늘 유전하여 움직여 한 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우매한 중생들에게 깨우쳐주려는 대목이다.

인연에 의해서 생겨진 모든 사물·사안들은 한바탕 꿈과 같고, 환상과도 같으며, 물위의 거품과도 같고, 일종의 환영이나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풀잎의 이슬과도 같고, 찰나에 번뜩이는 번갯불과도 같은 것들이니 너무 탐욕스럽게 집착하지 말라는 경계인 것이다.

모든 것이 바뀌고 변하지 않을 수 없음이 우주와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귀·권세가 영원할 수 없음이다. 또 지금 가난하고 괴롭더라도 그 가난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가난이나 괴로움도 또한 금방 바뀌고 변해서 부유해지고 즐거워질 것이니 너무 상심할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사노라면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누가 알며 어느 바람이 훈풍이 되어 인생역전이 될지 누가 감히 미리 내다보고 짐작이나 하겠는가?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아니던가? 자신이 들여 마신 숨마저도 뱉어내지 못하고 눈을 감고 가는 저승길에 마지막 입고 가는 수의(壽衣)에는 주머니도 없어 모두 버리고 갈 수 밖에 없는데 뭐가 그리 탐욕스러운 인생을 살려고 버둥대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지금부터라도 허망한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다른 이에게 베풀고 비우며 양보하고 덕(德)과 공덕(功德)을 쌓으며 시끄럽지 않게 조용조용히 살면 자연히 개운(開運)이 되어 운이 열리고 바라고 소망하던 바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직장을 퇴직한 후에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노년층의 사람들이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면 조상공양이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있을 법하다. 사람의 몸이 늙어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수입이 없어지면 자연히 아들이나 딸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늙은 만년의 생활 자체가 바로 조상공양의 형태로 이어져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육체가 부자유스러워지면 머지않아 자신이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아주 강해져서 이것저것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담담한 심경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이러한 집착이 바로 자신이 죽은 이후에 공양을 바라는 마음과 같음이 아닐까? 예컨대 자신의 육체·생명·가족·재산·일·등 이런저런 이승의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이 바로 공양을 바라는 마음의 근원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이는 제행무상의 길이다. 삶은 생로병사라고 하듯이 사람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게 진리이고 바뀔 수는 없는 이치인 것이다. 늙음을 멈추는 일도 죽음을 피하는 일도 그 어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우주의 진리이기에 사람은 그런 진리에 따라 살고 이승의 지상을 떠나 저승길로 가야만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는 확실히 슬픈 일이지만 영적(靈的)인 눈으로 보면 저 세상에의 여행길이며 본래의 세계로 다시 되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살아생전 이승에서의 생활은 외국학교에 잠시 유학을 왔던 것과 같은 것이니 유학생활이 끝나면 본래 자기가 살던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죽음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죽음을 슬퍼함은 영계(靈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죽은 이(亡者)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일을 갖는 영혼은 수행이 상당히 진전되어 사명이 주어진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행이 덜된 영혼들은 죽은 직후에 한동안은 할 일이 없어 실업상태에 있기에 빈둥빈둥 무료하고도 매우 한가한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산(生)사람이 죽은 망자(亡者)의 일에 대해서 집요하게 생각하고 염(念)을 내듯 망자(亡者)에게 송염(送念)하면 할 일이 없어 한가롭게 지내던 그 영혼(부모·형제·친구·동료)이 즉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죽은 망자(亡者)에게 송염(送念)을 보내는 행위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영능력(靈能力)의 상태가 이루어지면 누구든 자신이 생각(念)하는 순간에 어디든지 누구든지 상대와 통(通)해버릴 수가 있다. 예컨대 이승의 이 세상에서도 어떤 특정한 사람의 일에 대해서 집요하게 생각(念)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송염(送念)하면 상대가 스스로 염파(念波)를 타고서 나에게 찾아온다. 그래서 상대방과의 동통(同通)을 통해서 상대의 생각과 계획 등을 읽어낼 수가 있음인 것이다.

따라서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위해 자당(自黨)의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연이어 본선에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고 싶은 대선후보라면 다음의 내용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후보가 스스로 착하고 선(善)한 마음의 자세로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자신의 생각(念)과 함께 선행·공정의 송염(送念)을 모든 국민들에게 집요하게 보내면 국민들 스스로가 그 염파(念波)를 타고 대통령후보에게 지지하는 의사를 갖고서 찾아들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에 반드시 당선될 수가 있을 것이니 실천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대통령후보가 착하고 선(善)한 마음의 자세가 없이 분노·복수·철퇴와 같은 흉측한 단어를 가슴에 품고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자신의 생각(念)이 국민들에게 전해진다면 국민들 스스로가 그런 대통령후보가 보내오는 염파(念波)를 차단해버릴 것이고 그러면 대통령에 절대 당선될 수가 없음이다. 그래서 모든 건 다 자기할 탓이다. 그게 바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인 것이며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치인 것이다.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장/미래문제·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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