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밥값 바우처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얼마 전 방송작가유니온(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노동공제회를 통한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도 제안된 자리였다. 언론노조에서도 공제회를 통해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추진할 계획이라는 말도 들어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방송작가유니온과 노회찬 의원과의 깊은 관계를 생각하면, 꼭 공제회가 아니더라도 참여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간 방송작가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업무의 자율성을 가진 프리랜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당하게 잘려도 속으로만 억울함을 간직해야 했다. 하지만 MBC를 상대로 한 부당해고 구체신청에서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는 두 명의 신청인 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하고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초심인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노동자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각하했지만, 중노위에서는 업무의 실질적 내용을 중심으로 판정했다.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이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현재 MBC는 중노위 심판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지상파 방송 3사에 대한 근로감독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근로감독에 대해서도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방송국이 자사의 비정규직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고 버텨 왔기에 짧은 기간 동안 실체 파악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흩어져 있는 작가들이 근로감의 취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유니온 조합원으로 함께 있으면 정보 전달도 빠르고 목소리도 명확하게 낼 수 있을 텐데, 유니온으로 함께하는 작업이 만만하지 않다.

노조를 만든 지 4년이 넘었지만 얼마나 많은 각오와 체념을 반복했을까.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부닥쳐 보고자 한다며 어깨를 들썩이는 지부장의 울음에 소리 없는 마음이 진동한다. 바로 그 작업을 여러 단체가 함께 해 보자고 나섰다. 이날 간담회에는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마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중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서북권직장맘지원센터가 참석했다. 일정이 겹쳐 오지 못한 곳도 있었다.

각자 무엇으로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다음 자리에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밥값 바우처는 그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방송작가유니온 전 지부장이자 현재 언론노조 부위원장의 제안이었다. 월세를 포함해 이것저것 떼고 나면 한 달에 30만원 정도의 생활비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작가들의 현실에서 하루 세끼 밥값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 끼 밥값을 내면 세 끼 밥을 해결하는 지원이 있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라 한다.

그래, 이건 정말 공제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사단법인 풀빵이 준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공동자원 운동이다. 기금이든 역량이든, 아니면 공간이든 시간이든 공유자원을 모아서 나누자는 취지다. 많이 가진 사람이 내놓고 적게 가진 사람이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품을 내고 필요한 곳에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물론 당연히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내야 할 터다. 밥값 바우처는 그 품목에 포함될 수 있다.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노조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노조가 나에게 보탬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독립운동하듯이 노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구체적인 현실로 와 닿아야 한다. 노조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으면 구태여 없는 시간과 돈을 보태야 할 이유가 없다. 노조할 권리 이전에 노조할 이유가 먼저다.

노동조합운동의 초기에 나타난 자생적 형식이 공제회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노동운동의 수준이 초기와 달리 많이 발전했기에 공제회와 같은 것은 낡은 과거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그건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우리 노동자의 현실이 초기와 달리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자가 기초적인 생활 수준에 있다.

‘방송작가 친구들’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로 간담회를 마쳤다. 이들은 방송작가들의 처우를 널리 알려 내고 이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방송작가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모으는 역할도 한다. 다음 모임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을 것 같다.

강도 높은 그림자 노동에 햇살이 밝게 비추기를 소망한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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