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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너머 사람을 보자] 1. 동행취재 : 살기 위한 죽음의 노동, 택배기사의 하루
사회 박스 너머 사람을 보자

[박스 너머 사람을 보자] 1. 동행취재 : 살기 위한 죽음의 노동, 택배기사의 하루

14일 오전 한진택배 광주영업소에서 택배기사 이택용씨(60ㆍ가명)가 허리를 숙여도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가 낮은 저상차량에 짐을 싣고 있다. 윤원규기자
14일 오전 한진택배 광주영업소에서 택배기사 이택용씨(60ㆍ가명)가 허리를 숙여도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가 낮은 저상차량에 짐을 싣고 있다. 윤원규기자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택배업계가 성장하자, 곪아 있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노동계를 분노케 한 택배기사 과로사 이슈가 도화선이 됐다. 올해 들어 또 다른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하면서다. 입주민의 요구는 저상차량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 불을 지폈다. 택배노조 파업 위기까지 치달았지만, 정부와 사측의 대책 마련은 묘연하다. 그 사이 택배 노동자는 살인적인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경기일보는 코로나19 시대 택배업계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열악한 노동 실태를 진단한다. 편집자주

지난 14일 광주시 중대동 한진택배 광주영업소. 시곗바늘이 오전 7시 정각을 가리키자 굉음과 함께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레일 위로 박스들이 쏟아져 나오자, 7년차 택배기사 이택용씨(60ㆍ가명)의 눈과 손이 분주해졌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박스를 바로잡고 가로ㆍ세로 2㎜로 작게 적힌 주소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택배기사의 하루는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으로 시작한다. 간선차로 터미널(영업소)까지 배송된 택배를 구역별로 나누고 차량에 싣는 과정이다. 지난해 택배기사 16명을 과로사에 이르게 한 주범으로 지목됐을 만큼 노동 강도가 상당하지만, 계산되는 임금은 없다.

오전 10시, 꼬박 3시간 만에 분류작업이 끝났다. 성남시 중원구 창곡동을 담당하는 이씨에게 할당된 물량은 박스 169개. 그는 “이 정도면 분류가 정말 빨리 끝난 편”이라며 “화요일에는 못해도 300개의 박스가 떨어지는데, 오전에 마치려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레일을 봐야 한다”고 털어놨다.

지난 14일 택배기사 이택용씨(60ㆍ가명)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 그가 식사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분, 이씨는 “허기를 달래려 입에 쑤셔넣을 뿐 여유 부릴 틈이 없다”고 했다. 장희준기자
지난 14일 택배기사 이택용씨(60ㆍ가명)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 그가 식사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분, 이씨는 “허기를 달래려 입에 쑤셔넣을 뿐 여유 부릴 틈이 없다”고 했다. 장희준기자

첫 배송지에 도착한 그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차안에서 먹는 첫끼였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시간도 사치라며 차가운 밥알을 마시듯이 들이켰다. 그가 식사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분. 이씨는 “맛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저 허기를 달래려 입에 쑤셔넣는 것”이라며 “차게 먹어 자꾸 장에 탈이 나지만, 일을 시간 내에 마치려면 여유 부릴 틈이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물건을 내리는 짐칸에선 이따금 ‘아악’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4년 전 위례신도시에 배정되며 어쩔 수 없이 샀다는 그의 차량은 악명 높은 ‘저상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짐칸의 높이는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평균 신장(129~130㎝)보다 낮은 127㎝에 불과했다. 허리를 90도로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었고,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들 수 없으면 차갑고 딱딱한 철판 위를 무릎으로 걸어야 했다.

짐칸은 오후 7시가 다 돼서야 바닥을 드러냈다. 이씨는 “물량이 많은 날은 오후 9시가 돼도 일을 마치기 어려운데, 이렇게 뛰어도 박스 하나당 700원 밖에 못 번다”며 “다른 건 몰라도 저상차량으로 배달하는 건 정말이지 죽을 맛”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5시에 집을 나선 이씨가 14시간을 달려 손에 쥔 돈은 11만8천300원이었다.

한 순간도 걷는 법이 없던 이씨는 처음으로 제자리에 서서 허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는 “몸에 골병이 날 법도 한데, 택배기사가 쉬는 날엔 병원도 쉬는 탓에 죽어서야 병원에 갈 수 있다고들 한다”며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고는 집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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